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2021년 8월 2일 05시 53분 등록

<나의 아저씨>란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인 이선균은 편의점에서 술 마시려다 쫓겨난, 상처투성이인 아이유를 보게 된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아이유에게 말한다. '



아프면 약을 먹어. 술 마시지 말고'




이 대목에서 거짓말 조금 보태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요즘 아프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유튜브를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서 올리지만 조회수는 100을 넘기기 힘든 현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유튜브 조회수와 인간 이범용은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본전 생각이 나다 보니 유튜브 조회수 숫자가 한 마리 파리처럼 내 머리 속을 한 동안 윙윙거리며 날아다닌다.




옛날에도 그랬다. 2007년 여름은 나에게 혼돈의 시간이었다. 그 시작은 달콤한 유혹에서 비롯되었다. 7년 동안 다니던 중견 기업을 나와 높은 연봉을 준다는 한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 만에 회사를 때려치웠다. 입사 후 첫날 점심 식사 후 십여 명의 동기들과 담배를 피우다 황당한 말을 들었다. 처음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이 놈의 회사가 자금난에 허덕이다 보니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10월이 되어야 밀린 월급을 한꺼번에 지급한다고 한다. 그것도 연봉의 70%만 지급하고 30%는 내년에 준다는 말을 듣고 미련 없이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다시 취준생이 되었다. 그 후 운 좋게 몇몇 회사에 입사는 했지만 사표의 손 맛을 본 내 심장은 쓸데없이 강해졌다.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사표를 남발하는 간 큰 백수가 되어 갔다. 그리고 3개월 동안 8번의 퇴사와 9번의 입사를 반복했다. 내 위는 알코올로 찌들어 갔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났다. 때론 비참해지기도 했다. 우울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맨 정신으로는 길고 외롭고 두려운 밤을 견디기 힘들었다. 술을 퍼 마시고 신세 한탄하며 홀로 서럽게 울던 날이 늘어갔다. 그 흐르는 눈물 속에서 그나마 조금씩 마음이 정화되어 갔다.



 

그 당시 비참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면 엉키고 꼬인 내 마음은 정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술을 마시고 눈물을 흘리니 마음이 정화되었다. 그리고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자 새 희망이 싹텄다. 그리고 다시 도전했다. 드라마 주인공인 이선균의 조언대로 술 대신 약을 먹었다면 마음의 응어리를 일시적으로 덮어 치유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에 그쳤을 것이다. 그럼 다시 그 흙을 비집고 응어리가 나를 잠식해 나갔을 것이다.

 



슬픔이란 감정은 나에게 종종 시간을 요구했다



슬픔이 어느 날 갑작스럽게 찾아와 내 몸과 영혼을 폭풍처럼 뒤흔들고 급하게 다음 날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사랑방 손님이면 얼마나 좋으련만. 얼음송곳처럼 내 심장에 박힌 슬픔은 술로 조금씩 오랜 기간 동안 녹여 주어야 사라져 가는 끈질긴 녀석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사실은 난 술 애호가는 아니다. 술은 감기약처럼 비참할 때 챙겨 먹는 마음 치료제일 뿐이다. 이게 그렇게 위로가 될 줄이야.



 

맞다. 나는 위로가 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고 억울해서 괴로운지 내 감정의 응어리를 주변 사람들에게 팍팍 티 내고 싶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슬픈지, 시험을 망쳐서 괴로운지, 회사에서 맡은 과제가 해결되지 않아 스트레스 받는지 제발 누가 나에게 물어봐 주길 바랬던 것이다. 설령 내 슬픔을 눈치 빠른 누군가 물어 봐 주어도 짧은 시간에 다 쏟아내고 위로 받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긴 시간 천천히 내 슬픔을 조각 내어 나와 너의 술잔에 퐁 빠뜨린 후 마시고 싶은 것이다. 슬픔도 품앗이처럼, 친구가 슬픈 날엔 친구의 슬픔을 내 술잔에 퐁 하고 털어 넣고 마셔 버린다.



 

설령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로 받은 상처, 간절히 바라던 일이 실패로 돌아간 좌절감도 말끔히 치료해 주는 신약이 개발되었다 하더라도 나는 그 약을 냉큼 먹고 싶지는 않다. 나는 냉엄한 세상이 안겨준 마음의 상처를 한동안 끌어안고 살아갈 자유를 잃고 싶지 않다. 그 자유 시간에 술을 마시고 울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며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하소연도 하고 싶다. 내 슬픔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세상에 알려 주고 싶다. 그 원인이 너의 그릇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니 앞으론 제발 조심하라는 경고도 날리고 싶다.



 

독립운동가인 한용운 시인의당신을 보았습니다란 시 속에는 내가 너무나 흠모하는 구절이 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 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이 시에서 시인의 당신은 조국 또는 부처, 아니면 마음속에 그리워하는 어떤 대상이나 희망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처럼 나도 술친구와 나의 슬픔을 조각 내어 서로 나눠 마시며 흐르는 눈물 속에서 너를 보고 위로 받으며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다만 요즘은 술이 익어가듯 나이가 들어가니 살짝 욕심이 생겼다. 슬픔보단 기쁨에 가득 찬 술잔을 자주 들며 외치고 싶다



Bravo my life 



IP *.37.90.49

프로필 이미지
2021.08.03 07:12:59 *.169.227.25
저도 노력하는 이유가 단 하나 입니다. 
격려의 말보다는 축하의 말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간의 비장한 각오보다는 일상 속의 성실한 노력을 강조합니다.
느낌이 있는 멋진 인생을 사시는 님으로부터 많은 배움이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21.08.24 05:54:58 *.37.90.49

순간의 비장한 각오보다는 일상 속의 성실한 노력을 강조하는 에킴백산님의 철학이 저와 결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느낌이 있는 멋진 인생~이 표현 너무 마음에 듭니다 ㅎㅎ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96 <알로하의 영어로 쓰는 나의 이야기> 시합은 나의 힘! 2 [1] 알로하 2021.07.11 1273
495 [월요편지 67] 50살 내가 5년 동안 새벽 기상에 성공한 방법 [2] 습관의 완성 2021.07.11 1432
494 그 여름, 설악가 [1] 장재용 2021.07.13 985
493 전입신고 어니언 2021.07.15 1139
492 [월요편지 68] 돈 많이 벌고 싶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 보세요(feat. 돈 버는 순서) [1] 습관의 완성 2021.07.18 1456
491 [화요편지]당신이라는 빛나는 '산책' [2] 아난다 2021.07.20 1575
490 아니 간 듯 돌아오라 [2] 장재용 2021.07.20 1212
489 친구가 되어줄래요? 어니언 2021.07.22 924
488 [용기충전소] 죽음은 특별한 게 아니었네 [1] 김글리 2021.07.23 1194
487 <알로하의 영어로 쓰는 나의 이야기> 어떤 영어책을 읽어야 할까요? 알로하 2021.07.25 63108
486 [월요편지 69] 중소기업 다니던 내가 삼성에 입사할 수 있었던 3가지 이유 [4] 습관의 완성 2021.07.25 1597
485 [화요편지] 근원으로 이끄는 에너지 [2] 아난다 2021.07.27 1043
484 황령에서 금련까지 [1] 장재용 2021.07.27 1166
483 [용기충전소] 상실을 견디는 법 [1] 김글리 2021.07.30 1050
» [월요편지 70] 슬픔은 나에게 시간을 달라고 했다 [2] 습관의 완성 2021.08.02 1021
481 [화요편지]나는 왜 그리 빠르고 싶어하는가? [2] 아난다 2021.08.03 1413
480 산에 가면 돈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장재용 2021.08.03 1083
479 [용기충전소] 보고도 보이지 않는 배 [1] 김글리 2021.08.06 1101
478 <알로하의 영어로 쓰는 나의 이야기>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1] 알로하 2021.08.08 1308
477 [월요편지 71] 인생, 안 바껴요. 그렇게 하면... [2] 습관의 완성 2021.08.08 1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