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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2012년 2월 18일 00시 03분 등록

아주 오랜만에 다시 왔습니다. 앞으로 자주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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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유명한 루이스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 (Alice through the looking-glass)라는 후속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 소설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의 손을 잡고 숲 속으로 달린다. 하지만 앨리스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이유를 묻자, 붉은 여왕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거울 속에 비친 것처럼 모든 것이 반대로 가는 거울 나라에선) 단지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 쉼 없이 뛰어야 해. 그리고 만약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는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단다. 이 장면은 오늘날 기업이나 개인 간의 쫓고 쫓기는 경쟁 상황을 비유하는 데 곧잘 쓰인다. 그래서 '레드퀸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하면 무한경쟁 상태를 의미한다.

 

군대에 있을 때 레드 퀸 효과를 몸으로 체험한 적이 있다. 군대에서 받은 얼차례 중에 폭풍 구보라는 것이 있었다. 잘 알다시피 군대에서는 개인이 잘못을 해도 연대책임을 진다. 팀웍을 키우기 위한 좋은 방법이기는 하다. 소대원 중 한 명이 실수를 하면 전 소대원이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에 집합시킨 후 소대를 둘로 나누어 연병장의 양 끝에 세운다. 그리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구보를 시킨다. 한 쪽이 한 쪽을 따라 잡으면 그 쪽은 얼차례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하지만 따라 잡힌 쪽은 밤새 더 무시무시한 얼차례에 시달려야 한다. 

 

이 폭풍구보는 경쟁의 방식이 구보 말고는 없다. 나나 경쟁상대나 다 동일한 방법으로만 경쟁해야 한다. 또 결승점도 없기 때문에 상대보다 조금 잘 한다고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상대를 제압해야만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한 쪽의 소대원들이 모두 육상선수 출신이 아닌 이상, 이 게임에서 상대를 제압하기란 불가능하다. 즉 압도적이지 않다면 별 다른 의미가 없다. 약간 더 잘 한다고 해서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쪽의 소대원들이 평균적으로 다른 쪽 소대원들보다 달리기가 빠르다 해도 그것이 압도적이지 않는 한, 이기기도 어렵지만 이겨도 별 소득이 없다. 이미 진을 다 빼고 난 후에야 이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한번 도 폭풍구보에서 한 쪽이 다른 쪽을 추월한 적은 없는 것 같다. 결국 탈진할 때까지 뛰었던 기억만 있다. 그럴 때면 언제나 챙이 긴 붉은 모자를 푹 눌러쓴 조교가 야비한 미소로 우리를 조롱하곤 했다.

 

 경제학에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 바로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는 것이다. 1970년대 필립 브리크먼과 도널드 캠벨이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쾌락의 크기를 비슷하게 유지하려면 이전보다 더 강한 자극이 있어야만 하는 인간의 특징을 빗댄 말이다. 여러분도 경험을 해 봤겠지만 연봉이 올라도 잠시 즐거울 뿐, 쾌락의 수준은 다시 내려간다. 오른 연봉이 이제는 당연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최초 연봉이 올랐을 때 느꼈던 수준의 쾌락감을 느끼려면 오른 연봉의 40% 이상이 또 올라야 한다는 실험결과가 있다. 세상에 그런 직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상에 그런 직장은 없다. 결국 결코 도달하지 못할 목표를 향한 결코 끝나지 않을 추구를 의미하는 것이  쾌락의 쳇바퀴이다.

 

붉은 여왕은 붉은 모자의 조교처럼 조롱하듯 미소를 지으며 쾌락을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 그 쳇바퀴 속에서 멋있는 양복을 뽑아 입은 사람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 뿐만 아니다. 앳된 얼굴의 학생들도 학부모와 함께 열심히 뛰고 있다. 한시라도 뛰지 않으면 쓰러져 낙오하고 마는 그런 상황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스펙 쌓기를 한번 보자. 요즘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위 ‘스펙’ 쌓기가 유행처럼 되었다. 영어로 사양, 명세서 등을 뜻하는 ‘Specification’의 준말인 이 스펙은 2004년 이미 우리나라 국립국어원에 ‘신어(新語)’ 자료집에 수집될 정도이다. 취업 준비생들은 출신 학교와 학점, 토익 점수와 자격증 소지 여부, 그리고 해외 연수나 인턴 경험 유무 등을 종합해 ‘스펙’이란 두 글자로 줄여 부르고 있다. 학창 시절 동안 자신이 확보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의 총체가 스펙인 셈이다.

 

그러다보니 남들보다 1점이라도 더 높아야 하고, 하나라도 더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옛날에는  토익 800점도 대단한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들 900점 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와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나아졌지만- 우리 때는 700점만 되도 최고 수준이었다. - 상대적으로 나아지는 것은 없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인 ‘붉은 여왕이 돌리는 쳇바퀴’ 인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이런 쳇바퀴에서 붉은 여왕의 조롱을 받으며 오늘도 뛰고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사람마다 많은 이유가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수많은 이유를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경쟁의 실체를 너무 모른 채 경쟁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경쟁은 나쁜 것이니 자제하라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경쟁이 세상을 발전시키니 장려하라고 한다. ‘나가수’를 보면 경쟁도 좋구나 싶다. 청중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아무리 유명한 가수도 탈락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평소 볼 수 없는 멋진 무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취업의 경쟁에서 낙오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경쟁과열이 젊은 사람들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 같아 답답하기 이를 때 없다. 뭐냐 너, 경쟁의 정체는?

 

경쟁은 한 가지 얼굴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여러 종류의 얼굴이 있다.  경쟁에는 100m달리기처럼 상대를 직접 제압하지 않고 룰에 따라 일방적으로 하는 경쟁이 있는가 하면 전쟁이나 격투기처럼 상대를 직접 제압해야 하는 대결적 경쟁이 있다. 그리고 경쟁이 방법이 한 가지로 제한 된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경쟁 방법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시사점은 경쟁의 유형에 따라 승리를 위한 관건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경쟁의 방법이 한가지로 제한되어 있을 경우에는 상황이 좋지 않다. 달리기만으로 싸워야 하는 100m와 같은 일방경쟁을 생각해 보라. 결승점이 정해진 대학입시, 기업 입사, 승진 등이 그런 유형일 것이다. 이 경우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있다. 결승점이 있기 때문에 win-lose결과가 생긴다. 그나마 결승점도 없는 무한 경쟁인데다가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대결경쟁이라면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경쟁상대를 압도할만한 실력을 가지지 않을 경우, 폭풍구보와 같이 모두 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붉은 여왕이 우리를 조롱하며 쾌락의 쳇바퀴를 돌리는 영역이 바로 이 두 유형의 경쟁이다.

 

반면, 일방경쟁이던 대결경쟁이던 경쟁의 방법, 도구가 하나 이상이면 상황은 훨씬 나아진다. 상대와 자신을 차별화시킴으로써 다양한 전략적 어프로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종격투기나 축구 등은 대결경쟁이지만 다양한 전략으로 상대와 경쟁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스포츠라 승패가 갈리기는 한다. 하지만 다음엔 다른 전략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누군가 달리기를 싫어 하고 소질도 없어도 100m달리기는 항상 달리기로만 경쟁해야 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달리기가 좋고 잘하는 사람은 덕분에 늘 이길 가능성이 높지만 등산을 좋아하는 나는 다리 근육이 뛰어나도 100m 경주에서 쉽게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이종격투기는 반드시 복싱이나 레슬링만으로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잘하는 다른 방법으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에 패배자도 자신에게 맞는 전략을 갖추면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굳이 승패를 가리는 스포츠가 아니라도 경쟁 방법이 다양한 경쟁은 얼마든지 있다. 당장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재미있게 가는 경쟁을 생각해보자. 참가자 각자가 가장 재미있게 가는 방법은 수천 가지일 것이다. 반드시 럭셔리한 리무진 자가용을 타고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산을 충분히 즐기면서 올라가는 경쟁은 또 어떤가. 전략적 자유도가 높아 차별화가 가능하다. 참가자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경쟁이다. 

 

세상에 그런 경쟁이 어디 있느냐고? 그렇다 세상은 우리에게 그런 경쟁을 요구하지 않는다. 세상이 요구하는 경쟁은 언제나 ‘붉은 여왕의 쳇바퀴’안에서 뛰는 경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세상이 요구하는 경쟁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경쟁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경쟁을 만들어서 할 수도 있다. 다만 상상력과 용기가 부족해서 세상이 만들어 놓은 경쟁의 틀에 갇혀 있는 것 뿐이다.

 

모두들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모두들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과정을 선행 학습해야 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 이런 것들이 모두 부모의 상상력과 용기 부족으로 자식들을 ‘붉은 여왕의 쳇바퀴’에 밀어 넣는 매우 비전략적인 결정임을 모르는 것뿐이다.  

 

경쟁을 잘 하는 것, 그 자체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전략적’인 것이 아니다. ‘전략적’이라면 자신이 할 만한 경쟁을 먼저 선택해야 한다. 나폴레옹이나 칭기스 칸과 같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략가들은 항상 이길 수 있는 전쟁과 이기기 어려운 전쟁을 구별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즉 전략적이지 못한 이유는 ‘상상력과 용기’의 부족 때문이다.

 

스펙은 그만 쌓아도 된다. 대신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용기를 가르쳐라. 그래야 아이들이라도 붉은 여왕의 쳇바퀴에서 박차고 나올 수 있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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