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내용 중에서 10분의 1이나 이해했을까? 아니다. 그래도 좋다.’ 몇 달 전 하인리히 뵐플린이 쓴 <르네상스의 미술>을 읽고, 다시 훑어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마음편지’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보고 나서 뭔가를 보는 방식과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르네상스의 미술>은 저자가 ‘고전(klassisch)’ 미술의 시대라고 부르는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미술품을 다루고 있습니다.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먼저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을 예로 들어 회화의 발전 과정을 보여줍니다. 르네상스의 절정기에 별처럼 반짝이는 거장들의 보는 방법에 대해 뵐플린은 “위대하게 보는 방식은 모델을 내면으로부터 이상화하는 것이다. 외면을 이상화하는 것, 그냥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괴테의 주장처럼 “진정한 내면적 실재를 가지지 않은 것은 생명이 없고, 위대할 리도 없고, 위대해질 수도 없다”는 것이죠.

책의 2부에서는 고전 미술 양식의 전반적인 특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미술품을 아무렇게나 봐왔음을, 나의 안목이 얼마나 낮은지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뵐플린은 “우리의 시각은 대충 전체적인 인상만 보면 되는 현대의 수많은 화보 그림들을 통해 대단히 표피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옛날 그림들에 대해서는 기초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판”이라고 한탄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자신에게 예민한 것을 보고, 그것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또한 보이는 것을 믿고, 믿는 것을 봅니다.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와 비슷한 것들을 먼저 보고 자주 봅니다. 그래서 다르게 보지 못하고,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종합적인 관찰력’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충동이 파도처럼 일었습니다. 30대 중반의 괴테가 로마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그림을 배우고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보는 눈’을 훈련시킨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그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자세히 감상하면서 “기꺼이 고백하자면 이런 공부는 인생을 오래 살면서 얻는 최상의 기쁨들 중 하나다”라고 말했습니다. 뵐플린도 <르네상스의 미술>의 서문에서 “미술사 훈련을 통해서 보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의 즐거움”에 힘입어 이 책을 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기>에서 모든 일에 필요한 것으로 관찰력을 꼽습니다. 표현력은 인식력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눈에 한정해서 말하면 표현기술은 관찰력의 수준까지만 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표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표현 기술과 함께 인식의 범위를 넓히며 관찰력을 키워야 합니다. 괴테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긴 세월의 노력으로 확실하게 눈을 수련하는 일이다. 질문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공부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죠.

<르네상스의 미술>은 빨리 읽을 수 없었고 읽는 내내 어려움과 즐거움이 교차했습니다. 독서의 속도를 늦추게 만드는 어렵고 즐거운 책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안인희의 “지금까지 알았던 것과는 다른 시선으로 미술 작품과 인간과 자기 자신을 보는 방법이 여기 생생히 드러나 있지 않은가”라는 감탄은 과장이 아닙니다. “한번 확고한 토대를 얻으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처럼 보는 법을 배우는 것도 어렵고 즐거운 오랜 과정일 거라 생각합니다. 보는 법을 익힐수록 ‘마음편지’도 넓어지고 깊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