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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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선승(禪僧)인 혜가(慧可)가 스승으로 모시는 보리달마(達磨)에게 말했습니다. “제 마음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스승이시여, 제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소서.” 보리달마는 “어디, 네 마음을 여기 꺼내 보아라. 그러면 평화롭게 해주겠노라”고 답했습니다. 긴 침묵이 흐르고 혜가는 자기 마음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보리달마가 말했습니다.
“이미 네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었노라.”
혜가의 문제에 대한 보리달마의 처방은 마치 수수께끼 같습니다. 이야기는 짧은데 거기 담긴 뜻은 끝이 없어 보입니다. 존 C. H 우가 쓴 <禪의 황금시대>에는 이런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선종(禪宗)의 역사에 특별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선종의 특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특징은 선종을 중국에 전한 보리달마의 교리를 후대의 선사들이 요약한 ‘사구게(四句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경전 바깥에서 따로 전한다. 敎外別傳
말과 글로 그 뜻을 세우지 않는다. 不立文字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킨다. 直指人心
본성을 보고 부처가 된다. 見性成佛
존 C. H 우는 선(禪)의 특징을 ‘깜짝 놀랄 만한 비약’, ‘눈을 멀게 하는 섬광’, ‘귀를 막아버리는 고함’, ‘머리를 두들기는 폭발’, ‘신비롭기만 한 화두’, ‘이성의 경계를 찢어발기는 행동’, ‘사람의 애를 태우는 유머와 기행’, ‘영문을 알 수 없는 매질’로 요약합니다. 선의 특징은 위대한 선사(禪師)들의 특징이자 <禪의 황금시대>에 담긴 이야기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나 더 보겠습니다. 어느 중이 조주(趙州) 선사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부처가 누구입니까?” 이 질문은 불교의 본질에 대한 것으로 상당히 까다로운 질문입니다. 그러자 조주가 말했습니다.
“누가 너냐?”
뒷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아 확실치는 않지만 질문 한 스님은 움찔했을 겁니다. 불교의 핵심을 물었더니, 부처를 알기 전에 너 자신부터 알라는 답이 돌아왔으니까요. 아마도 조주는 부처의 본성이나 불교의 본질은 외부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다는 이야기를 단순한 질문 하나로 일깨워준 듯합니다.
<禪의 황금시대>는 선종의 역사에서 절정기를 연 위대한 선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문장은 끝이 나되 뜻은 끝나지 않았다(言有窮而意)’는 게 뭔지 실감하게 해줍니다. 여운이 짙은 이 책은 새벽에 읽어야 제 맛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깊은 뜻을 담은 향기로운 이야기로 열면 하루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책을 읽다 보면 물음표만 가득해져 머리를 싸맬 때도 많지만, 핵심을 꿰뚫어 바로 드러난 본질을 보는 통쾌함도 맛 볼 수 있습니다. 그 맛을 중국 선 문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시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영원토록 비어 있다가 萬古長空
하루아침에 바람과 달 一朝風月
* 존 C. H 우 저, 김연수 역, 선의 황금시대 역, 한문화,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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