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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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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6일 07시 15분 등록


지난
주말에 가까운 천문대에 다녀왔습니다. 천문대는 별을 관찰하는 곳입니다.

드높은 하늘에 펼쳐진 수도 헤아릴 없는 별들 중에서 우리가 사는 이곳을 특별히 <지구별>이라 부릅니다. 태양계에 있는 많은 별들 중에 유난히도 푸른 빛을 띄는 너무나 아름다운 별에 지금 우리들은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별에  우리가  살고 있지만 사실을 순간순간 느끼고 사는 사람들이 매우 드문 것은 다름아닌  스스로를  거울보듯이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항상 바깥의 것들만 습관적으로 갈망하는 현대인의 성향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거의 습관적으로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대한 불평을 입에 달고 세상을 살아 갑니다. 어느날 우연한 기회로 나보다도 형편이 어려운 다른 이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야 그제서야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것의 소중하고  행복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어쩔 없는 우리 한계입니다.

 

정돈된 태양계 여러 별들의 모형들을 바라보다가 지구별과 아주 가까운 달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달의 전설이 한때 연인들의 심금을 울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전화나 이멜이 없었던 예전의 연인들은 둥근 달을 바라보며 서로의 모습을 그리워하곤 했습니다. 칠흑같 어두운 휘영청 밝은 달은 사랑하는 이들의 하나 밖에 없는 검색 엔진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과 백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 멀리 항해하는 일을 두려워 했습니다. 이유는 지구표면이  평평하기 때문에 아주 멀리 끝으로 가다 보면 자칫  지구 밖으로 미끄러져서 아예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들으면 말도 안되는 우스운 이야기로 들리지만, 때만 하더라도 그것은 심각한 사실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의 흐름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낭만적인 요소들을 뽑아 기계적 디지털 게임 형식으로  빠르게 도식화시켜 버리는 현실이  못내 아쉬울 따름입니다.

 

달나라의 어딘가에 아직 토끼가 살고 있다는 동화적 환상은 이미 오래 전에  잊어 버렸지만  제가 아는 친구 하나는 아직도 대만 출신의 여가수가 불러서 한때 수억 명의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린 달에 관한 사랑노래를 지금도 가끔씩 구성지게 흥얼거리며 불러서 우리들을 즐겁게 만들어주곤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태양계 밖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그저 먼지보다도 미세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가끔 뒷뜰에서 발견하곤 하는 개미들은 그것에 비한다면 훨씬 보이는 존재입니다. 유사 이래로 사람들은 매일 떠오르는 태양의 뒷편에 전능하신 신이 살아 계신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태양계를 주관하시는 권능의 신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면 너무 뜨거워 타버릴 같고, 멀리 떨어지면 반대로 차갑게 얼어 붙을 같은 두렵고 복잡한 정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목숨을 부지해가며 그렇게 흘러가는 인생들을 살았습 니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과학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가 우주의 전부 아니었음을 판명하자  학자들은 경악했습니다. 은하수를 건너서 끝없이 무한대로 펼쳐지는 1000억개 이상의 별의 집단인 광활한 <안드로메다> 발견에서는 과학자가더라도 누구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놀라서 열린 입을 다물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와 같은 광활하고 거대한  은하계 같은 것들이 우주 안에는 수도 헤아릴수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는 더욱 놀라운 현실 앞에서는 그저 막연히 어떤 무한의  위대함을 체험한다는 두려운 경외감 외에는 우리가 어떤 세상의 수식어로도 표현할 길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같은 거대하고 위대한 우주의 섭리를 앞에서 접하고 난다면 우리는 과연 무슨 생각이  들어야 정상일까요 ? 매일 아침에 졸린 눈을 부벼뜨고 일어나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며, 늘과 비슷한 내일을 기약하며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다투며,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움켜 쥐려고  이기적인 욕심을 불태우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저 수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에만 사로잡힌 함량미달의 인격체일까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그렇게 작은 존재이기만 하단 말입니까 ?  

가끔씩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보는 도시의 풍경은 안에 넣을 있을만큼 매우 작아보입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장난감처럼 아기자기하게 보이고  가끔씩 날아다니는 경비행기는 무선 작동으로 움직이는 조립 비행기처럼 보입니다.

 

순간적으로 나의 존재가 커보이고  내려다 보이는 대상이 작아 보이는 착각 아닌 착각에  빠집니다. 한편으론 사람들이 아둥바둥 사는 모습이 애처로와 보입니다. 그들이 다투고 채우고 싸우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작아 보이기도 합니다. 안스러워 보입니다. 앞으로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스스로 단단히 다짐도 해봅니다.

 

이와 같이 공중에서는 스스로도 훌륭해 보이는 앞날의 계획이 무한적으로 가능합니다.
하지만 익숙 했던 장면이 바뀌고 이내 비행기를 내리고 차를 갈아타고 도시로 들어서면 오래 지체할 것도 없이 순간에 나는 그들처럼 말하고 다투고 채우고 싸우면서 하루 시작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내 절망합니다.

 

우리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계획을 세우고 일을 위해 신께 기도합니다. 한때 계획된 일을  인내하며 추진하고 자신있게 뜻을 펼쳐 보기도 하지만, 또한 현실은 뜻대로 되어지지 않고 우리를 가끔씩 오랜 절망의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려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얼마 시간이 흐른 후에는 스스로  부시시 다시 일어나기도 합니다.

 

다시 일어날 때마다 조금씩 겸손을 배우기도 합니다. 자신감과 자만심은 종이 차이라 것도 알게 됩니다. 더군다나 세상은 절대로 혼자서는 살아갈 없는 곳이라는 것도 명히 인지하게 됩니다. 넘어지는 횟수만큼 배움의 경지가 넓어집니다.

 

삶에서 나타나는 발견은 결국 그것을 기대하는 각자의 시각의 차로 인해 크고 분명하게 라져 보일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무기력하고 변화가 없음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여지없 어제와 같은 지루한 오늘이 기다리고 있을것이며, 빛나고 눈부신 하루를 매일 스스로 꾸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역동적이고 황홀한 시간이 분명하게 다가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광활하고 위대한 우주의 한모퉁이 그중에서도 태양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별인 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별에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복이라 말할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와같이 아름다운 지구별을 보존하고 지켜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입니다.

 

이전에 선배가 말한것 처럼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 그것이 진정한  변화 경영이며 인생의 성공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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