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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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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2일 22시 42분 등록
지난 주에 보았던 영화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황석영의 소설을 임상수 감독이 연출한 ‘오래된 정원’입니다. 좀처럼 영화를 보지 못했던 제가 두 번이나 보았습니다. 투쟁 이외에는 모든 것을 사치로 여겼던 80년대 운동권 학생의 사랑과 시대의 아픔을 그린 영화입니다.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운동권 학생 오현우(지진희 분)는 도피를 하기 위해 갈뫼라는 산골마을을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 미술 선생 한윤희(염정아 분)를 만나 달콤한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면 미안한 시대에, 현우는 “숨겨줘. 재워줘. 먹여줘. 몸 줘. 근데 왜가니. 니가? 잘 가라 이 바보야.”라는 윤희의 절규를 뒤로 하고 떠납니다. 결국 현우는 붙잡혀 17년간 감옥생활을 하게 되고 윤희는 그의 딸 은결을 낳고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영화는 눈 오는 날 오현우의 출소장면에서 시작합니다. 다시 찾은 갈뫼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고 그는 오롯이 과거의 추억으로 빠져듭니다.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아갔던 분들을 거슬리지 않게 하면서도 놀랄 만큼 섬세하고 디테일한 감성을 자극합니다. 그 중의 몇 가지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윤희의 정원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날 밤 현우는 책장에서 그녀를 기억할 사진 한 장을 찾아냅니다. 그녀는 웃고 있었습니다. 브레이트 시집 속에서 미소 짓는 그녀의 얼굴 뒤로 낯익은 시 제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정시가 어려운 시대’.


나도 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 받고 있음을. 그의 목소리는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중략)

내 눈에는 바다에 뜬 초록빛 보트나 즐거운 돛단배들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부들의 찢어진 그물망만 보인다.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지금이나 따스한데,
왜 나는
지나가는 사십 줄 아낙네의 구부정한 모습만 이야기하는가?
시를 쓰면서 운을 맞추는 것은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 가슴속에는
꽃 피는 사과나무에서 느끼는 감동과
칠장이의 연설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놀람이 서로 다투고 있다.
정작 시를 쓰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두려움과 놀람 때문이다.


윤희와 그녀 엄마의 대화 장면도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녀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엄마의 타박에 “엄마 딸이어서 그런걸 어떡하우. 그냥 살게. 봐주세요.”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딸의 허벅지를 꼬집습니다. 그녀만은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장면입니다. 때마침 대청마루 위로 달은 휘영청 떠오르고 모녀가 나란히 앉아 조용히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가슴을 적십니다.

영화 말미에 감독은 화해와 소통을 시도합니다. 윤희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립니다. 그 중에 우스꽝스런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가족 사진입니다.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 예전의 그녀, 환자 모습의 그녀, 교복을 입고 있는 현우가 한데 모여있습니다. 그녀는 이 그림을 통해 삶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임상수 감독은 80년대를 모르는 세대에게 80년대를 쿨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방식은 다분히 시(詩)적입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저는 그 당시 중심에 서지 않았지만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를 떠올리면 무수히 많은 애틋한 감정들이 떠오릅니다. 절박하고 어두운 시절이었지만 분명 저에게도 짧지만 오랫동안 기억될 낭만이 있었습니다.

지금 나의 정원은 어떠한가? 바람이 모질게 불지도 않는데 햇살은 이따금씩 비추고 나무와 꽃, 잔디는 메마르고 황량하지 않은가? 내 글은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목석처럼 밋밋하고 깃털처럼 가볍다. 아, 어쩌면 진정 서정시가 어려운 시대는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이 아닐는지…엔딩 크레딧에 나윤선의 ‘사노라면’ 노래가 재즈 풍으로 울려 나오는데, 시(詩) 같은 영화 한 편을 보는 내 마음이 슬픔처럼 차분히 내려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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