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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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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0일 06시 27분 등록

가게 일을 마치고, 맥도널드에서 신문사설을 베꼈다. 좋은 글을 베끼면, 좋은 인생이 될 것 같다.

대학교 때, 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 애는 벌써 2차 패스했어. 법전을 슬쩍 보기만해도 머리에서 정리가 되지'

인지 능력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난 인지능력이 타인에 비해, 모자른 것 같다.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아차리는 데 타인보다 느리다. 조직에 들어가서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신입사원 시절, 사람들이 나를 왕따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몇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라며,  퇴사후 무릎을 쳤다.

삶이 광속으로 변해가는 요즘에 나같은 인지 능력을 가진 사람은 불리하다. 에어리언2 마지막 부분에서, 리플리는 아이를 안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 매뉴얼을 읽고, 설명서대로 하는데, 나에게는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문자로 된 매뉴얼을 읽는 것은 고역이다.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몸으로 부딪혀서 시행착오를 한 뒤, 매뉴얼을 볼 때 이해가 된다.
 
컴퓨터 모니터상으로 읽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 같은 문자인데도, 출력해서 읽어야 의미가 들어온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타입은 말을 어렵게 하는 사람이다. 상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간다면, 그도 제대로 모르면서 떠들고 있다고 판단한다. '전문가는 일반인에게 전문분야를 쉽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한 피터드러커의 말은 명언이다.하지만, 나는 이해 못하는 데, 옆사람이 이해하면 당황스럽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세상 따로 나 따로였다. 내가 원하는 정보만 취하고, 다른 것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편협해진다. 내가 잘 아는 분야만 이야기하면, 대화가 안된다. '깊이'란 나만 깊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 깊이 들어갈 지를 알아야 의미가 있다. 전체 분위기 파악 후, 전문성이다.

요즘 대박을 터뜨리는 '빅뱅'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 상품이다. 그는 스스로도 가수보다, 사업 및 기획이 자기에 맞다고 이야기한다. 서태지가 시나위를 나와서 솔로 록 앨범을 준비할 때, 댄스 앨범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춤꾼 이주노를 영입한 것도 그다. 시대의 조류를 파악해서 그에 맞는 요소를 상품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작년에 500억 벌었다는 기사를 보고,  먼 하늘을 보았다.)

로버트 라이시의 '부유한 노예'에서는 서태지 같은 사람을 기크geek라고 하고, 양현석 부류를 쉬링크shrink라고 부른다. 서태지와 양현석의 관계는 애플의 스티븐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과 비슷하다. 개인용 컴퓨터를 만든 것은 스티브 워즈니악이고, 그것을 상업으로 연결시킨 것은 스티브 잡스다. 

작년 춤 선생님의 경우, 초등학교 시절부터 춤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다른 것은 몰라도, 춤에서 만큼은 입력이 빨랐다고 한다. 스폰지 처럼 정보를 흡수한다면, 그 분야는 강점이 될만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학원에서만 발휘할 뿐이었다. 진로에 대해서 물으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난감해했다. 강점이 수입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강점은 사장되기 쉽다.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장과 시대를 모르면, 내 강점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때문에, 내 분야를 찾는 것 만큼이나 '나는 어떻게 인지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 결정을 잘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보가 필요하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최적의 판단을 할 가능성도 높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게 맞는 일을 찾을 것이 아니라, 내게 맞는 인지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좋아하는 일보다 상위다.

나는 쓰면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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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길이다.
'몰입'에 관련된 글을 쓸려고 앉았는데, 엉뚱한 곳으로 와버렸다. 신비롭고, 오묘하다.

IP *.3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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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2.11 10:49:27 *.190.122.154
옆에 사람들이 이해하더라도 곤혹스럽게 여기지 않아도 됩니다.

저 같은 사람은 적당히 몰라도 아무런 표시도 내지않고 그냥 고개를 끄떡이며 넘어가죠.

뛰어난 사람들의 말을 적당히 주어 담아서 많이 아는 척 해보지만 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자신도 이해를 하지 못하므로 말만 어려워지는 경향이 있지요.

어느 때 부터인가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거기가 공부의 시작점이 되기는 하더군요...

=

맑은님.

바쁘실테지만 시간 내셔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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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9.02.12 00:41:40 *.129.207.121
바쁘긴요. 찾아뵈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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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9.02.17 00:45:01 *.208.192.28
ㅎㅎㅎ 마지막 문장이 좋네요. 왠지 얼마전에 본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길을 보면 왠지 위로가 된다.
널찍한 도로나 반듯한 길거리 보다는 걷다가 언제든지
걸터앉아 다리쉼을 할 수 있는 뒷골목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면 더욱 그렇다. 길이 있는 한 삶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야할 길보다 무작정 걷는 길이 더 좋았다.
왜냐하면 그런 길의 끄트머리에는 반드시 고달픈 한 몸쯤은
누일 만한 집이 나타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김소진의「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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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부
2009.03.01 16:54:31 *.167.143.73
자신의 길을 찾고 있군요.
모르고 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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