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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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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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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4일 00시 22분 등록

2012년 4월 3일 낮, 책을 읽다가 담배 태우러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봄비가 그치고 날이 갰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입니다. 뭉게구름이 바람의 연주에 맞춰 춤춥니다. 구름의 군무(群舞)에 감탄합니다. 구름 사이로 하늘이 슬쩍슬쩍 보입니다. 쪽빛입니다. 눈 섞인 비가 괜히 온 게 아니었습니다. 구름에서 그녀가 보입니다. 그녀가 좋아하는 풍광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보며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네이프, 한남동은 봄비가 그치고 뭉게구름들 사이로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오. 그대가 좋아하는 풍광이오. 그대가 떠오르오.”

 

사진을 찍어 다시 문자를 보냈습니다.

 

“사진보다 실제가 훨씬 멋지지만 그대와 나누오.”

 

이제껏 비 갠 하늘은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일까?’ 사람과 책 때문입니다. 그 책을 읽고 있지 않았다면 이 풍광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겁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 ‘순천 선암사’편을 읽으며 가슴이 떨렸습니다.

 

1995년 가을 유홍준 교수는 외국인 미술평론가 네 명과 함께 선암사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참가한 커미셔너(commissioner)들이었습니다. 절가는 길에 가을 들판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다들 누렇게 익어가는 논을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한 여성이 논에 대해 물었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그녀가 무엇을 묻는지 몰랐습니다.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한 풍광이어서 뭘 묻는지 알아채지 못한 겁니다. 그녀의 “누런 풀(yellow grass)”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벼”라고 답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풍광이라면서 동양의 색감이 서양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벼가 익어가는 가을 논은 우리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입니다. 우리에게 식상한 것이 그들에게는 구경꺼리입니다. 농부의 일터가 누구에겐 황홀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논이다.”

 

일행은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벼를 물었던 그녀는 보성강변의 마을 풍경을 사진기에 담았습니다. 이 사진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에 나와 있습니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강, 강가의 논과 마을, 산 너머 산’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참 아름답습니다.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해보았지만 지금처럼 산과 들과 마을과 강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풍광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당신네 나라 사람들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듣고 사진을 보니, 그렇습니다. ‘산과 들과 강과 마을을 한 컷의 사진에 담을 수 있는’ 놀라운 풍광입니다. 익숙하다고 잘 아는 게 아닙니다. 익숙함은 종종 무관심의 소산입니다. 우리에게 대수롭지 않은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입니다. 내게 촌스러운 풍경이 누군가에겐 감탄의 대상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마음을 깨워주었습니다. 내게도 미적 감수성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책에 나온 장소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을 책에 나왔던 장소처럼 볼 수 있는 눈을 뜨는 것이 독서의 묘미입니다. 네이프가 마음을 살려주었습니다. 그 풍광에서 사랑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풍경의 매력은 반으로 줄었을 겁니다. 마음을 일깨우는 데 좋은 책과 사람만 한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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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홍준 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 창비,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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