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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12일 23시 30분 등록
소풍길에 만난 태풍

이번 주는 이틀간 오대산 월정사와 양평군 소리산으로 ‘꿈을 찾는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도중에 태풍 ‘에위니아’를 만났고 또 녀석이 남기고 간 폭우와도 조우했습니다. 무진장 쏟아지는 빗속을 걷노라니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고적감이 절로 말을 걸어오기도 했습니다. 덩달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다 태풍에 얽힌 옛 이야기 한토막이 생각났습니다.


옛날에 어느 농부가 일년 내내 땀 흘려 농사를 지었지만 태풍으로 수확이 시원치 않자, 야속한 마음에 다음과 같이 불평을 했다 합니다.
"태풍만 불지 않았더라도 풍년이었을 텐데… 하늘님은 농사를 너무 모르신다! 정말 야속하다!!"

이 말을 들은 하나님께서는 농부에게 날씨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답니다. 신이 난 농부는 1년 동안 적절한 햇볕과 비를 내리게 했고, 마침내 가을이 되자 추수를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논을 찾았답니다. 하지만 농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논에는 속이 텅 빈 쭉정이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허탈해 하는 농부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너는 거센 바람이 곡식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고 저항력을 길러주는 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네가 햇볕과 적당한 비만 원했기 때문에 벼 뿌리가 약해졌다. 당연히 열매로 자양분을 제대로 나르지 못하니 논은 쭉정이 숲이 된 것이다."



태풍은 그렇게 인간에게 많은 피해를 주는 참으로 야속한 대상이지만, 태풍이 없다면 자연은 더 깊은 오염에 젖어 썩어갈지도 모릅니다. 무섭고 야속하긴 해도 태풍은 인간의 욕심으로 점점 더 썩어가는 바다를 뒤집어 순환케 하고, 맺은 씨앗을 멀리 보내고 숲의 바닥을 섞어 식생의 균형을 도모하며, 지역마다 고루 비를 뿌려 연중 강수량의 상당량을 제공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태풍이 주는 두려움에 휩싸여 숲을 걷다가 자연을 빌려 잠시 살다 가는 것이 인간임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벼 이삭과 식물에게 저항력을 길러주는 것이 큰 바람이라지만, 태풍은 우리에게 ‘인간들아! 소박하게 잘 지내다 떠나라’ 말하는 준엄한 가르침처럼 들립니다. 태풍을 맞으면 떠난 소풍에서 태풍의 가르침을 만났습니다. 소풍을 자주 할수록 자연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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