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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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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0일 23시 35분 등록
 

저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닌데 몰입독서를 합니다. 나와 궁합이 맞는 책은 고스란히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일부가 됩니다. 어떨 때는 단 한 줄짜리 문장에 반응하여 줄줄 울기도 하고, 남루한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합니다.  워낙 의미중심적이고 자기최면이 강한 성격이라 그런 것 같은데요, 나쁘지 않습니다. 좋은 책 한 권을 발견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하나씩 열리는 기분이거든요.

김찬호의 ‘생애의 발견’에서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인용의 힘’과 ‘연구하는 자세’입니다. 이 책에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인용이 나오는데요, 어쩌면 그렇게 모조리 촌철살인 격인지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적재적소에 인용을 쏘아주려면 얼마나 많은 자료를 섭렵해야 했을지, 지독하다고 해야 할 저자의 연구력에 절로 머리가 조아려졌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생활의 단면을 묘사하기 위해 저자가 동원한 인용은 이런 것들입니다.

“저와 잠깐 결혼해 주시겠어요?”

결혼 지속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프랑스에서 청혼할 때 그렇게 능청을 떠는 이들이 있답니다. 이 부분에 접하면 누구든지 실소를 금치 못하는 동시에 세태의 변화에 대한 만감이 스쳐갈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이런 조크도 있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두 번째 남편은 고고학자였는데, 누군가 고고학자 남편을 둔 것에 좋은 점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물론 있지요. 내가 나이가 들수록 남편이 나에 대해 점점 관심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웃기면서도 씁슬한 진실을 알려주지요? 그런데 이런 인용들은 모두 다음 이야기를 하기 위한 사전 포석입니다. 저는 다음에 인용된 일화를 읽으며 가슴 한 복판이 저려 왔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렸는지,  배우자에 대해 이만한 연민을 지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켕길 정도였습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싸움에 지친 어느 부부가 각자의 감정을 암호로 표시하여 싸움을 예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군인인 남편은 퇴근할 때 모자를 비뚤게 쓰는 정도로, 그를 맞이하는 아내는 머리를 꼭 동여매는 정도로 기분의 저조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괜찮은 쪽이 좋지 않은 쪽을 배려해 준다는 원칙을 세웠다.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싸움이 줄어들었다. 서로의 기분을 섬세하게 살피게 될 뿐 아니라 배우자를 마주하기 전에 자신의 기분을 돌아보면서 ‘정말로 내 기분이 그렇게 나쁜가?’라고 자문하게 되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확실하게 표현하면서 기쁨을 증폭시킬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모자를 아주 비뚤게 쓰고 퇴근했다. 공교롭게도 아내 역시 어떤 일로 기분이 몹시 나빴던지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마주친 부부는 처음에는 매우 당황하여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곧 와락 달려들어 포옹했다고 한다.

저는 김찬호에게서 ‘좋은 인용’의 전범을 보았습니다. 꼭 필요한 곳에 자리한 인용이 글 읽는 맛을 더해 주고 감동과 설득력을 강화해주는 위력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인용도 실력'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이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인용을 하기 위해, 평소에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세상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흔해빠진 인용을 또 써먹는다거나, 다른 사람이 애써  발굴한 인용구를 도용해서는 안되겠지요. 실제로 A급 저자 한 사람이 김찬호의 글에 나온 인용구를 무단으로 재인용한 데 대해 사과문을 올린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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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0.02.10 23:37:02 *.233.107.10
요즘 올린 글 제목들이 하나같이 딱딱하게 여겨져
낚시성 제목  한 번 붙여 보았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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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pio
2010.02.11 10:39:03 *.246.196.65
그노무 낚시 바늘에 제대로 걸렸는데요...

명석누님이 올리시는 글 꾸준히 읽으면 저도 재미있는 글쟁이가 될 수 있을까요....
늘 '전략'이라는 주제는 딱딱하여 재미있게 할 방도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란 신념만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전략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많이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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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2.11 20:25:37 *.209.239.32
지난 번 호랑이 오프에서 건호님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풍부한 컨텐츠, 뛰어난 전달력에 지치지 않는 에너지까지
그야말로 '성공의 초상'같이 느껴졌지요.
제가 건호님에게 배울 점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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