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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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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5일 17시 08분 등록
실로 오랜만에 노래방을 찾았습니다. 이사 온 지 어언 8년, 아이를 키우는 또래 여성들과 일주일에 한 번 씩 만나 책모임을 한지도 8년이 되었습니다. 언제 시작했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언젠가부터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날과 겨울 방학이 시작되는 날에 우리는 만나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엄마들을 긴장시키는 방학을 앞두고 마음을 다 잡는 나름의 의식이 됐습니다.

올해 여름도 어김없이 방학이 찾아왔고, 1차 맥주 2차 소주로 이어지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우리는 책 읽는 엄마들이니까 좀 다른 주제로 이야기하자고 매번 다짐하지만, 술잔이 돌며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이면, 강물이 바다로 향해 흐르듯 대화의 주제가 꼭 ‘아이들 성적’으로 수렴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성적은 자랑거리가 되었고 나쁜 성적은 한숨과 위로를 동반하는 안주꺼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 성적을 공개하고 비평준화 지역에서의 상위권 고교 진학과 인서울 대학 진학 전략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놓는 것이 우리 사이에 의리 넘치는 우정임을 입증하듯 모두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러 노하우를 전수받고, 이번 방학에는 아이들이랑 이렇게 해봐야지, 저렇게 해봐야지... 희망에 부풀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3차 노래방으로 향했습니다. 쭈뼛쭈뼛 무슨 노래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제가 야심차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를 눌렀습니다. 전주가 시작되자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1분이 넘는 긴 전주가 흐르는 동안 격렬한 헤드뱅잉이 지속되었고 어느덧 뻐근해진 뒷목을 부여잡았지만, 마음만은 열정 넘치던 열아홉 때로 돌아갔습니다.


됐어 됐어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족해 족해 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1994년 8월 13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이 발매되었습니다. 당시 고3이던 저는 ‘교실 이데아’와 함께 여름 방학을 보냈습니다. 테이프를 정방향으로 듣고 역방향으로도 듣고 테이프가 다 닳도록 반복 재생하면서 이 교실을 벗어나기만을 바랐습니다. 어른이 되면 젊음을 아깝지 않게 보내리라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달리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처럼 2~30대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난 지금 젊은 건가? 아니면 늙은 건가?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고, 하나의 몸에서 ‘고3 수험생’과 ‘44세 학부모’ 두 개의 영혼이 튀어나와 저를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이젠 생각해봐 대학 본 얼굴은 가린 체
근엄한 척할 시대가 지나버린 건
좀 더 솔직해봐 넌 알 수 있어


25년이 지났지만...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만 바뀐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좀 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
좀 더 잘난 네가 될 수가 있어


갑자기 뺨을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모든 것을 바꾸겠다던 열아홉의 저는 마흔 넷이 되기까지 도대체 뭘 했나 싶고, 심지어 이젠 아이들을 밀어 넣고 줄 세우는 존재가 된 것이었습니다.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다시, 열아홉의 마음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어떻게든 달라져야겠습니다.   


김정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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