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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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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7일 20시 29분 등록

그리고 비엔티안



그곳에 처음 발을 딛는 순간 건너온 구수한 숯 냄새를 나는 잊지 못한다. 마치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곳의 냄새를 반도체처럼 각인하듯, 나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오로지 내 의지에 의해 만난 첫 세상이었다. 말하자면 내 개인적인 삶의 전개가 사회의 의지로 나아가고 있을 때, 그러니까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승진을 거듭하고 있을 때, 그것이 극에 달할 무렵, 모든 걸 걷어차고 당도했던 곳이 라오스 비엔티안 Vientiane 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체 닿았으므로 우여와 곡절이 많았다. 외로움에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고, 처음으로 목 놓아 울었고, 살아내는 건 슬픈 일임을 처음으로 알게 됐고, 또 처음으로 스스로를 대견해 하기도 했던 곳. 인생 반 고비를 돌아가며 웬만한 일들을 죄다 겪었다 여겼지만, 여기서 인생의 ‘처음’은 그렇게도 많았다. 그러면서 비엔티안은 처음으로 내 자신을 만났던 곳이 되어 있었다. 자기 살해의 유사 지하체험을 시도하며 내면 깊이 들어가 보려 했었다. 외로움에 몸서리치면서도 나는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가를 두려움에 떨며 가늠했었다. 한편으로, 쓸데 있는 세상의 일을 하느라 쓸데없다 여기던 내 소중하고 사소한 기억들을 건져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세우고 지탱하는 것은 가볍디가벼운 회사의 직책과 월급명세서에 찍힌 숫자들이 아니라 사소하기 짝이 없는 내 기억들이라는 것쯤은 이제 어딜 가나 겁 없이 얘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엔티안은 내가 태어난 한국도 아니고 오래 살았던 부산도 아니지만 그곳들만큼이나 내 정신에 장착된 윈도우 같은 곳이 됐다. 그러니까, 비엔티안은 나에게 생물학적 탄생과 결부된 곳은 아니지만 상징적 인간으로 내가 다시 태어난 곳이라 하면 맞을까. 그런 곳이다.



큰 아이 유치乳齒 아직 비엔티안 사판통 Saphanthong (내 살던 곳 마을 이름이다) 마을 누군가의 집 지붕에서 햇살을 받고 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꺽꺽 대고 울었던 원스어폰어타임 카페의 창가 두 번째 자리는 여전히 누군가가 앉아 에스프레소를 홀짝거리고 있을 테고, 딸아이가 물에 빠졌던 남능 호수 가장자리에는 아직도 그때 잃어버렸던 신발 한 짝이 뭍으로 밀렸다가 둥둥 떠 있기를 반복하고 있을 테다. 탓루앙 뒷골목, 회사 업무가 지겨울 때마다 내뺐던 베고니아 카페의 잔잔하게 부딪히던 풍경 소리는 지금 부는 바람에 은은하게 퍼질 테고, 휴일 아침 한잔에 털어 넣는 진한 에스프레소 그 맛을 못 잊어 달려갔던 La Banneton은 여전히 누군가를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시원한 맥주에 오가던 사람 구경이 즐거웠던 컵짜이더, 태국 국경으로 떨어지던 내 생애 가장 크고 붉었던 태양, 늘 아침마다 웃어주며 반기고 어깨를 툭 치며 농을 걸어오던 인도차이나뱅크 경비 아저씨, 1,400여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에 기겁하여 읽을까 말까 갈등하다 인생 최고의 곡절이라 할 만한 시간을 함께 한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밤새 듣던 Pink martini (Storm large의 음성이 일품이다) 의 음악, 닭 우는 소리에 깬 첫 날, 외로움에 몸서리치다 나선 길에 봤던 메콩 강에 뜬 보름 달, 다시 가족이 모두 모였던 날 마당에 심은 참파 (프렌지파니) 나무, 마당에 수박씨를 심고 다음 날 수박을 기대하며 자던 아이. 짧게, 짧게 토막 난 기억들을 이으면 그것이 나의 비엔티안이다.


 

비엔티안을 떠나는 마지막 주말, 불안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사찰에 들러 절을 하고 시주를 했다. 아우라 빛나는 노승이 사찰 안쪽 방에서 나왔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바짓가랑이 붙잡듯 시주를 했다. 이 행렬 끝에 끼어 있었던 나도 얼떨결에 바지 안의 돈을 털어 넣었다. 일요일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해 주는 법당, 그 사이를 자유롭게 지나다니는 고양이, 사람들도 개의치 않고 고양이도 조심스럽지 않다. 금색 도금을 온 지붕에 둘러싼 중앙 법당 꼭대기가 아름답게 휘었다. 세계의 유혹을 오른쪽 검지 하나로 지그시 눌러 제압했던 자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 깨달음을 좇으면 나는 그리고 세상은 구원 받을 수 있을까? 구원이라는 게 있기나 할까? 파리가 꼬여 쫓아냈으나 다시 들러붙는 파리에 속수무책이다. 파리에게도 이길 수 없는 슬픈 자기재생박테리아에 지배당하는 개체에 불과한 나. 개체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까지 이어지겠지. 그 끝도 없는 격정 끝에 무한히 뻗을 눈물겨운 생의 전개가 나를 초라하게 만들까, 무한하게 만들까, 흔적으로 남을까, 과정 속에 사라질까. 그래서 월급쟁이는 언제까지 할 건가에 마지막이 닿아버리는 어쩔 수 없는 월급쟁이. 다시 불안이 고개 들었고 그렇게 월급쟁이로 들어가 월급쟁이인 채로 비엔티안을 떠나왔다.



그러나 사내는 비엔티안에 있었다.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홀로 국수를 시켜 먹었고 무던히 걷기도 하며 사람들이 말하는 언어가 어떤 언어인지 유심히 입 모양을 지켜보기도 했던 사내가 있었다. 가족들과 헤어지며 눈물 흘리고 다시 가족들과 그곳에서 살며 기뻐했다. 인생의 목적은 사는 것이다. 산다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삶이다. 삶 자체다. 학위나 능력이 아니라 삶을 얼마나 나답게 살았는가가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전부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기다린다는 말은 무서운 말이다. 사과나무는 사과열매를 기다리며 자신의 온 몸을 바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면서 사는 사람이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니체는 위험하게 살지 않으면 죽은 거라 했다. 위험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수다를 떠는 사람이 아니라 응축된 사람이라 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건너오는 경박한 대꾸’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자기 안에 응축하며 자신을 끝내 변형시키고야 마는 사람이 기다리는 사람이다. 비엔티안은 나에게 기다림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입을 닫게 하여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음을 알게 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함으로 ‘할 일, 안 할 일 가리지 않고 욕심 사납게 그러쥐는 탐욕’의 인간임을 알게 했다. 철저하게 혼자 있게 하여, ‘엉덩이를 가만 붙이지 못하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오지랖, 나 없으면 금세 큰일이라도 날 줄 아는 자만’ 의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했다. 지금 아무도 없는 외로움으로, 과거엔 많은 사람들 안에서도 외로운 인간이었음을 알게 했다.



사람들은 비엔티안을 잘 안다. 인터넷으로 비엔티안에 관한 공부를 많이 하고 온 사람들이 가끔 ‘넌 여기에 살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면박을 줄 때가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실들을 낚아채 쉽게 알게 됐다면 그 앎은 쓸모없어질 공산이 크다. 인터넷으로 알게 된 곳을 모두 가본 뒤 이 도시는 왜 이리 볼 게 없고, 할 게 없냐는 사람에게 비엔티안의 속살을 설명하는 일은 난감하다. 프랑스 개선문을 본 뜬 승리의 문, 빠뚜싸이에 실망 말고, 빳빳한 흰 구름이 연출하는 인생 노을을 보려거든 11월의 어느 날, 비 오는 오후 4시를 기다려 메콩 강 산책길 끝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은 알아야 할 것들을 알지 못하고 몰라도 될 것들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한다. 알아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면 몰라도 된다 말하고, 알아서 도움 될 게 없는 것들에는 목숨 걸고 알려 한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 할 것들은 결코 쉽고 다가오지 않는다. 한 인간을 가르치는 데는 인간 역사 전체를 동원해도 애를 먹지 않던가. 비엔티안은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전부를 동원해 옹졸했던 나를 가르쳤다. 마치 ‘언젠가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말없이 많은 것을 가슴에 쌓아둔’ 것처럼 말이다. 꼭 그와 같이 ‘언젠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하는 사람은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떠나기 싫었다. 구질구질하게 길어지는 이 글처럼모욕을 주더라도 들러붙고 싶은 못난 제자처럼남겨둔 할 말이 농번 거리 어딘가를 배회하는 것 같고 폰시누안 골목길에 흐느적거리며 앉아 아, 혼자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는 것만 같다. 눈을 떠, 더는 비엔티안이 아닌 곳으로 왔을 때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제껏 구름으로 살고 있던 비엔티안을 만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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