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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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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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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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6일 07시 40분 등록
강이 흐르듯이
살고 싶다
자신이 펼쳐 나가는
놀라움에 이끌려
흘러가는
-  <흐르는>,  존 오도나휴

구본형은 제가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이 편지를 받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2013년에 돌아가셨죠. 그는 이제 없지만, 그가 남겨놓은 글들은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전 지금도 그의 책을 읽으면 심장이 뜁니다. 그는 째째하게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도 비범해질수 있다고 말합니다. 뇌과학이나 자기계발 이야기는 아니구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도 알고 보면 모두 특별한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범상치 않은 이야기 하나하나는 인류의 미시적 역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그는 미스토리(Me-Story)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흔 넘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생각해 본 적은 많았습니다.그 하나하나의 과정들 중 어느 정도 일부는 그 당시로서는 명확하다고 생각할만한 정의와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똑같은 질문에 맞닥뜨릴 때마다 매번 원점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과거에 명확하게 내렸던 그 정의와 해답대로 살아온 것인지, 정말 그 정의와 해답들이 맞기는 한 것인지 자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 둘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언젠가부터 그런 질문조차 사치라고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삶의 이유는 생략한 채 난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눈앞의 목적만을 쫓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구본형작가가 운영했던 변화경영연구소(이하 변경연)에서 연구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없지만, 그가 남긴 제자들이 뜻깊은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무엇인가 절실한 변화의 계기가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지원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지원서 항목을 보니 말문이 턱 막히더군요. 지원서는 A4지에 폰트 11로 빽빽하게 20여장을 쓰는 것이였고 항목들은 모두 '나'에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미스토리를 제대로 한번 써서 내라는 것이였죠. 주요 항목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가장 가슴이 아픈 장면 1가지

빛나는 성취 3가지

우수한 재능과 기질 3가지

기질적 단점 1가지

취미와 특기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2가지

인생의 롤모델

가장 감명깊게 읽었던 책

팀활동에 대한 가치와 원칙

각각 최소 1페이지 이상의 내용을 써야 했고, 인용이나 타인의 생각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목소리만이 들어가야 하는 까다로운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까짓거 한번 써보자 마음 먹었죠.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부터 막히더군요. 상념만 머릿속에 회오리칠 뿐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아무거나 그냥 막 써보자 마음먹고, 4주동안 매일 아침 일어나서 글을 썼습니다. 강제사항이 아니였으면 결코 쓰지 못했을 겁니다.  타인과 자신의 거리만큼이나 나와 '나'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합니다. 결과적으로 그 간극을 많이 좁힐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더 친해졌고, 나를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매사를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기질이 사실은 큰 장점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도 했습니다. 어느날 새벽에는 내 인생의 가슴아픈 장면을 쓰다가 돌아가신 엄마와의 추억에 펑펑 운적도 있었습니다. '그래, 난 이런 사람이였구나. 미안하다, 나에게.'  저 스스로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이해하는 시간이였습니다.

사실 지원서의 항목들은 이력서에 들어가는 자기소개서에 있는 항목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확연히 다른 점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아주 길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짧게 쓰면 이력서지만, 길게 쓰면 스토리가 됩니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어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은밀한 치부까지 드러내야 할지 고민이 되더군요. 일단은 다 내려놓고 솔직하게 쓰기로 했습니다. 자기검열은 다 쓰고 나서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 쓰고 나서 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은행계좌비번도 아닌데, 뭘 그리 날 꽁꽁 숨기며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것은 제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모순입니다. 얄팍한 참호에 몸을 숨기고 허공에 총질을 해대는 겁먹은 어린 병사와도 같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의 영향으로 우리는 더 많이 스스로를 외부에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들이 온전한 자신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꾸미고 가공된 모습이 더 많죠. 미스토리를 쓰면서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한가지 깨달았던 사실은 '나'라는 관념에 타인의 흔적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나'라는 것이 참 많다는 거죠. 멋있게 보이고 싶은 것도 자아의 일부일수 있겠습니다만, 그것이 정말 온전히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의 흔적을 걷어내고, 자기자신으로 깊이 파고들어가다 보면 치졸하고 저열한 부분과도 직면하게 됩니다. 덮어놓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직시하고 자신을 온전히 품어낼수 있어야 세상에 당당해질수 있습니다. 

2018년 봄 A4지 20장의 빽빽한 '나의 이야기'와 함께 변경연 연구원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1년동안 치열하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해 여름에는 20장이었던 미스토리를 50장 넘게 다시 쓰기도 했습니다. 나에 대한 탐색은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나'라는 보물은 파도 파도 끝이 없습니다.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저도, 여러분도. 자신에게 깊이 들어갈수록, 세상밖으로 더 뻗어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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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6 17:41:13 *.169.227.25

저는 늘 저에게 묻습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 순간 존재하던 나에 대한 질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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