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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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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9일 07시 51분 등록

* 휴가 보내는 법

 

별이 되어 날아다닐 것

산속 짐승처럼

바닷속 물고기처럼 자유로울 것

 

강가에 미루나무로 서서

흐르는 바람 물 세월에

그냥 그림자 얹는 연습만 할 것

 

- 출처 미상 -

 

근래 들어 기억에 남는 휴가는, 동해의 푸른바다를 보거나, 높고 깊은 산에 갔을 때가 아닙니다. 2년 전, 여름휴가철에 마땅한 숙소를 구하지 못해 할수 없이, 집에서 멀지 않은 포천에 갔을 때였습니다.

 

저녁을 먹고 처남과 저는 근처 개울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맑게 흐르는 강물소리를 벗 삼아 술과 안주를 주고 받으니, 마치 뱃놀이를 하며 술 마시는 신선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강가에서는 술을 아무리 먹어도 안 취한다는 거, 알고 계시죠?  반딧불이 날아다니고, 바람은 시원했습니다. 강물 속 물고기가 된 기분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습니다. 새벽강 위로 달빛이 비추더군요. 그 달빛이 참 고왔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라는 어느 리조트의 슬로건은 매력적입니다. 직장생활이 길어지고 사람들로 인한 피곤이 가중되면서 특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더욱 그립습니다. 휴가철이 되면 조용한 곳에서 푹 쉬고 싶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닐 겁니다. 하루종일 뒹굴거리고 싶은 거지요. 심심하면 ‘그리스 인 조르바’나 김연수의 책들을 읽으며 낄낄거리는 게 휴가에 대한 작은 소망입니다.

 

주말에 강화도에 다녀왔습니다. 동생 부부가 제안하고 준비한 1박2일의 짧은 휴가였습니다. 흔한 나들이가 특별했던 것은 늙은 부모님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은 30년 동안 외항선을 타고 세계를 돌아다닌 뱃사람입니다. 위암수술, 백내장, 무릅수술, 협심증 등 노화에 따른 갖가지 질병을 달고 있지만,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십니다. 77세의 나이에도 빵모자 쓰고 엠피쓰리 귀에 꼽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는 아버지를 보면, 갑작스레 걱정이 몰려듭니다. ‘아, 나도 저러겠구나!’

 

노모는 평생 집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여행은 물론 휴가라는 것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젊을 때는 자식 키우느라, 나이 들어서는 갖은 질병으로 집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미소같은 환한 웃음과 강한 긍정이 어머니의 특징이었지만, 자식들이 분가하고 홀로 집을 지키던 어머니는 우울증과 관련된 약을 몇 년째 복용중입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위해 동생은 큰 차를 준비했고, 우린 숲속에 있는 멋진 통나무집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숯불이 타오르고 싱싱한 해산물과 조개, 꽁치, 고기, 고구마를 먹으며 입이 즐거워졌습니다. 어린 조카의 애교와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더해지고, 여인들의 수다가 합세하자 우린 마음까지 즐거워졌습니다.

 

이번 나들이는 노모의 거동이 가능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휴가라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왜 좀 더 일찍 부모님과 여행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늙어가는 부모와 한방에서 같이 자고, 일어나 본 기억이 언제인지 아득해 집니다. 서로의 삶이 바쁘다지만, 부모님이 병원에 실려오면 결국 모이게 되는 것이 가족인데, 병원이 아닌 곳에서 가족이 모이는 기쁨을 좀 더 일찍 누릴 생각을 못한 무지를 탓할 수 밖에요.

 

조용한 곳에서 별을 보고, 제 멋에 겨워 강바람을 쐬는 휴가도 좋지만, 더 좋은 건 사람사이의 정을 느끼며, 같이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시간이군요. 짧은 휴가였지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동생이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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