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최우성
  • 조회 수 5143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2년 3월 19일 00시 02분 등록

오래된 고마움

 

 

올해는 병원이 설립된 지 6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44년 수도회에서 파견된 두 명의 수녀가, 지역의 아픈 이들에게 약을 나누어주는 작은 시약소를 운영한 것이 병원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처음 기획실에 입사하여 병원보 제작과 홍보동영상도 만들었기에, 병원의 역사를 세심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색바랜 흑백사진 속에 있는 단층 블록집의 작은 의원, 낡은 의료기구와 수술실의 모습 등 오래된 역사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한 환자, 직원들과 함께 오랜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환자들로 붐비는 평일 오전, 진료실 앞은 늘 그렇듯 무겁게 가라앉아 있습니다. 갑자기 조용한 침묵을 깨고 여성의 웃음소리가 큰 소리로 울려 퍼졌습니다. 중년의 아주머니와 여직원 한 명이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여직원은 병원근무경력이 오래 된 왕언니 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인사를 나누며 반가워 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만난 왕언니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시길래, 그렇게 반갑게 만나서 웃으세요?”

“아..아까 그분이요?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환자분이에요!”

“얼마나 오래된 분인데요?”

“병원 입사 초기부터 알고 있던 환자에요”

 

왕언니는 올해 경력이 29년입니다. 수납팀에서 근무를 하다가, 몇 군데를 거쳐서 지금은 콜센터에서 근무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던 아주머니는 병원을 다닌 지 25년이 넘은 단골입니다. 왕언니가 수납직원일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검사예약이나 작은 편의를 봐드리면서 친해졌다고 합니다.

 

그분은 몇 년만에 외과적 수술치료를 위해 병원에 오면서 왕언니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서 찾지 못하고, 퇴직한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콜센터에 전화해서 진료예약을 하다가, 환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왕언니가 자신을 밝히고 안부를 묻자, 너무 반가워서 약속을 하고는 만나서, 그렇게 기뻐했던 것입니다.

 

“왕언니, 그렇게 좋아요?”

“네. 저를 기억해 주시는 분을 만나면 참 반가워요”

“그분이 뭐라고 하세요?”

“고맙대요. 오래 있어줘서 고맙다고...”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과 접촉을 필요로 합니다. ‘나를 기억해 주어서 반갑고’,‘오래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병원이라는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의 존재는 그 자체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왕언니는 재미있는 얘기도 해주었습니다. 의사가 환자 앞에서 담배를 피면서 진료를 하던 이야기. 80년대 초반, 석탄난로로 난방을 했는데, 수납직원들이 도시락을 석탄 난로에 올려놓으면, 검사실 직원들이 냄비를 가져와서는 식당에서 얻은 김치로 난로위에 김치찌개를 끓여서 점심을 먹던 일, 수녀님들이 시장에서 순대를 사와서 직접 들통에 쪄서는 업무가 끝나고 서로 나누어 먹던 일..그때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기분이 참 좋아졌습니다.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 읽는 평화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것, 낡은 것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마음, 그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세상이 경쟁과 효율을 이야기하고 성과와 수익을 따지는 것에 지쳐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니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 준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부족하지만 고마운 육체. 남들은 식스팩에 몸짱이라지만, 내 몸은 원팩에 허약한 팔 다리라도 모두들 오래 있어줘서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또 오랜 인연으로 연결되겠지요. 오랫동안 있어줘서 고마운 사람들과, 금방 고마워질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기분좋은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IP *.34.224.87

프로필 이미지
2012.03.20 00:38:15 *.122.237.16

우성 형, 고마워요.

형과 함께 오랫 동안 함께 갈 수 있어서 참 좋아요. ^_^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