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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일 00시 42분 등록
며칠 제주에 와 있습니다. 이곳 제주에는 아주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지금도 내리고 있습니다. 제주에 내리는 눈은 놀면서 내리는 것 같습니다. 쏟아져 내릴 때는 미친 듯 퍼붓습니다. 오늘도 아닌 내일 서울로 가는 비행기 편이 끊길까 걱정할 만큼 쏟아져 내리다가도 잠시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멀쩡해 집니다. 햇빛이 쏟아져 내리고 하늘은 다시 파래집니다. ‘이제 눈은 다 왔어’라고 말하듯 상큼하고 맑은 얼굴이 됩니다. 그러나 오해입니다. 다시 세상 끝난 듯 쏟아져 내립니다.


전부터 제주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제주가 관광 도시로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이것이 제주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겪을 수 없는 날씨 변덕은 이곳이 아주 특별한 곳이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장소를 이동할 때 마다 예측할 수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제주의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흥분에서 낭패와 두려움으로 그리고 이내 다시 기쁨과 경이로움으로 몰아칩니다. 오늘은 이 변덕이 특별하고 매력적으로 여겨집니다. 아마 제주도 푸른 바다와 보름에 가까운 달과 쏟아지는 남국의 눈과 바람이 내 인생의 며칠을 즐기게 함으로써 나의 마음을 열어 놓았나 봅니다.


밤이 되어 눈 쌓여 덮인 정원을 걷다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맑은 날 어제 저녁 떠 있던 오징어잡이 배의 휘황한 불빛이 사라진 바다를 보다 문득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어두운 배경이 되기에 적합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둡다는 것은 아주 커다란 포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어두우면 비로소 아주 많은 별들이 빛나기 시작합니다. 좋은 스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빛낼 멋진 어둠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게는 그런 스승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나도 때가 되어 그런 어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전 까지는 내 뼈가 아직 튼튼하니 어둠을 빛내는 밝은 별이 되려고 애를 써야겠습니다. 그것이 어둠에 대한 빛나는 경배일 것입니다. 휴식은 내게 다시 힘을 불어 넣어 줍니다. 아이를 낳은 다음날 다시 들판으로 나서는 건강하고 근면한 아낙처럼 다시 다음 번 책을 꿈꾸고 매일 조금씩 써나가기 시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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