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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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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0일 09시 32분 등록

노인이 한 명 사라지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 황혼의 반란, 베르나르 베르베르 -

 

미국 코넬대학교의 칼 필레머 교수는, 5년에 걸쳐 70세 이상 인생을 산 1000여 명의 현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통찰 깊은 조언을 구했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은 무엇인가? 젋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삶의 조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인생의 지혜와 조언들을 발굴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이라는 책은 그가 만난 현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동서양 문화의 차이도 있고, 상식적인 내용의 확인도 있었지만, 귀담아 들을만한 조언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만난 젊은 할머니가 저에게는 그 책을 넘어서는 인생의 현자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커다란 책을 펴놓고 무언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성경을 필사하고 있습니다. 입원환자가 책 읽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지만, 식판을 놓는 공간에 성경과 공책을 놓고 베껴쓰는 모습은 흔치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지금 뭐 하고 계세요?”

“응? 성서 쓰고 있어요.”

“아니, 안정을 취하셔야 하는데 퇴원하고 집에서 쓰시면 되잖아요?”

“하하하..입원해서 며칠 째 계속 성서를 쓰지 못하니까,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요.”

 

머리는 백발이지만, 평화롭고 따뜻한 기운이 상대방을 매료시킵니다. 품격있게 나이드신 고운 얼굴의 동안입니다. 50대 후반이나 60대 초반으로 보았는데, 나이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78세라니.. 믿기지가 않아 비결을 물었더니 세 가지를 알려주십니다.

 

“첫째는 긍정적인 마음이고, 둘째는 찹쌀을 넣은 잡곡밥을 먹고, 셋째는 삼위일체 지압법을 하는 거에요”

직접 지압시범까지 보여주는데, 병실에서 따라할 수는 없었습니다. 젊은 할머니와의 대화는 웃음과 재치가 함께 해서 시종 유쾌했습니다.

 

“수술은 잘 되셨어요?”

“교수님께서 ‘수술이 아름답게 됐다’ 고 하셨어요.’

“아름답게요? 하하 정말 잘 되었나 보네요.”

“그렇죠. 하하~”

“성서를 언제부터, 아니 얼마나 쓰셨어요?”

“올해 6년 째에요. 신구약 3번은 썼어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성서를 쓰실 생각을 하셨어요?”

“그야..신부님께서.. 쓰라니까 썼죠... 하하하”

 

그녀는 하루 2시간씩, 매일 필사했습니다. 그러나 발목골절로 수술을 하면서 필사를 못하게 되자, 답답하여 병실에서 성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성서를 쓰면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묻자, 환히 웃으며 말합니다.

 

“집안 일은 끝이 없어요. 가족들이 밤에 잠이 들어야 일이 끝나요. 하루일과가 끝나고 가족들이 다 자고 있는 새벽에, 성서를 필사하면 성서내용이 가슴에 너무 와 닿아요. 그 상황이 바로 지금인 것 같고,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흥분돼요...고요한 밤에 혼자 앉아서, 2시간이나 3시간 쓰는 시간이 참 평안해요. 덕분에 신부님이 절 무지 좋아하시죠. 상도 많이 받았어요”

 

대화는 유쾌했고 즐거웠습니다. 가족 애기를 포함하여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그녀는 저의 방문과 질문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젊은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간병하던 딸에게 종이와 펜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글자를 적어 주었습니다. 종이에는 3개의 한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딸은 자기도 처음 본다며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恕 , 木 鷄

 

“어? 이게 뭐에요?”

“말벗이 되어주고 고마워서, 전해주고 싶었어요”

“제가 한자를 잘 몰라서요. 무슨 뜻이죠?”

恕 (서) 에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법입니다. 내가 싫은 것을 시키지 마세요.

木鷄 (목계), 집착하지 않고 마음의 평안이 가장 중요해요..”

 

사무실에 돌아와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서(恕)’ 는 용서하다. 어질다. 남의 처지를 잘 헤아려 준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용서의 서(恕)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恕)라는 글자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말로, 같은 마음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같아야 용서할 수 있다니, 멋진 말입니다.

 

목계(木鷄) 는 장자(莊子)의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닭싸움(투계 鬪鷄)을 좋아하는 임금에게 조련사가, ‘최고의 투계는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아 목계(木鷄) 같은 투계’ 라고 애기합니다. 무념무심과 마음의 평정이 최고라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엔 훌륭한 말들이 많지만 그 말대로 훌륭하게 사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서(恕) 와 목계(木鷄) 는 그녀에겐 ‘인생의 화두’ 였나 봅니다. 고단한 시집살이와 삶의 애환 속에서도 그녀를 빛나게 했던 평안하고 따뜻한 기운의 이유를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삶이 곧 답입니다. 자신의 삶으로 인생의 정답을 말해주는 그녀가 저에겐 인생의 현자입니다. 그녀의 쪽지가 필요한 사람이 저뿐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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