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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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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27일 11시 57분 등록

인생은 산파가 장의사에게 보내는 소포다

- 스페인 유머 -

 

땅~

가벼운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오릅니다. 외야수가 펜스 쪽으로 달려가지만 타자는 이미 2루까지 진출했습니다. 관중들의 함성과 응원에 경기장이 들썩거립니다. 선수 한명 한명 마다 응원가가 불려지고, 수천 명의 응원열기와 뜨거운 에너지, 연인들의 키스타임, 사랑의 프로포즈 등 도무지 지루할 새가 없네요. 야구장에 가면 재미있다기에 팀 회의를 야구관람으로 바꾸기를 잘했습니다. 응원석에서 조금 떨어진 1루수쪽 위치였지만 우리는 흥겨웠고, 스트레스 해소와 단합을 위해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야구장에서 소설가가 되기로 결정한 무라카미 하루끼가 생각납니다. 78년 4월, 혼자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관전하던 29세의 무라카미는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애기합니다.

 

1회말 선두 타자인 데이브 힐튼이 좌측 방향으로 안타를 쳤다. 배트가 강속구를 정확히 맞추어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졌다. 힐튼은 재빠르게 1루 베이스를 돌아서 여유있게 2루를 밟았다. 내가 ‘그렇지, 소설을 써보자’ 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다. 맑게 갠 하늘과 이제 막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 새 잔디의 감촉과 배트의 경쾌한 소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조용히 춤추듯 내려왔는데, 나는 그것을 확실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아내 요코와 재즈 바를 경영하고 있었지만, 서점에서 원고용지 한 뭉치와 만년필을 구입, 봄부터 시작해 가을에 소설 한편을 단숨에 완성합니다. 그것이 문예지 신인상을 받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입니다. 영화같은 이야기입니다. 궁금하군요. 그는 어떻게 야구장에서 소설가가 되는 영감을 얻었을까요?

 

야구선수와 무기력과의 상관관계도 재미있습니다.

야구경기를 하는 투수와 타자, 수비수 중 제일 무기력한 사람들이 타자라고 합니다. 투수는 한 경기에서 10개 정도의 안타를 맞을 수는 있지만 수비수와 협의하여 27명을 아웃 처리하니 자기통제권과 자기결정권이 강합니다. 수비수는 자기한테 오는 공의 대부분을 잘 막고, 한 경기에서 많아야 한두 번 실수합니다. 그런데 타자는 한 경기에서 안타를 1개 치면 잘 치는 선수입니다. 평균적으로 열 번 나와서 세 번밖에 원하는 대로 못 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 그룹 중에서 징크스를 제일 많이 가진 사람들이 타자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상황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상관없는 것 사이에 연관을 짓고, 인과관계를 만든다는 것이지요. 결국 자기통제권, 자기결정권이 약할수록 인간은 무기력해진다는 것인데, 이는 카이스트에서 뇌과학을 가르치는 정재승 교수의 얘기입니다. ‘인생에서 많은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성공한 인생’ 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인생은 B to D라고 합니다. B는 Birth(태어남)이고, D는 Death(죽음)입니다. B와 D 사이에는 C, Choice(선택)가 있습니다. 한 순간의 선택이 삶 전체를 좌우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나이가 들수록 절감하게 됩니다. 야구에 몰입했습니다. 혹시라도 하루키처럼 인생의 결정적인 선택을 알려주는 영감이 오기를 기다렸지요. 무기력하게 삶을 살아가는, 기껏해야 징크스에 자신의 삶을 내맡기는 그런 포지션이 아니라,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지니고 죽을 때까지 현직일 수 있는, 그런 직업의 선택을 알려주는 영감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만 보입니다. 미친 듯 악을 쓰는 열혈 팬들, 신나게 응원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추억을 쌓는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과 맥주통을 메고 생맥주를 파는 청년의 얼굴에 핀 고단함에서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겹쳐집니다.  사람이 제 인생의 주제일수도 있겠군요

 

가만히 살펴보니, 영감을 기다리는 마음속에는 비겁함과 욕심, 착각이 들어있습니다. 후회없는 선택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철학의 정립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으로 움직이는 사람인지, 자신에 대한 공부와 세상에 대한 지도를 완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한 노력없이 내 선택에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비겁함, 그러면서도 단 한번의 실수도 하고 싶지 않고,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은 욕심, 그것이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착각! 그것이 영감을 기다리는 마음의 바탕이군요. 그렇게라도 잘 살아보려는 마음이 사랑스럽기도 합니다.

 

7회말, 비가 많이 와서 경기가 중단되었지만 응원은 더 화려해졌습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오자, 모두가 빗속에서 말춤을 춥니다. “응원석에서 응원하면 정말 재밌겠어요!” 누군가의 소리를 들으며, 다음에는 치어리더 앞줄에서 열광적인 응원을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음주가무를 열렬히 사랑하는 저에겐 야구장보다는 말춤을 추는 콘서트 장이 영감을 받기에는 좋은 장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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