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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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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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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2일 22시 57분 등록

修練의 시간


여기 살고싶은 삶에 대한 마음을 품고 길을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지향을 품은 모든 자가 닿고자 하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까? 어떤 소수는 그곳에 닿고 어떤 대다수는 닿지 못합니다. 목적지에 다다른 그 어떤 소수는 또 그 목적지에서 나날이 아름다운 춤을 추며 물오른 삶을 구가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대답 역시 소수는 그러하고 대다수는 그러하지 못하다고 사회적 통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또 그렇게 지향점에 다다랐을 때 물오른 삶을 구가하며 사는 극소수의 삶을 살 수 있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또 무엇일까?


최근 그 물오른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사유하고 있고 내 경험을 중심으로 그 통찰들을 나누고 있으니 하나씩 나의 생각을 내보이겠지만, 그 중에서 이것만은 절대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있어 오늘 소개합니다. 그 절대적 필요조건은 바로 상당한 ‘수련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춤추듯 도끼질을 하는 화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천, 수만 개의 장작을 쪼개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농사를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시킬 수 있는 농부가 되기 위해서는 오뉴월 뙤약볕 아래서 헤아릴 수 없는 굵은 땀방울을 흘려야 합니다. 흙의 냄새나 빛깔만 보고도 심을 작물이 제대로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알아채기 위해서 어쩌면 흙을 맛보는 경험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주 깊숙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슴에 먹먹하고 긴 여운을 갖도록 숲을 안내할 수 있기 까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깊은 만족감을 눈빛과 행동으로 감지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내가 더 큰 기쁨을 누리는 숲 안내자로 살기까지 나 역시 긴 수련의 시간을 보내왔고 또한 보내고 있습니다. 눈 속에 피는 꽃은 왜 눈 속에서도 꾸역꾸역 꽃을 피우는지 알기 위해, 또 그 추운 겨울에 그꽃은 도대체 누구를 매개자로 삼는지 알아내기 위해 나는 눈 속의 꽃이 되어보는 수련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에 볼 살이 얼얼하다가 어떤 때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까지 만나고 마는 고통 가득한 수련의 시간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바람에 몸을 맡겨 하늘을 횡단하는 씨앗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그 씨앗이 되어보고자 했고, 바람이 되어보고자 했습니다. 씨앗의 높이로 누워서 바람을 느껴보기도 하고, 바람의 무게로 공간을 가로질러 보려고 갖은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수련의 시간은 거의 대부분 애를 먹고 고통을 느끼는 기간입니다. 기쁨보다는 통증이 많은 시간입니다. 차라리 멈추고 싶고 내려놓고 싶은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는 기간이 바로 수련의 시간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물이 오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직 나 아닌 것이 결국 나의 일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어느 부분이 반드시 찢어지고 그것을 받아들여 나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세계적 스포츠 기록을 가진 사람도, 어떠한 탁월한 외과 의사도, 어떠한 예술적 수준의 농부도, 건축가도 그 과정에 예외는 없다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물오른 삶을 살고 싶으신지요? 기꺼이 그 아픈 수련의 시간을 감내할 준비 역시 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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