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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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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0일 12시 06분 등록

엉터리를 쓸거면 아예 쓰지도 마

 

며칠 전 글쓰기 수업을 하는데 한 수강생이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환갑 기념으로 자기만의 책을 내는 게 오랜 꿈이었답니다. 때맞춰 책을 내려고 글을 써왔는데, 어느 날 내가 내는 책이 쓰레기를 보태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주변에서 출판한 지인들의 책만 봐도 쓰레기 같았다고 합니다. 들춰볼만한 가치도 없었다는 거죠. 얼마 전 환갑을 맞이했는데, 책을 내려고 하다 결국 내지 않기로 했답니다. 그러면서 이런 도전적인 질문을 해왔습니다.


글쓰는 건 좋지만, 이렇게 써서 책을 내면 그냥 쓰레기를 하나 더 보태는 건 아닐까요?”

 

사실 이런 질문을 한 두 번 받은 건 아닙니다. 한번은 지인을 만났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 나는 사람들 책 내는 거 정말 별로야. 그런 글을 쓰면서 나무 베는 게 미안하지도 않나봐? 엉터리를 쓸거면 아예 쓰지도 않는 게 나아.” 그 지인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도, 결론을 그렇게 내버리더군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정말 좋은 책이 아니면 쓰레기를 양산하는 걸까?

엉터리로 쓸거면 아예 쓰지 않는 게 맞는 걸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설령 위 생각에 동조하는 분이 많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은 책 읽는 사람보다 책 쓰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가 됐잖아요? 서로 보지도 않으면서 출판한 책을 선물하기도 하고,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출판 목적으로 글쓰는 사람도 많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엉터리를 쓸거면 아예 쓰지도 말라는 분들에게 2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작가가 유독 많은 나라의 비밀

 

아이슬란드, 다들 아시죠? 북유럽 최북단에 있는 파리똥만한 나라말입니다. 물가도 비싸고 날씨도 정말 별로고 척박해서 살만한 곳이 못 되는데도 행복도는 높은, 아주 희한한 동네죠. 이 동네에 희한한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인구대비 작가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책을 1권 이상 출간한 사람이 무려 10%나 됩니다. 길거리 나가면, 10명 중 1명은 작가라는 얘기죠. 작가만 많은 게 아니라 음악가도 많고 화가도 많고 하여튼 예술가가 많습니다. 에릭 와이너라는 미국 기자가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예술가가 많을까?’ 궁금해하며 아이슬란드의 현지 예술가들을 만나 물어봅니다. 그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줘요.

 

우리는 실수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우리가 엉터리로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든다는 건 우리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게 뭐 어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해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죠. 안 그런가요? 우린 실패를 찬양합니다.“

 

아이슬란드에 작가비율이 높은 건 엉터리를 써도 괜찮다는 관용이 문화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얘깁니다. 덕분에 아이슬란드 예술가들은 내키는대로 노래도 부르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엉터리 작품을 많이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기꺼이 그를 인정하죠. 하지만 엉터리가 없으면 좋은 작품도 나올 수 없다는 사실. 예술은 재능이 아니라, 내가 투입한 시간과 노력에서 나온다는 말을 수많은 예술가들이 합니다.

 

엉터리를 많이 써봐야 좋은 글도 나옵니다. 엉터리를 자꾸 만들어봐야 정말 좋은 작품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도 엉터리 글을 한 서 너개는 쓰고 나서야 정말 괜찮은 글 한편을 써냅니다. 매번 좋은 글을 쓰기는 어려워요. 거의 불가능하죠.



엉터리라도 꾸준히 쌓아올릴 때 생기는 일


아는 분이 수년 전 은퇴를 하시고 책을 내었습니다. 첫 책을 누가 내주지 않아서 본인 돈을 들여서 자비출판을 했습니다. 그리고 출판한 책을 선물을 주셨는데, 솔직히 한 편 읽다 말았습니다. 컨셉도 불분명하고 주제도 불분명하고, 재미도 감동도 없고, 누가봐도 책을 내고 싶어서 쓴 글들의 묶음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책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우셨을 겁니다. 그러면 그 분이 거기에서 그만두었느냐? 아니었어요. 매일 A4용지 2장씩 글을 쓰시더군요. 모임에 나가서도 쓰고, 혼자서도 쓰고 아무튼 매일 계속 썼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만의 색을 담은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여러 공모전에 응모도 했습니다. 2년은 모든 공모전에서 물을 먹었죠.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 2년이 지나자 다음부터 하나씩 당선되기 시작해요. 그러다 연달아 2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번엔 자비가 아니라, 당당히 공모전에 응모해서 받은 지원금으로 정식 출판사에서 책을 냈어요. 첫 책과 달리 이 두 책은 컨셉도 분명하고 본인만의 주제도 명확히 들어가고, 재미와 감동도 들어있었습니다. 꾸준히 작업을 하면서 본인만의 색깔을 찾아내신거죠.

 

첫 책은 어떤 출판사에도 내주려 하지 않습니다그래서 자비출판으로 많이 출간을 하는데요본인 만족은 있겠지만 주변에선 거의 읽어주지 않습니다바쁜 시간에 뭣하러 읽습니까세상에 볼 것이 널리고 널렸는데요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실망하고 그만둡니다그런데 저는 그 이후가 진짜라고 생각합니다엉터리를 만들어낸 그 이후가 진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계속해서 글을 쓰고 만들어봐야 본인만의 스타일이 뭔지 본인만의 색이 뭔지 알 수 있습니다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업가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내 작품은 오리지널입니다!' 하고 소리쳐본들 그런 소리는 대부분 바람에 날려가 사라져버립니다무엇이 오리지널이고 무엇이 오리지널이 아닌가그 판단은 작품을 받아들이는 사람=독자와 '합당한 만큼 경과한 시간'의 공동 작업에 일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중략납득할만한 작품을 하나라도 더 많이 쌓아 올려 의미 있는 몸집을 만들고 자기 나름의 '작품 계열'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엉터리를 쓸 수밖에 없어요. 처음 글을 썼는데 그게 정말 좋은 작품이 된다?? 물론 간혹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소설가 중에 첫 작품이 대박이 나서 길이 남는 명저가 된 사례. 대표적으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있죠. 지금도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이고, 4천만부 이상이 팔린 엄청난 책이죠. 그런데 그런 사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한 두편 글을 쓰는 것만으로한 권 책을 내본 것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결국 오리지널리티는 꾸준히 작품을 써내려가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생깁니다그전까지는 머릿 속 생각으로 허공에 맴돌 뿐이죠그런데 ‘엉터리를 쓸 거면 쓰지 말아야 한다는 분들을 곁에서 가만 보니 대개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첫 시도를 하고 그만둬 버립니다. 나무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결연하게 말하지만, 실은 자신의 엉터리를 참아내기 힘든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요? (나무를 정말로 아낀다면,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꼭 개인만의 문제는 아닌 게, 우리나라처럼 잘하지 않으면 인정해주지 않고 실패하면 낙인찍어버리는 완벽지향의 문화권에서는 누구라도 자신의 실수와 부족함을 참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다짐합니다.


엉터리여도 괜찮다. 나에게는 졸작을 쓸 권리도 있다.“

 

엉터리라는 거름 속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엉터리라도 꾸준히 쌓아올릴 때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도 쌓인다는 사실을,

오늘 하루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IP *.181.10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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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1 17:51:05 *.35.236.87

가끔씩 글을 쓰면서 자신한테 실망하지만,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매일 몇줄씩이라도 쓰자고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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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2 10:57:59 *.162.255.216

제 글이 도움이 되셨다니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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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2 17:47:56 *.169.227.25

글리님의 글은 경험이 있는 글이고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글이어서  생명력이 있습니다.

저는 늘 공감하며 저의 것들로 재 해석하며 읽습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도 선수들에게 그러죠.  

'완벽한 선수가 (태어나서 존재하는) 있는 게 아니라  (학습과 경험을 통해서) 완벽해진 선수가 있을 뿐이다.' 

잘 하고 싶다면 하고 또 하고 또 하라, 잘 할 수 있을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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