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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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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7일 16시 55분 등록
 

말로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이것 또한 글쓰기에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호하다면 다음 예시를 보라. 다음 예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예1>은 ‘설명’을 하고, <예2>는 ‘보여주고’ 있다. -개리 프로보스트의 '전략적 글쓰기'에서-


<예1>나의 새 남자친구 아놀드는 탁월한 운동선수야. 그는 또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똑하고, 매우 감상적이고, 그러면서도 약간은 묘하기도 해


<예2>나의 새 남자친구 아놀드는 지난주 번개까지 치는 폭풍우 속을 5마일이나 달려 나의 오두막집으로 왔어. 여기에 도착해서도 그는 빗속에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다섯 개 언어로 외치기 시작하더군.


‘탁월하다’거나 ‘묘하다’는 말은 너무 관념적이다. 그대가 전달하고 싶은 사람이 어떻게 탁월하고 어떻게 묘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추상적인 어휘를 피하고 눈에 잘 보이는 동사와 구체적인 형용사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라. 개념이 아닌 그림으로 보여주라. 그 편이 훨씬 더 생생하게 전달되고 선명하게 기억된다. ‘그는 키가 크다.’보다 ‘그는 키가 184센티미터이다’가 훨씬 눈에 잘 보인다. ‘그 여자는 미인이다.’는 너무 불확실하다. ‘그 여자는 눈이 서글서글하다.’ 혹은 ‘그 여자는 콧날이 시원스럽게 길다.’ 라고 하는 것이 잘 보인다. ‘보여주는 글쓰기’를 위한 방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개별적으로 접근하라.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송일국은, ‘여자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표현하라’고 한다. ‘당신은 꽃처럼 아름다워요’가 아니라, ‘당신은 프리지아처럼 향기가 참 좋네요’라는 것이다. ‘당신은 백합 같아요’에서 그치지 말고, ‘당신은 백합처럼 아름답기도 하지만, 추위에 약하고 쉽게 토라져 버리는 모습이 늘 나를 불안하게 해요’까지 나아가라는 것이다.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지 말고 구체적인 그 사람, 특정한 장면이 드러날 때까지 나아가라. 작업의 정석은 글쓰기에서도 통용된다.


둘째, 글을 쓸 때 오감을 일깨우도록 노력하라.

‘오감’이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각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보여준다’고 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나머지 감각의 활용에도 도전하라.


‘더러운 남자’는 어느 정도 눈에 보인다. ‘더러운’이 시각적인 정보뿐 아니라 어느 정도는 냄새까지도 전해 주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목요일쯤이면 항상 몸에서 걸레 썩는 냄새가 나는 남자’는 어떤가. 나도 모르게 코를 감싸 쥐며 인상이 써지지 않는가. 보여준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먹구름이 ‘청설모가 지나다 꼬리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와르르 쏟아질 것처럼 낮게 드리워져 있다.’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재바르게 뛰어다니는 청설모의 동작과 함께, 잔뜩 찌푸린 날의 그림이 그려진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차고의 문이 말려 올라가고, 그러고는 풀려 내려오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같은 문장에는 소리가 살아 있다. 어느 정도 글을 쓰는 데 익숙해졌다면 글을 수정할 때, 오감을 활용하는 표현이 되도록 신경을 써 보아도 좋겠다. 김영하, 김애란처럼 잘 나가는 젊은 작가들의 문체가 감각적인 것은 여기에 통달한 탓인지도 모른다.


셋째, 사생글 쓰기를 연습하자.

사생글이란 그림을 그리듯이 자세하게 관찰하여 쓰는 글을 말한다. 글이 유독 무미건조하거나 두어 줄 쓰고 나면 쓸 것이 없다는 사람이 연습하면 좋다. 일상의 어느 장면에서나 훈련할 수 있다. 마트에 갔을 때나 전철로 이동할 때, 수시로 눈앞의 장면을 그림 그리듯 묘사한 문장을 떠올려 보라.  나는 지금 도서관에 있는데, ‘주말 도서관은 마치 유원지처럼 사람이 많다. 초등학생들이 키득거리며 몰려다니는가 하면, 온 가족이 나온 경우도 많다. 도서를 검색하는 컴퓨터 뒤에 사람이 얼마나 늘어섰는지 자료검색을 포기하고 돌아섰을 정도이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 그야말로 책상 앞에 써 붙여놓아도 좋을 만큼 중요한 지침이다. 안정효의 ‘글쓰기만보’에서 본 글을 재인용한다. 강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것 같다.



그늘진 곳에서 깊고도 깊이 흐르는 강의 목소리는 저만치 앞쪽 햇살이 눈부신 곳에서 흐르는 강의 목소리하고는 다르다. 절벽 아래 그늘진 곳은 강물이 깊어 심연의 소리를 내며, 가끔 흐름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되돌아서서는, 자신이 하는 얘기를 스스로 알아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똑같은 말을 한두 번 더 되풀이했다. 하지만 앞쪽의 강물은 호들갑을 떨고 시끄럽게 재잘대며 화창한 세상으로 냅다 달려 나갔다.
 -노먼 매클린, ‘흐르는 강물처럼’-



** 빨간 글씨는 안정효의 '글쓰기만보'에서 인용했습니다.

IP *.209.22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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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3.08 00:09:27 *.129.207.200
글 쓸때, '글쓰기 만보'에서 보았던 내용이 수시로 떠오릅니다. 좋은 책이지요.

미탄님, 글쓰기 책 기획해보시는 것이 어떠세요? 올해 꼭 출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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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3.08 13:29:18 *.209.229.83
이제는 정보를 주는 글쓰기에도 익숙해져야 하는데
스스로 느끼는 재미가 덜해서 걱정이네요.
성공적으로 연구원 레이스 마친 것을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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