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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0일 08시 29분 등록

친구가 결혼식 축사를 제게 부탁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딱 적임자이긴 합니다. 두 사람은 제가 3년간 운영해온 온라인 독서모임에서 만났고, 신부는 모임의 부방장이며, 신랑은 알고 보니 저희 아버지의 오랜 독자였기 때문입니다. (4월에 아버지의 10주기 행사에도 걸음을 해준 커플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긴장감, 두 사람을 실제로 본 건 몇 번 안되고 주로 온라인으로만 만나서 결혼식에 온 많은 하객들을 상대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혼란, 만약 실패해서 소중한 친구의 결혼식을 망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부담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만한 적임자가 없으니, 어떻게 해서든 이 임무를 해내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보통 독서 모임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하면 아웅다웅하다가 헤어지고 둘 다 모임에 안 나오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이렇게 결혼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든 두 사람이 대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 두 사람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걸까요?


제 나름대로 추리해 보자면, 아마도 두 사람 다 상당히 괜찮은 사람들인 것이 아주 좋은 시작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신부는 쾌활하고 똑 부러집니다. 저희 방은 토론 참석률과 규칙 준수를 매우 중요하게 관리하는데 아마 덜렁이인 저 혼자 했다면 이렇게까지 깔끔한 운영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 신부는 멤버들의 작은 일도 잘 챙겨주는 세심함을 갖고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모임의 멤버들은 모두 그녀의 강점과 인품에 빚지고 있습니다.


신랑은 다정하고 너그러우며, 좋아하는 일에 열심입니다. 새로 가입해서 아직 대화가 어색한 신규 멤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끌어줍니다. 또 상대의 감정을 빠르게 알아채고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능력도 매우 뛰어납니다. 모임에서도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강점이 상대에게 위안과 응원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신랑의 다정함과 신부의 세심함이 서로가 힘들고 지쳤을 때 안식처가 되어주었을 것입니다. 가정이라는 공간이 진정한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곳이라는 걸 떠올리면 이보다 적합한 선순환은 없을 것입니다.


결혼한 지 7년이 넘어서 잊고 있었는데 결혼이란 게 더 나 다운 삶을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자취와는 다르게 함께 사는 반려자의 영향이 새로이 나 자신을 발견하고 계발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삶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함께 하면서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이 결혼이라는 사회적 계약이 갖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여인이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출가 후에는 남편을 따른다고 하지만, 이것은 결혼의 한쪽 면만 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남편도 부인에게서 받는 영향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은 삶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성별에 따른 차별이 있었다고 해도 부인의 성품이나 성향이 남편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매일의 삶과 깊게 연관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결혼 7년 차에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보는 것도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네요. 아무쪼록 소중한 친구들이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마음 편지의 독자분들 중에 축사를 해보신 분들이 있다면, 저에게 약간의 팁을 알려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럼, 큰 태풍이 온다고 하는데 안전하고 무탈하게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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