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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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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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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5일 00시 33분 등록

‘먹는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깊숙한 만남이에요. 어떤 관계도, 애정도, 감정도, 지식도 음식만큼 우리 몸을 철저하게 관통할 수는 없어요. 아무리 뜨거운 연인이라 해도 음식만큼 깊숙이 몸 안에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거에요.

- 곽세라. 영혼을 팔기 좋은 날 -

 

오래 전, 태몽을 물었을 때, 어머니는 ‘동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 동태요? 많은 생선 중에 하필 동태가 뭐에요?”

“니 태어날 때 마당에 동태가 궤짝으로 쌓이는 꿈이었다.”

 

“뭐 특별한 거 없었어요? 태어날 때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진다거나, 지나가던 스님이 “이 아이는 크게 대성할 아이니, 잘 키우시오’ 말을 했다던가..뭐 그런 거요?”

어머니는 의아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말하셨죠.

“없는데...”

 

신비로운 출생의 비밀하나 없다는 아쉬움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동태’ 를 새삼스레 기억나게 한 것은 단골식당입니다. 그 집은 동태찜과 전골, 동태탕 전문입니다. 집에서 십분 거리지만, 주변에 식당이 없는 외진 곳에 있어서 단골들만 찾습니다. 처음에는 전날의 숙취가 몸을 괴롭히고, 얼큰한 탕이 그리울 때 이집을 찾았습니다. 요즘은 마음이 허전하고 외로움이 느껴지면 이곳을 찾습니다.

 

가정집을 식당으로 개조했는데 멋스러움이 있습니다. 남향인데 1층 전면에 통유리를 설치해서 창 너머 펼쳐지는 산의 풍경이 시골정취를 자아냅니다. 저는 주말 오전 10시나 오후 3시쯤 찾아갑니다. 끼니를 때우려는 손님이 없는 한가로움을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그 시간대에 가야 햇살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즈넉한 시골풍경과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의 따뜻함, 라디오에서는 시내트라의 노래가 나오고, 구석에 있는 커다란 벽난로도 제법 운치 있습니다. 입구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가져 와 마시면 서울근교 카페에 놀러 온 것 같습니다.

 

"멍 때리기 좋지요?“

“네.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네요.”

“가끔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참 좋아요.”

 

반찬을 날라주며 단골이라고 말을 건네는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시골사람의 건강함과 바지런함이 배어있습니다. 식당 앞에서 햇살을 맞으며 공구함을 정리하는 큰 몸집의 아저씨와 잘 어울리는 부부입니다. 끓는 뚝배기에 올려진 채로 나오는 동태탕은 의외로 깊은 맛이 납니다. 깨끗하고 정갈한 분위기 탓인지 더욱 별미처럼 느껴집니다. ‘이 맛나는 음식이 6천원이라니..’ 아름다운 가격입니다.

 

“휴가는 언제 가시냐?” 고 물으니, “작은 풍경이 좋다”고 합니다. 자영업자이다 보니, 휴가를 가더라도 늘 신경쓰이고, 바다를 보러 멀리 가는 것보다는 ‘집 앞 작은 솔잎가지 같은 것을 보는 것’이 더 좋다고 합니다. “일이 힘들지 않느냐?” 고 물었더니 ‘시골일에 비하면 견딜만 하다’ 며 웃습니다.

 

“시골일은 배우는 게 있어요. 콩 타작을 하다보면 저걸 언제 끝내나 하는데, 어느새 보면 뒤에 이만큼 쌓여 있잖아요. 조금씩 하다 보면 결국 된다는 성취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밭을 갈다 보면 끝도 없는 일에 질려버리게 되거든요. 근데 저쪽에서 어머니가 보여요. 어머니랑 같이 일하면서 함께 하는 걸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도시에서는 시골만큼 일이 재미없어요. 이정도 일로 돈을 버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아주머니가 ‘어’ 하며 깜짝 놀랍니다. 가게 앞을 지나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갑자기 쓰러진 것입니다. 아주머니는 남편을 불러 할아버지를 가게 앞에 앉히더니, 집에 들어가 담요를 가져와서 할아버지를 덮어드립니다. 할아버지는 신발도 신지 않고 다니는 동네의 치매노인입니다. 연락을 받고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셔 갔습니다.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아주머니는 ‘부모님을 모시고 싶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부모님에게 받은 만큼 해 드리지 못했어요. 그래서 효도를 바라지도 않아요. 그런데 부모님들은 그분들이 해주신 것만큼, 자식들에게 좀 받았으면 좋겠어요. 안타까워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어요.”

 

저녁마다 두부 숭숭 넣고, 동태 한 마리, 국물은 한솥 가득이었던 동태 고추장 찌개. 유년시절의 몇 안 되는 기억입니다. 마당에 동태가 궤짝으로 쌓이는 어머니의 태몽은 궁핍한 살림, 끼니 걱정에 노심초사했던 모습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음식을 다루는 영화나 만화에서 ‘머나 먼 고향의 맛’이니,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맛’ 이니 하는 표현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호들갑스럽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탁자에서 햇살이 어른거리더니 과거의 영상을 만들어냅니다.

 

저녁마다 한 솥으로 끓여 먹던 유년기의 음식!

그때는 미처 몰랐던, 그 깊고 뜨거운 관계를...

 

 

[안내]

 

무기력.jpg

 

변화경영연구소 6기 박경숙 연구원이 신간 "문제는 무기력이다” 를 출간했습니다.

이책은 대한민국 1호로 인지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가 10년 이상의 체험과 연구결과 및 통합인지과학에 근거하여 작성한 마음사용 설명서입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는 무기력을 해소하는 방법에 관심있는 분은 아래를 링크하시면 됩니다.

http://www.bhgoo.com/2011/463344#24

IP *.34.22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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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09:10:18 *.236.3.225

그 느낌 알 것 같아요. 솥단지에서 동태탕을 끓어갈 때 굴뚝에서는 허연 연기가 어둠속으로 퍼져 나가고...

몸안 깊숙한 여정때문인지 '잊지 말라'는 말이 없어도 동태를 기억할 수 밖에 없나 봅니다.

겨울 가기 전에 그 집에 한번 들러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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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5 16:17:31 *.30.254.29

그 집 홀 최대인원이 40명 정도 되더라...

안 그래도 어떻게 멤버들을 초청하나 고민 중야...

멀어서...오라 하기도 좀 미안하고..

밤 10시에 문을 닫는 집이라..

낮이나 오전에 와야 하는데..

 

응 어디 날 잡아서 밤새 술 먹고

꼴딱 밤 새운 다음날 해장으로 가면 딱 좋을 듯..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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