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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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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5일 06시 0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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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부터 그림을 시작했다. 사정상 잠시 쉬고 있는데, 조만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막상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까, 생활이 늘어진다.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배움에는 시기가 있다. 지금도 어렵다면, 나중에는 더 배울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림 수업의 첫번째는 모사 다. 따라그리기다. 따라그리다보면, 형태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고, 분명히 파악한 형태를 조합한 것이 창작이다. 처음부터 창작하기는 어렵다. 어떤 작가건 습작의 시기가 있었다. 

모사에는 관찰력이 필요한데, 그리는 대상을 수없이 보면서, 연필로 스케치북에 옮긴다. 그러기를 반복하면, 어느 시점에서 몰입이 일어난다. 즉, 눈과 손이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움직인다. 빛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서 연필을 쥐는 힘도 달라져야 하는데, 이 또한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아서 나아간다.

'내가 그린 그림인가?'

그리기를 멈추고, 그림을 보면 잠깐 신이 내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몰입을 경험을 하고나면, 자아는 더 강해진다'는 칙센 미하이의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수업을 마치면, 발걸음이 가볍고 활력이 생긴다. 가게에서 그 활력을 가지고, 장사를 한다. 음식장사에서 사장의 무기력 만큼이나 밥맛 떨어지는 것은 없다. 그림 그리기가 사업에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간접적이나마 이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게다가 실력이 늘어서, 내 맘대로 그릴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그때는 직접적으로 사업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려도, 무언가 모자른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선생님이 잠깐 손을 봐주면 신기하게도 그림이 살아난다. 왜 그럴까? 생각 해보니, 선생님은 '보는 힘'이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내가 무시하고 지나치는 '디테일'을 선생님은 세세하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이 정도 쯤이야'라고 넘겨버린 디테일을 선생님은 성심껏 표현했다.

정신과의사나 전문 카운셀러는 듣기 훈련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과 이야기하면, 그들은 들음으로써 힘있게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느낀다.  '들어주기' 자체가 치유다. 왜 병드는가? 씹히기 때문이다. 듣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귓구멍 뚫렸다고, 혹은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말 알아듣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비단 체력과 같아서,  단련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디자인이나, 미술 쪽, 시각에 관련된 사람은 '보는 능력'이 단련되어 있다.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은 이들이 그만큼 훈련했기 때문이다.

웹디자인은 1픽셀의 미학이라고 한다. 1픽셀까지 파고든 디테일이 모여서 전체를 만든다. 이 디테일을 위해서 디자이너들은 며칠이고 날밤을 샌다. 열정적으로 일한다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할지라도, 내 손때를 구석구석 묻히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사람만 구해놓으면 알아서 돌아가겠지'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직원들은 내 손과 발의 확장일 뿐, 사장처럼 생각하지 못한다. 사장 눈에 보이는 것이 직원들에게는 안보인다. 때문에 사장이 현장을 지키지 않으면, 시스템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림으로 나는 무엇을 배우는가?

보이지 않는 것까지 신경쓰는 섬세함. 그리고, 대충해도 되는 것은 대충해버리는 대범함.
IP *.201.20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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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2.15 20:44:47 *.220.176.165
맑은 님의 글은 언제나 저를 격려하는 글이 됩니다.

그 격려가 마냥 칭찬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그런 격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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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9.02.16 02:31:28 *.129.207.121
조만간 요리도 배울 예정인데, 그 전에 찾아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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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9.02.16 01:35:24 *.209.172.49
'선생님은 나보다 보는 힘이 강하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디테일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동의합니다.

그림 이야기에 끌려 읽다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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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백수
2009.02.17 21:47:07 *.169.160.191
저도 놀면서? 웹툰을 시작한 사람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까지 신경쓰는 섬세함.
그리고, 대충해도 되는 것은 대충해버리는 대범함."
정말 마음에 드는 말입니다.

와우~!! 기록해 둬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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