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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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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11일 08시 43분 등록



(역대 선배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가까이 다가와 보렴, 그들의 속삭임이 들릴 것이다. 자, 귀를 기울여 봐, 들리니? 카르페, 들려? 카르페,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백수 생활 첫 날. 문득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에서 존 키팅 선생이 열변하던 ‘현재를 즐겨라’ 는 대사가 새롭게 들렸습니다. ‘지금 추구할 수 있는 즐거움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의미로 말이에요. 지금껏 나중의 더 큰 행복을 위해 현재를 꾹 참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데 나중이라 하여 즐겁게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놀기 시작했어요. 일단 잠을 많이 잤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불량식품을 먹었습니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았고, 무언가를 하다가 다른 것이 하고 싶으면 당장 그것을 했습니다. 그저 마음 흐르는 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방에 틀어박혀 ‘창조적 빈둥거림’을 즐겼지요. 저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지금만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도 없어. 빈둥댈 때 비로소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법이니까. 이것이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아니겠어? 지금은 창조적인 휴식의 시간이라구!’

빈둥거리며 행복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뒤끝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잘못 알고 있는 듯 했어요. 찾아보니 ‘현재를 즐겨라’ 라는 대사는 한국어로 번역될 때 잘못 번역된 것이었군요! 영화의 내용이 대학입시와 취직이라는 미명하에 학창시절의 낭만을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순간임을 일깨워준다는 내용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즐겨라’라고 의역(意譯)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실제는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로 해석되어야 한다네요. 그리고 책을 읽다 이 구절을 만났어요.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주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다. 몰입해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몰입하여) 일을 마무리한 다음에야 비로소 지난 일을 돌아볼 만한 여유를 가지면서 자신이 한 체험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는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되돌아보면서 행복을 느낀다. 물론 몰입하지 않고도 행복을 맛볼 수는 있다. 고단한 몸을 눕혔을 때의 편안함과 따사로운 햇살은 행복을 불러일으킨다. 모두 소중한 감정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런 유형의 행복감은 형편이 안 좋아지면 눈 녹듯 사라지기에 외부 상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키고 성숙시킨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맙소사. 요즈음의 제 행동은 단순 게으름이었습니다. 몰입하지 않은 창조적 빈둥거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군요. 이리저리 초점을 분산하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가 봅니다. 무엇인가를 할 때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어떤 것을 계획할 때 다른 행위를 하지 않아야 순간에 몰입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몰입된 순간 순간을 살 수 있으면, 뒤이어 오는 그윽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에서야 ‘현재를 즐겨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그럴듯한 말로 현재의 게으름을 합리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놀려면 집중해서 제대로 놀아야겠어요. 당장 요가 학원 등록하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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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
2008.08.11 09:16:19 *.243.5.20
저도 평소에 '카르페 디엠'을 '현재를 즐겨라'라고 해석하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승오 님께서 좋은 해석을 해 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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