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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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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28일 06시 35분 등록

‘며칠 안에 질 것이지만 오늘 피어있는 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자신을 움츠리지 않는다. 감사하라, 그대가 이 세상에 있음에 대해. 오늘 세상을 등져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날임을 또한 생각하라.‘

-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p128

 

모두들 마음이 들떠있는 가운데 직장 상사분이 묻는다.

“추석날 어디로 가세요?”

어디로 가냐고요? 글쎄. 어디로 가야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남들이 말하는 고향이라는 곳이 있었다.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사람들이 붐빈다. 저마다 정해놓은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서 시선을 옮긴다. 수원행 짧은 길이지만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는 와중에 뒷자리 한 중년 여인의 전화 통화 내용이 골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나야, 아빠 딸. 잘 지냈어. 나야 잘 지내고 있지. 엄마 계시면 바꿔줄래. 엄마. 나야. 미안해. 생신 지난지가 언제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잊어버리다 이제야 생각났네. 미안해. 점점 불효 딸이 되어가는 것 같아. 축하드리고 다음에 내려갈 때 엄마가 좋아하는 선물 꼭 사가지고 갈게. 늦었지만 생일 노래 불러 줄 테니 들어봐.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울 엄마…….”

노래는 끝을 맺지 못했다. 삭인 가슴에 눈물을 애써 삼킨 채 숨죽여 흐느낀다. 무슨 일일까. 어떤 사연이 있는 거지.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터인지라 나도 괜스레 가슴에 커다란 울음이 봇물 친다.

 

요양병원. 처음 이곳에 들어설 때가 생각난다. 일반 병원과 달리 시설이며 환자 분들의 상태 등 모든 것이 이질적이며 생소하였다. 낯선 이방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동자. 정신이 없는 듯 초점이 어지럽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거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설마 우리 어머니도 저렇게 변해 가는 건 아니겠지. 의사라는 양반은 핑계거리를 찾듯이 이야기를 던진다. 여기는 병을 낫게 고치는 게 아닌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support의 개념인 곳입니다. support? 병원이라면 당연히 완치되도록 치료를 해주어야 하는 곳이 아닌가. 처음엔 그렇듯 연둣빛 희망을 가졌었다. 식사도 잘하고 물리치료도 열심히 받다보면 걸을 수 있고 그러다보면 휠체어도 타고, 봄나들이 꽃구경을 나가 맛있는 것도 함께 먹고. 그러나 그 희망은 화려하게 피었다 볼썽사납게 자지러지는 꽃잎의 껍데기처럼, 일 년의 속절없음이 흘러가자 포기와 절망으로 점점 바뀌어 간다. 애써 부정하고 싶지만 그녀는 입원할 때의 다른 환자분들의 모습과 진배가 없어진다. 바싹 마른나무 가지의 몰골. 하루 몇 차례나 갈아주어야 하는 기저귀. 자식들이 와도 알아볼 수 없는 의식상태. 치매와 중풍이 전개되고, 식도 기관의 퇴화로 오늘이라는 생명을 코에 꽂힌 고무호스로써 가까스로 저당 잡힌다. 그랬지. 그때 그분도 그러했었겠지. 바람에 사그라지는 촛불을 보다 못해 주사바늘로 겹겹이 멍이든 손등을 잡아끈다. 엄마 저 왔어요. 막내예요. 차가운 쇠막대의 둔탁한 느낌이 잡히는 어깨를 잡아 애써 흔들어 깨운다. 눈 좀 떠보라니까. 계속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어쩌실 거예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어디에 있는 걸까.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해마다 찾아오는 명절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 나는 끔찍이도 싫었다. 제사 음식을 아이스박스에 실어 양손에 들고 헉헉될 때면 삶의 커다란 돌덩어리를 짊어지는 것 같았고, 무책임한 형의 모습을 재확인 하노라면 역겨움과 함께 가장인 그녀를 질책하기에 급급하였다. 도대체 이게 뭐야. 다른 사람들은 명절에 고향 가는 길이 설렌다는데 우리 집은 도대체 왜 그러냐고.

 

병실에 들어섰다. 변화가 없다. 여전히 아무런 의식이 없는 체 누워있는 그녀. 예전의 잔상은 잊힌 지 오래다. 얼굴을 쓰다듬고 시린 세월에 저린 은색의 부스스한 머리칼이 일어나 하나둘 넘겨본다. 그녀에게 오늘이란 시간은 어떤 의미로 자리 잡고 있을까. 두발로 다시 일어서는 설렘의 내일을 기약함일까, 아니면 영원히 눈뜨고 싶지 않은 그때 그 시절 힘겨움의 잊고 싶은 어제일까.

 

소변 줄을 통해 그녀의 흔적이 떨어진다. 방울방울이 아직은 살아있다는 메시지로 이승에서의 의미를 간신히 부여잡고 있다. 의사가 찾아온다. 경과가 좋지 않기에 폐 사진을 찍고 혈액 검사를 해야 한단다. 항생제를 투입할 수도 폐렴으로 전이될 수도 있다는 무채색의 목소리.

 

나에겐 이제 그때의 오늘이 없다. 그토록 싫어했던 그녀의 모습도 무겁게 지치며 욕지거리를 할 곳도 없다. 내일의 햇빛을 보면서 내일의 그리움을 되돌릴 수 있는 오늘의 생일 노래를 들어줄 그녀가 없다.

과거였던 오늘 그분이 예찬한 특별한 날의 그날로 돌려진다면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이라는 그날의 하루를.

 

 

 

* 소개 :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구본형 선생님의 유고집이 출간 되었습니다. 그분의 향기를 담백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으로, 가을 당신 삶의 대지에 여운을 느껴 보시는 게 어떨는지요.

 

IP *.217.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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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8 08:47:26 *.1.160.49

토요일 아침,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아냅니다.

오늘이라는 하루, 감사히 받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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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8 16:28:41 *.39.134.221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한적한 토요일 오후 졸면서 읽던 시집에서 옮겨왔습니다. 어떤 하루도 같은 하루가 없지만

삶을 시작하는 하루와 마감하는 하루...는 다른 느낌입니다. 

 

102개국 4만명의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질문한 결과 1위가 Mother이었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보다 아름답다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노래를 부르다 다 못부르게 하는 그런 어머니도

고향에 계시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러 가는 사람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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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9 22:50:58 *.108.69.102

절대 다수의  고향으로 가는 발걸음이 요양병원으로 대체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두렵네요.

그 사람 좋고 선량한 웃음이 안고 있는, 삶의 무게에 내 가슴도 순간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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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30 09:01:08 *.223.25.174
그대의 환한 미소 뒤에 그런 사연이 숨겨져 있었구려. 누구나 사연없는 이 없지만 명절이라, 가을이라, 그대의 이야기라 더 짠하구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읽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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