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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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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9일 04시 58분 등록


"한국 남성 특유의 응석이라는 표현을 접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응석은 일본남성의 전매특허라고 여겨져 왔던 것입니다. 여성에게서 어머니를 찾고 언제까지나 또 하나의 제멋대로 노는 어린아이로서, 아내에게 무한의 허용을 구하는 것이 일본 남성의 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에게는 그러한 남성을 떠받들면서 잘한다고 띄워주는 자존심 지켜주기 역할이 배당됩니다. 그런 것을 할 수 없다고 하며, 남성이 부여한 여성용 지정석에서 내려오라고 말한 것이 페미니즘이었습니다."

- 조한혜정, 우에노 치즈코 지음, ‘경계에서 말한다’에서 -


요즘 ‘드센 여자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투덜대는 당신에게 조금 해명이 되었나요? 페미니즘이란, 모성의 희생을 모두 여성에게 짐지우고, 남자는 어느 것도 손을 대려하지 않는 ‘응석’을 거부할 뿐이라고 하네요.


자녀양육이나 가사노동, 노인 봉양이 모조리 여자 몫이었습니다. 교육과 기회, 문화의 세례를 받은 현대여성이 어머니 세대의 삶을 물려받기에는 무리가 있을수밖에요.


생각해 보십시오.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는 어머니를 둔 딸들은, 수퍼우먼을 강요하는 그렇게 힘든 인생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겁니다. 전업주부의 딸들은 으스대는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며 그림자로 사는 일을 평생의 목표로 삼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는데 왜 그렇게 요구사항이 많으냐, 혹은 전통적인 여자로 사는 것도 의미있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저는 조용히 묻고 싶습니다. 평생동안 당신의 배우자와 역할을 바꾸어서 살아갈 수 있으신지요?


이 책의 저자 두 사람은 소문난 페미니스트입니다. 제각기 연세대와 도쿄대의 사회학과에 재직하며, 학문과 실천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입니다. 이 책은 여성운동은 물론, 국가와 근대같은 어려운 주제에 대한 접근을 도와줍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시야와 명쾌한 글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짧은 편지글 형식에, 정치와 가족과 여성을 중층적으로 꾸려넣은 조감도에 감탄합니다. 학문이라는 것, 공부한다는 것의 매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그것은 내가 속해있는 사회와 시대를 무한대로 확장시켜 읽을 수 있는 안경입니다.


또한 이들은 관심사의 변천에 따라 끊임없이 경계를 허물어가며, 실천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문화’에 이어 ‘하자센터’로 대안문화의 수장 역할을 해온 조한혜정은 요즘 들어 공동체건설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글쟁이가 산파에 교장을 하더니, 족장까지 할 모양입니다. ^^


우에노 치즈코도 만만치 않습니다. 젊어서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였으나, 시민주권과 장애인운동을 거쳐 고령사회에 대한 대비책에 푹 빠져있으니까요. 일찍이 ‘우에노세미나’를 통해 자신의 학생들에게 ‘오리지널’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그녀가 말합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 만큼 완고해진다는 것은 틀린 말이다, 반 세기 이상 살아보면 이 세상에는 별별 일이 다 있다는 것이 뼛속까지 사무치기 때문에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령이라는 미지의 경험에 접어들어 스스로 열어가는 변혁의 실천에 가슴이 뛴다구요.


연장을 바꿔가며 능란하게 싸움을 주도하는 조직패처럼 그들에게는 국경이 없습니다. 경계를 가로지르는 그들의 현란한 발걸음이 마치 춤사위처럼 매혹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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