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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5일 21시 08분 등록

“이 시상식은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한 번 마음 편지에서 다뤘던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 올)>가 지난 월요일 진행된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일곱 개나 받았습니다!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남성 주인공이 없어서 못 받은 남우주연상을 빼면 거의 중요한 상은 휩쓸었던 것이죠.


무엇보다 짜릿했던 것은 언더독으로 치부됐던 감독과 중견 배우들인 이민자, 괴짜들의 승리가 돋보인 무대였다는 점이었습니다. <에에올>은 괴짜 신인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이하 다니엘스 감독)이 공동 연출한 두 번째 장편 영화인데, 그들은 데뷔작 ‘스위스 아미 맨’(2016)에서 황당무계한 상상력을 보여준 전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이 두 감독의 세계관에 그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중견 배우들의 열연이 만나 흥행과 수상을 모두 거머쥐었습니다. 비중 없는 존재로 취급 받던 사람들이 모여 오스카를 휩쓸다니 얼마나 멋진지 모르겠습니다.


언더독 얘기가 나온 김에 조금 더 말하자면 그동안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 백인에게만 상을 준다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최근에는 이를 깨고 더 넓은 저변으로 수상자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지난 2021년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윤여정 배우에 이어 올해 <에에올>을 통해 양자경, 그리고 남우 조연상의 조너선 기호이 콴이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오랜 아카데미 수상자의 이름에서 동양인은 고작 세 명밖에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장벽이 아직도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우주연상을 받은 양자경 배우가 한 오스카 수상 소감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는 어린아이들에 이것이 희망의 불꽃이, 가능성이 되기를 바란다. 여성 여러분,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마세요.” 아시안계, 여성으로 성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는 그녀의 한 마디는 어쨌든 우리에게도 아직 희망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던 우리들에게도 숨겨진 기회가 있을 수 있으며,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동안 수많은 아시안계들이,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남우조연상을 탄 조너선 키 호이 콴도 수상 소감으로 (발표하는 내내 눈물을 쏟으며) “저는 제 꿈을 거의 포기했었지만 여러분들은 계속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조너선 키 호이 콴은 어린 시절 스티븐 스필버그의 발탁으로 화려하게 스크린에 진출했지만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1985)과 <구니스>(1986) 두 작품을 찍을 뒤 돌연 스크린에서 사라졌습니다. 아시아계 배우의 출연 기회가 바늘구멍보다 좁은 시절이었고, 베트남계 중국인인 그 역시 기회를 잡기 어려웠던 탓이었죠. 배우를 포기하고 스턴트맨, 무술연기 지도자, 연출부 등을 전전하며 고생하던 그는 아시아계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큰 성공을 거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을 보고 다시 기회가 왔다고 여기며 재기를 모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에올>로 주요 시상식 남우조연상을 싹쓸이하면서 할리우드를 정복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한국에서 직장을 구한 몇몇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에서는 여전히 아시아 국가 출신이면 ‘3등 시민’ 취급을 면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곤 합니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면 이런 인상을 더욱 강하게 받게 된다고 하더군요. 취업이든 직장이든 뭐든 전력으로 경쟁해도 살아남기 힘든 마당에 인종차별까지 당한다면 이기기 힘든 싸움에 끌려다니기 십상이지요. 그렇기에 이번 오스카가 (비록 한국인은 아니더라도) 아시안계의 인물들이 중요한 상을 받았다는 것은 매우 기뻐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오스카를 보면서, 어려운 난관이 있어도 계속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다 보면 결실을 맺는 날도 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정말 조금만 장애물이 생겨도 금방 포기하고 싶어지기만 합니다. 쓸데없는 노력에 힘을 기울이는 것 같고, 전혀 내 의도가 전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낙담하게 마련이지요. 그러나 모든 성공에는 노력이 있습니다. 쓰이지 않은 글과 그리지 않은 그림으로는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을 뿐입니다. 노력하는 것, 작은 성공을 이루는 것, 그것을 바탕으로 큰 성공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 삶에 멋진 장면을 불러들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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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7 16:08:09 *.217.179.197

[이번 오스카를 보면서, 어려운 난관이 있어도 계속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다 보면 결실을 맺는 날도 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폭풍공감합니다! 2021년 우리 나이 62세에 오랫동안 꿈꾸던 중학교 영어선생님이 되어 1년 반 동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과 함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올해 2월말 정년 퇴임을 하였습니다. 저는 올해 우리 나이 64세입니다. 그리고 다시 나이제한이 없는 중학교 영어 강사 모집공고에 계속 지원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은 저에게는 'The road taken'이 되었습니다. 윈스턴 처칠이 모교인 이튼고등학교 졸업식에서 했다는 축사가 생각납니다. 'Never give up! Never give up! Never giv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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