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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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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4일 21시 15분 등록

며칠 전 딸 녀석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과 상담을 해달라는 부탁이 담긴 전화였습니다. 여덟 명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을 동시에 초청해 분야별로 강연을 진행하는데, 학생들이 관심이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도 듣고 상담도 함으로써 학생들의 진로 결정에 도움을 주려는 프로그램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꽤 오래 전 이미 나의 첫 번째 책을 인상 깊게 읽은 독자라고 하면서 제자의 아버지가 그 책의 저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반가워했습니다.

 

나는 그 요청에 흥미를 느꼈고 즉각 수락했습니다. 내가 학창시절에 경험해 보지 못한 살아 있는 교육 프로그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미래에 자신이 택하고 싶은 어떤 직업 중에 농부이자 생명의 이야기를 나누며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것도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 딸 녀석에게 작은 선물을 나눌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딸 녀석은 어느날 갑자기 산 속으로 들어가 사회적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아비에 대해 어떤 모호한 서운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비의 삶에 어떤 분명한 지향과 의미가 있음을 자연스레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내심 기뻐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도 있습니다. 내 사유와 경험의 한계가 아이들에게 한계를 지우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른이 품은 생각과 경험이 모두 옳을 수 없음을 전제하고 그 한계를 경계하며 나는 다음과 같이 지금까지 정리해 온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각입니다. 그 이야기를 그대에게 먼저 공개합니다. 행여 부족한 부분 느껴지시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얼른 더 깊은 생각 보태주시기를 청하면서 말입니다.

 

도시를 떠나 숲으로 들어올 때부터 나는 여생을 걸 멋진 직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이후 나는 그 고민의 결과를 따라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멋진 직업은 무엇일까요? 나는 크게 세 가지 요건을 갖춘 직업이 멋진 직업이요 그 요건을 갖추었다면 일생 동안 껴안고 걸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째 일을 통해 먹고 살고, 둘째 그 일로 즐겁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수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더라도 즐겁지 않으면 그것은 멋진 직업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즐겁고 보람되더라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직업이라면 그것은 결국 주변 사람을 염려케 하는 시간이 많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먹고 살고 또 즐거울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것만으로도 스스로와 가족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을 통해 주변과 이웃,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차원이 다른 직업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직업을 통해 신이 선물한 생명의 소용을 분명하게 사용하며 사는 일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농부라는 직업도 그렇습니다. 오직 돈벌이를 위해 짓는 농사는 돈 버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화학비료와 농약을 보태지 않는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 농부라는 직업은 멋진 직업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건강한 식탁을 이룰 수 있게 돕는 것이고, 토양과 수질, 대기 상태에 대한 부담을 줄여 지구와 생명공동체를 지켜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먹고 살고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직업의 필요조건이라면 보람을 구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멋진 직업의 충분조건이 될 것입니다.

 

농협이 나를 우수고객으로 취급할 만큼 아직 많은 빚을 지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새로 선택한 나의 직업에 깊게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고,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며 생명의 이야기를 나누는 삶이 참 좋습니다. 이 즐거움 누리며 꾸준하게 살다 보면 먹고 사는 문제야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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