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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 이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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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8일 13시 36분 등록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회사일로 지방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평소에 서로 껄끄럽게 지내던 한 선배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세시간 넘어 운전하는 동안 우린 서로 서먹하게 필요한 몇 마디 말 밖에 나누지 않고 번갈아 운전만하며 내려갔습니다. 처음 들른 도시에서 세 군데쯤 거래처를 방문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런 저런 업무를 바쁘게 보고나니 훌쩍 시간이 많이 흘러버려서 부랴부랴 저녁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황급히 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동시간이 네 시간이면 족할 거리가 그날따라 도로 위에 큰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거의 아침이 되어서야 두 번째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번갈아 가며 드문드문 눈을 부치기는 했지만 두 사람 모두 기진맥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아침 해장국에서 국밥을 한술 뜨다가 나는 문득 무언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만 들고 다니던 서류가방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가방 안에는 어제 거래처에서 받았던 수표도 여러 장 들어있었으며, 오늘 만날 거래처에서 설명할 메모도 함께 들어있었던 아주 중요한 서류가방이었습니다. 잠시 생각을 더듬어보니 어젯밤 저녁을 황급히 먹느라 식당에 그냥 두고 온 것이 거의 확실했습니다. 나는 천천히 눈앞에서 국밥을 먹고 있는 선배를 쳐다보았습니다. 무어라 말할까? 아마도 내가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면 분명 선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대뜸 욕을 해댈 것입니다.

 


밤을 거의 새우면서 어렵사리 차를 몰고 왔는데 잃어버린 가방을 찾으려 왔던 그 길을 지금 다시 가야 한다면 아마도 나 역시 참지 못하고 그에게 욕을 해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이곳에 나는 쉬고 있을 테니 너 혼자서 부리나케 다녀오라고 짜증을 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까 망설이던 나는 국밥을 반쯤 비운 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습니다. 가방을 잃어버렸노라고.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노라고. 괜찮으면 여기 기다리고 있으라고. 내가 혼자 다녀오겠다고.

 


하지만 그날 아침에 매우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는데, 그 선배는 내 얼굴을 한번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화를 내기는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조수석에 태우더니 자기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나에게 피곤하면 잠시 눈을 부치라고 친절하게 미소까지 지어주며 다시 고속도로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같은 그의 행동을 옆에서 바라보며 그 순간 나는 분명 감동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사람에게서 받은 감동은 그날 이후로 나로 하여금 모든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게 해주었으며 겉모습이 아닌 사람들의 속 모습을 발견하려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찰할 수 있는 끈기와 인내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어느 경우에든 말만 앞세우는 무책임한 사람들과는 어쩐지 함께 오랫동안 일하기가 어려울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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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08.10.09 00:48:04 *.129.207.121
그렇게 상대가 먼저 마음을 열면, 속 좁은 제가 무안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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