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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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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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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0일 09시 53분 등록
법륜스님의 책을 보면 깨달음의 단계를 설명한 부분이 나옵니다. 불가에서 사법계(四法界)라고 하는데요. 깨달음의 성취를 네 단계로 구분해 놓은 것입니다.

가장 세속적인 단계를 사법계(事法界)라고 합니다. 사바세계라는 말 들어보셨죠? 같은 말입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현상계 - 리얼 버라이어티를 말합니다. 이 세계는 더러움에 물드는 것이 당연한 일상입니다. 남들이 훔치니까 정상인이라면 같이 훔쳐야 정상입니다. 다수에 속하게 되면, 부끄러운 행위도 정당성을 얻게 됩니다.

두번째 단계는 세속적인 세계와 담을 쌓는 단계입니다. 이법계(理法界)라고 부릅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를 가지 못하게 하는 거죠. 거기 가면 까마귀가 되니, 거기 가지 말고 백로로 남기 위해 애쓰는 겁니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방문 걸어 잠그고 일체 외부와의 교류를 끊는 거죠. 사바세계에 이법계 공간들은 대부분 깊은 산속에 존재하죠. 가끔 사바세계에 지친 사람들이 템플스태이니 수행이니 뭐니 해서 숲속 절간에 들어가서 잠깐 속세의 때를 벗기고 옵니다. 일종의 목욕탕과 같은 거죠.  하지만 아무리 좋은 목욕탕도 미래의 때와 오물까지 씻겨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세번째 단계는 까마귀와 백로가 장소에 따라 변하는 존재가 아님을 아는 단계입니다. 더러운 곳에 있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단계죠.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라고 합니다. 굳이 숲속 깊숙히 절간에 들어가지 않고, 도시의 일상속에서도 마음수행을 할 수 있고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단계입니다. 우리 시대의 지식인들중에도 이런 분들 있죠. 

그것조차 뛰어넘은 마지막 단계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입니다. 더러움 속에 섞여서 같이 걸레가 되는 단계입니다. 어랏, 그건 1단계 아닌가요? 일단계와 다른 점들은 스스로 더러워지지만 다른 사람들을 깨끗하게 만들어버리는 아우라( aura)에 있습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서 백로로 고고하게 존재하는 것이 3단계라면, 까마귀로 트랜스폼해서 다른 까마귀들을 백로로 만들어버리는 살신성인의 단계가 사사무애법계입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대표적인 까마귀의 탈을 쓴 백로라고 할 수 있는데요. 도둑들 사이에 섞여서 도둑질 하지마라 착하게 살아라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도둑이 되어서 도둑질 하는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도둑들이 도둑질하는 것을 점점 멀리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도둑들이 입 모아서 이제 도둑질 그만 하자라고 스스로 교화되버리는 단계가 마지막 성불의 단계인 셈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1단계에서 주로 살고, 가끔 2단계로 다녀오기도 하지요. 단계라고 해서 꼭 1단계에서 2단계를 거쳐야 3단계에 갈 수 있고, 최종적으로 4단계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단계를 거치는 깨달음을 점오(漸悟)라고 하고, 단박에 3단계, 4단계에 이르는 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다. 사실 그렇게 칼 자르듯이 나뉘는 것은 아닐테고, 점오, 돈오는 섞여있겠죠. 그리고 점오든 돈오든지간에 깨닫고자 하는 마음과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꾸준하게 자신을 닦는 점수(漸修)이든, 단박에 깨우쳐서 더이상 닦을 것이 없는 돈수(頓修)이든지간에 말입니다. 깨달음이라고 하니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과 의지라고 바꿔보죠.

자신이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든지간에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은 좋은 마음입니다. 그런 좋은 마음을 굳게 먹어도 그 마음이 나쁜 마음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느낀 것이 많았던 한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강연을 듣던 중에 본인이 느끼기에는 벼락같은 돈오가 온거죠. 관계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아주머니는 남편에 대해 품었던 미운 감정들을 다 내려놓고 남편에게 잘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집에 들어가 맛있는 저녁식사를 차려놓고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남편이 연락도 안 되고, 늦은 시각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어디서 부어라 마셔라 회식하고 있는 건지... 애써 만든 음식들은 다 식어버리고... 아주머니는 점점 열불이 나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렇게 좋은 마음을 먹고 잘 해주려고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놈의 화상 집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하는 마음이 드는 거죠. 보통때 같으면 그냥 늦으려니 하고 아무렇지도 않았을텐데, 오히려 좋은 마음이 상황에 따라 나쁜 마음으로 바뀐 셈입니다.

마음공부라는 것은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돈오든 점오든 다 필요없고, 그냥 점수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계속 돌아보는 거죠. 지난 편지에서 고흐와 인상파 화가들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죠. 자신의 마음속에 불을 꺼 놓고 안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법륜스님은 지금 제대로 보지 않는 것이 정말로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인지 자신이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어두울 때는 "왜 불 밝히라니까 안 밝혀, 몇 번 이야기했어!"하고 남에게 화를 내는 대신, "어, 내가 눈을 감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오늘은 깜빡 편지가 늦었네요. 남은 한주도 좋은 마음으로 행복한 한주 채워나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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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28 21:01:35 *.169.227.25

평범함과 =>(우수함 유능함 탁월함) => 비범함,

단순함 =< 순진함,=< 착함, =< 자비로움

비범함은 누적해서 쌓아 올린 평범함의 다른 얼굴이라는 생각입니다.

곧 성실한 노력을 통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임계를 넘어서 탁월한 비범함으로 진화하는 것

그렇지만 그것은 pawer curve (노력한 시간만큼 성과가 점진적으로 좋아지는) 가 아닌 exponential curve (의지와 열정이 따르는 집중된 노력이 변화없이 지속되다가 폭발적인 통찰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 즉 기하급수적인 변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무기를 다루는 우리는 그렇게 말합니다.

단순한 것은 복잡한 것을 이길 수 없고 복잡한 것은 오묘한 것을 능가할 수 없다.

그러나 오묘한 것은 단순한 것과 상통한다. “

펜싱의 초기 학습자들은 상대의 attaque (공격)에 대해 contre attaque(상대의 공격 중에 방어 없이 진행되는 반격)가  빈번하다가 => parade riposte (상대의 칼을 제거한 후에 이어지는 반격) 로 발달하고 후에 다시 contre attaque 돌아 간다. 그러나  이 두 contre attaque  간에는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외형적으로는 유사하지만 하나는 상황과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반사적인 반응(무대포) (사법계?) 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적인 상황과 자기능력을 고려한 선택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사사무애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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