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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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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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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3일 00시 14분 등록

철판 위의 곱창은 노릇노릇 알맞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소주 잔을 드리며 물었습니다.

 

"신부님, 섭섭하지 않으세요?”

“아니, 가야할 때 가는 것이라 아주 마음 편해요.”

 

“신부님의 하루는 어떤가요?”

“늘 같지. 출근길에 장례식장에 가서 모니터를 살펴봐요. 지난 밤에 호스피스 병동에 계신 환우분이 혹시 돌아가셨나 살펴보느라.. 아침 6시에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첫 일정이고, 수술실로 가서 그날의 수술환자를 위해 기도드리고, 병동에 가서 환우들을 만납니다.”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으세요.”

“병동에서 만난 환우들이 고맙다고 해요. 나야 수술 전에 그냥 손만 잡아주고 기도를 해 준 것 뿐인데, 그 기도가 너무 고마웠다고 인사하는 환우들에게 내가 고맙지요.”

 

“보람있었던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었지..처음 병동을 라운딩 할때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간호사들이 있었거든.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아침에 병동에 가면 나를 기도가 필요한 분들이나 시끄러운 환자들에게 데려가요..금방 조용해지니까..(웃음) 그런데 얼마 전에, 평소보다 병동에 늦게 갔더니, 간호사 한명이 환자에게 기도를 하고 있더라고...”

 

“그런데요?”

“그 간호사가 ‘신부님이 오늘은 못 오시는 것 같습니다.. 대신 제가 기도 해드리겠습니다.’ 하면서 수술환자를 위해 기도를 하는데, 뭐랄까..그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어요.”

 

“캬..신부님 좋으셨겠다. 한잔 하시죠!”

“좋아요..완샷~”

 

**

지난 주, 4년 동안 병원사목을 했던 시몬 신부님의 송별미사가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의 환우들을 위해 헌신했던 신부님은 인상깊은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평소에는 못 느끼다가 우연히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수술실의 슬리퍼가 그런 경우입니다. 저는 아침마다 수술실에 들러 수술을 앞둔 분들의 손을 잡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슬리퍼의 뒤축이 닳아서 내려않은 걸 봤습니다. 뛰어다닌 것도 아니고, 수술실에서 하루에 15분씩 수술환자를 위한 기도만 했을 뿐인데..닳아버린 슬리퍼를 보니, 지난 세월의 흐름이 실감났습니다. 제가 병원사목을 하면서 매일 이곳에서 하는 공식적인 행위가 미사봉헌입니다. 그리고 미사 봉헌 전에 늘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 이 미사가 저의 첫 미사처럼, 저의 마지막 미사처럼,

그리고 단 한번뿐인 미사처럼 봉헌하게 해 주십시오.”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에서 항상 첫마음, 첫 자리를 떠올리고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서 신부님은 송별사를 마쳤습니다.

**

 

신부님과는 인연이 많았습니다. 사십대 중반, 인생의 강을 힘겹게 건너가는 저와 동갑이고, 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같았습니다. 작년에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노래팀을 만들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신부님 방에 모여 노래연습을 하고, 한달에 한번씩 공동체 미사 때마다 노래를 불렀습니다. 송별미사에는 신부님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신부님을 위해 준비한 노래를 합창할 때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신부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축복 남발’ 이라는 평소 주장에 심하게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송별미사 전 가진 곱창집 술자리에서도 신부님은 힘주어 말했습니다.

 

“신부는 축복을 주는 사람입니다. 신부는 축복을 남발해야 해요.

사제의 기쁨은 누군가를 축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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