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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9일 01시 22분 등록
'카페'는 직장인의 로망이다. 화창한 날에 상쾌한 마음으로 개점한다. 땀을 흘리며, 영업 준비가 끝나면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본다. 단골 손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가 간다. 음악도 듣고, 책도 읽는다. 누구도 나를 간섭하지 않고, 괴롭히지 않는다.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먹고 살 정도로 현금이 들어온다. 오늘처럼 평온한 하루가 계속 될 것을 생각하니 행복하다. 보험CF 같다.

우리 가게 앞에는 횟집이 있는데, 사장은 여자다. 드세다. 언젠가, 손님과 악을 박박 쓰며 싸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기세에 손님이 주눅들어서 처음 의도를 접고, 도망치듯이 가버렸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인것 같은데, 점화가 된듯 폭발했다. 우리 가게 뒷편에는 호프집이 있었는데, 어제까지 영업하고 가게문을 닫았다. 사장에게 전화를 해보니, 가게가 나갔다고 한다.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지만, 그 동네에는 다시 오기 싫다고 한다. 상처 받은 것이다.

장사는 어렵다.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손님이 없다. 손님이 많다면야, 잠 자지 않고도 일할 수 있다. 안정적일 수 없는 것이다. 경제적인 안정이 흔들리면,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달리 힘든 것이 아니다. 음식장사는 점심과 저녁 하루 4시간 장사한다. 24시간 풀로 손님이 드나든다면 좋겠지만, 손님은 한정되어 있고 음식점은 지금도 많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수익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원재료값과 인건비는 조금씩, 혹은 과감하게 오른다.

일하는 사람들은 말을 안듣는다. 장사하는 것인지, 기싸움 하러 가게 나오는 지 알수 없을 정도가 되면, 함께 일할 수 없다. 일할 사람은 많지만, 제대로 된 사람이 들어올려면 시간이 무척 걸린다. 온다고 하고 안 오는 사람은 부지기수고, 하루 일하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둔다. 그 사이에 가게는 균형을 잃고, 부유한다. 이런 분위기를 사장이 잡아야하고, 정작 '장사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쏟는다'는 느낌이 들면 또 다시 분노가 생긴다. 이 분노는 여러갈래로 튄다. 직원에게는 물론이고, 가족에게, 지인에게,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상처는 상처대로 받고 왕따가 된다. 이 정도가 가게 내의 문제다.

얼마전에 비막이 공사를 했는데, 옆에 노래방 사장이 자신네 옥외 광고물이 우리가 설치한 비막이에 닿고, 구조물이 건물 밖으로 약7센치 정도 나왔다고 항의했다. 당신네 옥외 광고물도 불법인데, 당당하게 그 7센치를 자르라고 말하는 모습에 기가 차면서도, 또 마땅히 무어라고 말할 것도 없고,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서 분하다.

옆에 고기집은 장사가 안되서 리뉴얼을 했는데, 며칠간 천막 치고 공사하다가 베일을 벗었다.  교묘하게 우리 가게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애초 인테리어를 할 때 알게 모르게 살짝 나왔는데, 그것보다 더 나왔다면 상당히 많이 돌출된 상태다. 그러다보니 건물들을 옆에서 보면, 층층이 계단져 보인다. 게다가 옆집 손님의 차가 우리 가게 앞을 조금이라도 가로 막을까봐 신경을 곤두세워야한다. 이웃 업주들과는 겉으로는 친절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알력 다툼이 있다. 교묘하게 영업을 방해하는 수작도 부린다.

가끔 가다가 손님이나 취객, 동네 똘마니와 시비가 붙기도 한다. 몇달 전 내 멱살을 잡은 똘마니를 볼때마다, 있는 힘껏 눈을 흘긴다. 이 모든 분노와 울화가 손님만 많다면야 봄날 눈이 녹듯이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용서할 수 있다. 허나, 장사로 성공하기 보다는 돈 까먹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 세상에 밥장사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면, 지금 상태로도 얼마든지 우려먹을 수 있지만, 경쟁자가 많다보니 수시로 배너와 간판을 교체해야하고, 이벤트도 해야한다. 이런 비용은 생각 보다 많이 들어간다.

장사한 지 2년도 안되었는데, 앞에 횟집 사장처럼 나도 조금만 건들면 폭발할 것 같다.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되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씀이 요즘 유난히 크게 들린다. 어제는 어머니께, 다시 공부해서 대학교수 하고 싶다.라고 말했더니, 장사나 하라고 하신다. 너는 이제 끝이라고. 내 딴에는 대학교수가 장사꾼 보다 점잖아보이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어보인다. 또 아이들이 자라서 아버지 직업란에, '장사꾼' 보다 '대학교수'라고 하면 당당해 할 것 같다. 마치 대기업 다니면 자신있게 회사이름을 대지만, 작은 회사 다니면 '그냥 작은 벤처'라며 얼버무리는 것처럼.

장사를 하면, 밥도 제대로 못먹고 화장실에서 일도 제대로 못본다.어제는 취객이 화장실 앞에서, '사장님 무슨 똥을 그렇게 오래 싸요'라는 말을 하자, 대충 끊고 얼른 나왔다. 이래저래 눈물이 찔끔한 적도 있는데, 이렇게 번 돈중 상당 부분이 세금으로 나간다. 세금은 국민으로서 당연히 납부해야 하지만, 공사 직원이나 공무원들이 적자운영하면서 성과급 잔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또 한 번 분노하면서, 나도 공무원이 되고싶다. 회사 다닐때는 세상사에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알지 못하면 내가 당한 것 조차 모른다.는 것을 안다.

장사에 대한 직장인의 로망은 환상이다. 밖에 나오면 안전장치가 전무하다. 밖에서 성공한 사람은 이미 안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이긴 전쟁을 이긴 것이다. 일에서 보람을 느낄만한 여유는 없다. 조직안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기 어렵다. 회사가 먹이를 끊임없이 물어다주고, 그것을 요리하고 가공하는 것이 일이기 때문이다. 영업직이 아니라면, 영업에 대해서 신경쓸 필요가 없다. 자영업은 믿을 것이라고는 매출밖에 없는데, 그 매출이 시원치 않으면 답답하다.

바람직한 것은 회사에 다니면서, 스스로를 자영업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이 유효하다. '만일 당장 회사가 없어진다면, 나는 공백기간 없이, 바로 먹고 살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면, 회사안에 있어도 자영업자다. 물론 어렵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당장 급하지도 않은 일을 간절히 해야한다는 것이 어렵다. 이런 자영업자라면, 보험CF처럼 살 수 있으리라.

어머니의 말씀과는 달리, 나는 성장해야 한다. 500일 넘게 닭뼈다귀만 치우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것이다.  성장이 삶의 목적이고, 좋건 싫건 변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장사의 끈은 놓치않을 생각이다. 왜냐면 장사는 현금이 들어온다. 몸이 건강한 이상, 장사만큼 좋은 재테크가 없다. 매장 5개를 가진 탤런트 홍석천은 요즘 연예 활동을 활발히 한다. 현금이 있어야 정서적인 안정이 생기고,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쓰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현금은 빠르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 꼭 교육을 받고 취업한다기 보다는, 아예 투자해서 회사를 차리는 것이 빠르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디자인 회사를 만들고, 편집인이 되고 싶다면 출판사를 차린다.

[숭고한 직업 인생을 추구하는 따위는 잊어버리자. 일은 우리의 여생과 성공적으로 조화될 수 없다. 일이 삶 자체는 아니다. 일은 삶을 위해 필요할 뿐이다. _다쓰고 죽어라. 52]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직업을 돈벌이로 보라'는 인식은 참신하다. 이런 인식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부도덕해 보였다. 혹은 직업은 나를 이루는 수단이기에, 나의 생 = 직업, 이라는 공식에만 골몰했다. 직업이 사람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직업과 나의 삶을 분리할 때, 또 다른 국면이 전개된다. 망치를 든 손은 못질 밖에 못 하지만, 망치를 버리면 손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해진다. 물론 다른 도구에 익숙해지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일개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장사할려고 회사를 나오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정말이다. 대신, 지금 경력이나 사업에서 확장할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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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09.10.19 08:48:21 *.244.218.8
와우. 버릇처럼 종종 카페를 꿈꾸는 직장인으로써,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내 일터가 되면 안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
근데 사실인가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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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
2009.10.19 16:40:01 *.142.217.230
맑은 님의 글을 자주 읽는 독자입니다.
글을 원래 잘쓰는 것인지..진심이 담겨서 그런것인지..머리속에 팍팍 들어오네요..

언제한번 맑은님의 가게에 가고 싶습니다.
가서 한가한 때에 소주나 한잔 하고 싶군요..

연락주십시요..
roma98@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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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3 05:08:54 *.100.182.69
저도 함께 갔으면 하네요. 어떤 분이실지 궁금해요.
저도 직장인의 로망을 꿈꾸었던 사람이랍니다 ^^
무엇을 하시던지 성장을 함께 하시는 맑은 님의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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