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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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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일 18시 11분 등록

격리의 세상에서 생각하는 알피니스트 단상

 

멀리 있는 악우(岳友)가 안부를 물어왔다. 가까이에서 함께 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잘 있는가를 서로가 연발한다. 오래 붙들고 있던 전화를 끊은 뒤 나도 모르게 나오는 긴 한숨 끝에 그가 문득 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이라는 건 분명 지리학적 특성을 가진 높이의 개념일 텐데 이상하게도 거길 오르고 내려서고 다시 오르는 무수한 과정에서 사람이 개입하면서 산은 인간의 마음과 닿아 있는 또다른 하나의 큰 사람임을 알게 된다. 그 산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어느 순간, 그는 보게 될 것이다. 산이 거인처럼 자신 앞에 일어서는 광경을. 산과 닿은 인간이 알피니스트다.

 

알피니스트 Alpinist, ‘알피니스트는 일반적으로 등산가를 의미하며, 마운티니어mountaineer와 같은 뜻이다. 등산이 유럽 알프스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와서 일반화했다. 알피니즘을 실천하기 위해 높고 험난한 산을 대상으로 모험적인 도전을 하는 등산가를 의미하며, 등산이 알프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데서 생긴 용어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길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은 끊긴 것이 아니다. 다만 엉켜 있고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엉켜 있을 뿐이라고 말할 때 알피니스트가 생각하는 길의 의미는 중첩된다. 산의 길이든 인생의 길이든, 길은 이어지고 끊어지지 않는다는 사유방식, 다만 끝까지 간다거나, 잘 가고 있다거나, 길을 찾았다는 동사는 쓸 수 없다. 왜냐하면 길은 끝인지, 잘 가고 있는지, 찾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엉켜 있기 때문이다. 가던 길을 멈출 수는 있다. 그러나 알피니스트에게 가던 길을 멈춘 사태는 죽음을 맞이하거나 가기를 포기한 경우다. 산은 언젠가 엉켜 있는 길을 풀어줄 거라 믿는다.

 

사회적인 거리두기가 일상을 갉아먹는 중에 우리의 근육은 얇아지고 화는 늘어난다. 아이들은 그와중에 잘도 커가고 벌려 놓은 살림은 구질구질하다. 잡동사니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할 만큼 여기저기 흩어져 나를 비웃는다. 찾아오는 사람 없고 찾아가는 사람도 없다. 스승은 없고 친구는 멀다. 불안과 걱정은 쌓여가는데 붉은 해는 잘도 뜬다. 불안은 삶의 핵심이란다. 불안을 껴안고 죽으면 불안은 사라지겠지만 삶은 끝까지 부릅뜬 눈으로 이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까뮈는 말했다. 살기 위해선 불안을 달고 수밖에 없으니 불안은 삶의 핵심이라는 말은 참으로 옳다. 격리와 제한, 금지와 중단이 일상이 세상에서 끊어지지 않는 길을 가야 하는 알피니스트는 난처하다.

 

, 알겠다. 알피니스트에게 불안은 사람같은 산과 격리되어 있다는 사실과 산과 같은 사람과 멀어졌다는 사실이니 거리두지 않고 몸이 되어 섞일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곳에서 용케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불만족에 대해서조차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만족하지 않고 불안을 껴안고 살리라. 그러다 도저히 되면, 어쩌겠는가, 기다림이 오래 되면 나지막이 속삭이는 거지.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김장호, 1929~1999)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외로운 봉우리와 하늘로 가야겠다.

묵직한 등산화 켤레와 피켈과 바람의 노래와 흔들리는

질긴 자일만 있으면 그만이다.

산허리에 깔리는 장밋빛 노을과 동트는 잿빛 아침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혹은 거칠게, 혹은 맑게, 내가 싫다고는 못할

그런 목소리로 바람 소리가 나를 부른다.

구름 떠도는 바람 부는 날이면 된다.

그리고 눈보라 속에 오히려 따스한 천막 동과 발에 맞는 아이젠,

담배 가치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

들새가 가는 , 표범이 가는 길로 나도 가야겠다.

껄껄대는 사나이들의 신나는 얘기와 그리고

기나긴 눈벼랑 길이 다하고 뒤의

깊은 잠과 달콤한 꿈만 있으면 그만이다.



IP *.161.53.174

프로필 이미지
2021.06.28 16:06:57 *.52.45.248

그것이 어떤 길이든 단 하나의 질문에 답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 이 길에 마음을 온전히 담았느냐?' 

그렇게 당신이 선택하는 것과 그것들의 관계는 당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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