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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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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8일 18시 38분 등록

인생의 첫번째 갈림길 - 우리들의 청년시절

 

피가 끓어올라도 모자랄 20대의 나는 불행하게도 현실이라는 거대한 매트릭스의 숙주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 채 하릴없이 방황하던 그저 그런 원오브뎀 중 하나였다. 그때 만난 신해철의 음악은 내 영혼을 송두리째 사로잡으며 우리를 우리답게 하지 못하는 매트릭스에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을 종용했다. 그의 음악을 통해 강렬하게 내게 던져진 철학적 메시지는 나만의 자기다움을 삶의 중심영역으로 끌어들일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고 그때부터 나의 의미심장한 여정은 시작되었다.

 

잠시 그 당시 나를 비롯한 젊은이들에게 장엄한 분위기속에 흐르는 감성적인 선율로 긍정적인 도발을 서슴치 않던 신해철의 또 다른 역작 '길 위에서'의 가사를 음미해 보도록 하자.

 

차가와지는 겨울바람 사이로 난 거리에 서 있었네. 크고 작은 길들이 만나는 곳. 나의 길도 있으리라 여겼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어가다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웟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었지.


무엇을 해야하나. 어디로 가야하는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끝없이 뻗은 길의 저편을 보면 나를 감싸는 건 두려움. 혼자 걷기에는 너무나 멀어. 언제나 누군가를 찾고 있지. 세상의 모든 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삶의 끝순간까지 숨가쁘게 사는 그런 삶은 싫어.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세속적인 룰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지 실감할 수 없는 나이였음에도 나는 직관적으로 나답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두에게 그랬겠지만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내 앞에는 두가지 길이 놓여져 있었다. 누구나 예외없이 진입해야 할 것처럼 세상이 매끈한 포장도로로 준비해 놓은 평범한 샐러리맨의 길과 누구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울 만큼 불확실성과 두려움으로 가득찬 자기다운 길 말이다.

 

 

예상했겠지만 나의 첫번째 선택은 당연하게도 전자의 길이었다. 나다운 길에 대한 아쉬움을 내 가슴속에 묻어둔채 그 이후 10년의 세월이 흐르는동안 나는 서서히 현실이라는 매트릭스에 길들여져 갔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 억눌러 왔던 자기다움의 불씨는 점점 희미해져 갔을 뿐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고 다양한 형태의 모피어스를 통해 현실에 무기력하게 순응하는 삶에 대한 의구심은 점차 커져만갔다. 이를 계기로 나는 서서히 나만의 관점을 가지고 그렇게도 획일적인 것처럼 보였던 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승자독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 함께 하는 세상의 길로 접어들다

 

설익은 젊은이의 패기와 암울한 현실에 대한 반발심으로 이른바 학생운동의 길에 어설프게 들어섰던 나는 군대와 직장생활을 통해 말 그대로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어 갔다. 그때만 해도 정치와 사회에 대한 나의 시각은 내 삶과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관념의 세계에 불과했고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숨가쁜 하루하루였다.

 

자기다움을 희생하고 세상에 굴복한 댓가로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확보한 어느 날 나는 우연한 계기로 정치인 노무현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내 보잘것 없었던 정치의식에 불을 지폈고 꽤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었던 정치.사회적 부채의식을 자극했다. 이 상식적이며 원칙을 중시하는 호시우행의 정치인의 행보를 지지하고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이 삼십이 넘도록 실감하지 못했던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이 나라 정치의 현주소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내 삶의 작은 주변부에만 머물던 나의 시선은 세상을 향하기 시작했다. 기적같던 노무현의 승리는 상식과 원칙이 승리할 수 있다는 용기를 내게 심어주었지만 참여정부 5년동안 집요하게 이어진 기득권 세력의 분탕질과 개혁진보세력의 좌절은 현실이라는 매트릭스가 얼마나 견고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이미지 출처 : 싸이클럽 ICanDI 박현우님)

 

이 과정에서 나는 절망하기 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안정이라는 허울속에 가둬두고 보이지 않게 지배하는 이 괴물과 단호하게 맞서 싸워야 함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고 이미 그 대열의 선봉에서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지혜를 갖추고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는 유시민이라는 또 다른 정치리더를 만나기에 이르렀다.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유시민 한 사람의 힘만으로 우리가 꿈꾸는 함께 사는 세상이 쉽게 오지 않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이 견고해 보이는 승자독식의 세상에 작지만 의미있는 균열을 만드는데 분열과 파괴로 대표되는 적대적 대응보다 훨씬 강고한 위력을 발휘할 사람에 대한 무한사랑과 상식적이며 균형잡힌 접근이 더 유효함을 알고 있을 뿐이다. 길을 잃은, 아니 길을 잃도록 강요받고 있는 이들에게 더불어 사는 세상의 가치를 다시 심어주고 그 여정에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만들 수 있는 매개체로 유시민을 발견하고 그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잠시 보류하고 총대를 매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은 자기다움이 가장 지켜내기 어려운 정치분야에서 자기다움을 잃기는커녕 확실하게 무기로 삼아 브랜딩에 성공한 독특한 정치인이다. 그는 리버럴리스트의 기질을 타고났지만 암울한 현실앞에 슬퍼하고 노여워할 줄 아는 휴머니스트이자 함께 사는 세상을 기치로 내걸고 한발 한발 묵묵히 전진해 가는 실천을 겸비한 이상주의자다. 아마도 유시민은 그 자신의 자유와 자기다움을 존중받고 싶듯이 모든 사람들이 그 어떤 차별과 편견없이 그리고 속박없이 자유롭게 자기다움을 존중받고 어우러질 수 있는 세상을 꿈꿀 것이다. 이 단순명료한 공감대가 내가 그의 여정에 동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창조적 부적응자들의 유일한 길 - 자기다움을 브랜딩하라

 

경제가 어렵다 한다. 서민들의 고달픈 삶의 주름이 더 깊어짐에도 가진자들은 그들의 부를 일구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자본주의의 총아 금융시스템이 더이상 황금알을 낳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다. 경기가 활황이건 침체이건 사실 그들만을 위한 정부의 행보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권력을 받쳐주고 있는 가진자들의 부를 보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그 상황을 철저하게 이용할 뿐이다.

 

현실이라는 매트릭스는 그 근간을 이루는 숙주들의 행복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 숙주들이 혹시나 진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들의 권력도 끝이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이 매트릭스속에 갇힌 숙주로 살아가고 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창조적 부적응자(확신은 못하지만 자기다움의 중요성을 직관적으로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들의 발호야말로 세속의 룰을 관장하고 있는 세력이 가장 경계해야 할 사안인 것이다.

 

자본주의가 점차 심화되고 그 유탄의 피해는 한동안 철밥통으로 믿어왔던 샐러리맨들의 튼실한 울타리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요즘의 직장은 안정이라는 말과 결별한지 오래고 평생 샐러리맨으로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이들을 한순간에 백수상태로 만들거나 포화상태의 살벌한 자영업 세계로 몰아내고 있다. 물론 훨씬 오래전부터 단지 살아남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시간을 쓸 여력이 없는 대다수 서민들의 처지와 비교하자면 아직도 고생이 뭔지 알려면 먼 수준이겠지만 온실속 화초처럼 길들여진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큰 충격은 없을 것이다.

 

이들은 또 한번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있는 셈이다. 조금 더 고생스럽긴 하지만 여전히 익숙해 보이는 길로 들어서서 남은 인생 역시 세상이 시키는대로 그렇게 살아갈 것인지,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이라는 마약과 단호히 결별하고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자기다운 삶의 격랑속으로 거침없이 뛰어 들어가 나다운 방식과 재능의 발현을 통해 스스로 정의한 의미있는 성공에 도전할지 말이다.

 

 

단언컨대 기득권자들이 정해놓은 세속의 룰을 계속 선택하는 한, 우리는 영원한 마이너이자 후발주자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은 패배의식이 영원히 우리를 지배하기 바라고 있으며 실제로 우리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거나 비하하기에 바쁘고 기득권으로 편입될 수도 있다는 거짓유혹에 이끌려 매트릭스의 충성스런 숙주를 자임하기도 한다. 자기다운 길을 선택할 때 다가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 훨씬 더 잔인하며 보장된 실패의 길을 95% 이상의 사람들이 선택하고 있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현실속에서 네오같은 창조적 부적응자들에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자기다움의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이미 그 길을 맛본 모피어스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들은 스스로를 먼저 구원했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이들이 용기있게 자기다움을 찾는 여정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멘토이자 역할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네오이고 모피어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매트릭스를 박차고 자기다움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 괴물의 헛점이 생각보다 쉽게 드러날 것이다. 에이전트 스미스의 최후처럼 자기다움 브랜딩에 성공한 창조적 부적응자들이 매트릭스에 새겨놓은 작은 균열하나가 지금 당장은 영원할 것만 같은 가진자들의 실질적인 독재의 끝을 잉태하는 의미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유시민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지지하고 있는 우리들도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우리 자신이 어떤 기질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그런 삶을 통해 이루고 싶고 만나고 싶은 미래는 무엇인지 밝은 대낮에 꿈을 꾸어야 한다. 이 자기다운 꿈의 지도를 가지고 자기다움을 발현하고 숙성시켜 브랜딩한 후라야 우리는 생존자체가 위협받고 자존감을 훼손당하고 있는 훨씬 더 많은 서민들을 '함께 사는 세상'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전위부대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무엇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 나의 자기다움을 사랑하고 있는만큼 다른 이의 자기다움을 존중하고 사랑해주자. 다름, 그 위대한 위안이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만끽하는 그날까지 자기다움 브랜딩에 매진해 보자. 자기다운 방식으로 부대끼지 않게 자신을 평생토록 달뜨게 하며 행복하게 만드는 놀이같은 일을 이끌어내 보자. 세상에 유일한 자기다움이야말로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속적인 차별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재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자기다움의 회복과 브랜딩이 필요하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어느 것 하나 매트릭스라는 괴물과 자기다움과의 싸움이 아닌 것이 없다. 어떻게 우리가 발딛고 서있는 현재의 구도를 우리 자신이 설정한 스트라이크 존으로 재편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정적들의 아킬레스건을 찾아내고 공략하는 것보다 우리들이 지향하는 정치함의를 어떻게 더 많은 이들에게 쉽고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런 고민도 사치가 될 수 밖에 없는 서민들의 가슴을 어떻게 어루만져주고, 그들 스스로의 참여만이 그 구조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줄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온통 남의 것들이 판을 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코리아니티는 폄하되기 일쑤이고 이른바 선진국에서 들여왔다는 제도와 정책은 과대포장되거나 선의를 잃은채 왜곡된 영향력을 발휘하기 일쑤다. 사회면을 불쾌하게 장식하는 수많은 사건사고와 비판기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마치 사회 전체가 그렇게만 흘러가고 있는 것처럼 희망을 말살하고 자기답게 사는데 도전하는 이들을 조망하는데 인색하다.

 

왜 박원순 변호사가 주도하는 희망제작소의 다양하고 창의성 넘치는 시민운동이 미디어를 통해서 소개되고 전파되지 않는가. 조폭의 생리를 연상케할만큼 노골적인 언론장악에 나선 철면피정부에 맞서 최소한의 자기다움을 지켜내려 울부짖는 YTN과 일부 KBS 노조원들의 상식적인 항의는 왜 많은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지 못하는 것인가.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 사회구성원간의 진솔한 소통에 기여해야 한다. 긍정의 힘도 필요하고 냉철한 비판과 대안제시로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을 고민하는데 더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경제를 살리는 것만큼 어려운 길도 없다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경기상황과 상관없이 근본적인 경쟁력을 오랫동안 담보하고 싶다면 평생직업으로 삼을만한 일을 찾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지금 당장 회사를 때려치라거나 직업을 확 바꾸라는 얘기가 아니다. 약간씩 개인차는 있겠지만 더이상 자신의 경력과 능력이 회사로부터 필요없다거나 더 나은 이들로 대체할 것을 통보받기 전에 자기만을 위한 투자를 시작하라는 뜻이다.

 

자기 기질에도 부대끼지 않고 그 일의 결과보다는 행위 자체가 좋은 일을 찾아서 이왕이면 타고난 재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자기다운 평생직업을 설계하고 아주 조금씩 실험적 시도를 통해 만들어가 보자. 처음부터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 일을 대하지는 말자. 정말 놀이처럼 즐길 수 있는 일을 설계했다면 자기다움으로 경제적인 걱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문화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문화에 휘둘리고 위축되어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개개인의 자기다움 발현이 왕성한 사회는 문화 자체가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는 유기체와 같다. 정치인 팬클럽이 무겁거나 진지하기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거창한 명분과 대의를 앞세운 문화활동보다 의미있는 일이다. 더이상 기성언론의 기자들만이 여론을 주도하고 언론의 중심을 자처하는 일이 자기다움으로 무장한 블로거들의 등장으로 무색해지게 된 것도 고무적인 문화적 흐름 중에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것이 어디로 향한 길이건 어떤 분야와 관련되어 있건 우리는 자기답게 뚜벅뚜벅 걸어 가야한다. 비록 방식이 다르고 경로가 다르고 도착하는 시간이 다를지라도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그 어떤 차별과 편견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 모든 이의 자유와 꿈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에서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될 것이니 말이다. 모두가 하나인 동시에 특별한 다름을 가진 개체로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조화로운 세상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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