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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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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9일 11시 57분 등록

 

손꼽히는 솟대 작가로부터 전시회에 들러달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나는 그 작가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두어 달 전에 내게 전화가 걸려와서 당신을 솟대작가라고 소개하셨고, 제법 긴 대화 끝에 가까운 시일 내에 기필코 한 번 보고 싶으니 서로 인연의 마음을 내어보자 청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도록 한 권이 도착했습니다. 손으로 눌러 쓴 편지도 한 통 담겨 있었습니다. 작가의 솟대 작품은 흔히 보는 솟대와는 달랐습니다. 죽은 나무의 뿌리나 밑동, 가지 등을 자연스럽게 살려 작품으로 빚어내고 있었는데, 모양만이 아니라 그 질감이 특별했습니다. 마치 청동이나 다른 금속을 소재로 한 공예 작품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 작품은 정말 책상 위에 모셔다가 두고두고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특별한 질감의 비밀은 우선은 정교한 손 작업의 힘이겠지만 결정적인 힘은 옻칠에 있었습니다. 작가는 교직을 그만두고 耳順을 넘긴 나이에 솟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남들은 힘들어서 이제는 하던 사람들도 모두 그만두는 추세에 있는 옻 작업을 작가는 그 연세에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작가는 그 십 년의 세월을 왕따로 지낸 세월이라고 했습니다. 남이 버리고, 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겪은 깊은 고독의 세월을 작가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대단한 정치 인사가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작품을 얻고 싶어 했어요. 이제 세상이 내 고독이 빚어낸 결과에 제대로 관심을 주기 시작한 증거겠지요. 나는 아들에게 말했어요. 정말 하고 싶고 그걸 통해 독창적 세계를 이루고 싶다면 왕따로 살아라! 살아보니까 한 십 년은 그렇게 살아야 하늘도 응답을 하는 것 같더라!”

 

작가는 방송을 통해서 나를 만났다고 했는데, 묘하게도 내가 숲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어떤 동류의식을 느끼신 모양입니다. 아들에게 하신 말씀을 내게 전하시는 것은 내게도 그렇게 고독한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도 왕따로 살고 있나? 나도 깊은 고독의 시간을 보내고 있나? 생각해보니 아주 조금 그런 것 같습니다. 숲으로 떠나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홀로 묻고 홀로 답하며 살와 왔으니까. 어느 책에도 실려있지 않은 답을 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고독의 시간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고립감을 느끼며 살아오고 있으니까.

 

하지만 최근 나는 나의 고독이 너무 옅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고 예술입니다. 그 분야가 스포츠든 미술이든 글이든 농사든, 혹은 시장에서 호떡을 파는 일이든, 그 어떤 일이든 물오른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그들에게서는 일이 예술이 됩니다. 저명한 솟대작가의 작품은 한 점 한 점 물오른 삶을 투영하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물오른 삶의 첫 번째 근원이 고독한 시간에서 배어 나오는 것이라고 내게 가르쳤습니다. 내게도 물오른 삶,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더 깊이 고독하게 스스로를 마주하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더 깊이 고독하여 쉰 살쯤에는 나도 물오른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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