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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2010년 3월 17일 18시 16분 등록
1.
에반게리온은 경제적인 만화다. 구성이 잘 짜여졌다. 마징가Z나 메칸더 V는 선과 악이 분명하다. 마징가Z는 선이고, 악당은 악이다. 선과 악이 충돌하다가 결국 선이 이긴다는 내용이다. 악은 그냥 나쁜놈들이다. 못생겼다. 그들도 대사가 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어린이의 마음을 분노하게 만든다. 선이 초반에 당하다가, 불굴의 의지로 멋지게 어퍼컷을 날린다.악이 능지처참당하며 폭발할때, 어린이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에반게리온은 선과악의 대결구도 보다는, 선善끼리의 갈등에 초점을 둔다. 싸우긴 싸워야겠는데, '왜'싸워야 하는지, 갈등한다. 악이 등장하면, '출동'이라는 구호와 함께 시원 시원,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하필 내가 왜?'라는 의문을 품으며, 등 떠밀려 전장에 나간다.이런 장면은 뜻밖이다. '철아 출동해라'라는 박사님의 명령에, '네?' 혹은 '제가요?'라고 토를 다는 마징가Z 조종사 철이는 상상할 수가 없다. 아침에 회사 가기 싫어 죽겠는데, 에바의 주인공이 똑같은 심정으로 조종석에 앉기 싫어하는 모습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젊은 남자들이 에바에 열광하는 이유다. 선이 분열되어, 악이 꽃핀다. 30분이라는 러닝 타임에, 복잡한 인물의 내면을 묘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악당은 단순한 캐릭터가 되었다.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악惡은 사도다. 왜 수시로 와서 파괴하고 괴롭히는지 알 수가 없다. 말도 통하지 않고, 협상의 여지도 없다. 순수한 악은, 남을 괴롭히고, 방해하는 것이 존재이유다. 악은 인격이 없다. 공교롭게도 에바의 사도는 인간 세계의 악과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인간세계의 악은 보다 세련되고 교묘하다. 몇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분절되는 시간과 비대해진 자아',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계획과 과거의 기억'이다. 이 안에 악惡이 숨어있다.  
 
2.
전문가란 특정 기술이 있는 사람이기 보다는, 시간을 절약해 주는 사람이다. 만일 내가 인테리어를 스스로 한다고 하면, 비용은 둘째치고 시간이 한 없이 늘어진다. 나에게는 인력풀도 없고, 재료에 대한 지식도 없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지 감을 잡지 못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경험하겠지만, 시간을 질질 끌면, 결국 그 일은 해내기가 어렵다. 악은 사랑과 대립하는 개념이다. 사랑의 목적이 정신의 확장과 성장이라면, 악은 인간 성장을 방해한다. 결심만 하고, 해내지 못하면, 자신에 대한 자신감만 떨어진다. 일을 뭉겐다면, 그 속에 악惡이 있다.  
 
글을 써서 책을 낸다는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박남준 시인의 산장일기나,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보라. 그들의 소재는 소소한 일상이다. 나무며, 풀이며, 바람등이 이야기 거리다. 소재는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시각디자인을 할때도, 디자이너는 아이디어를 일상에서 찾고, 발전시킨다. 그들이라고, 고전이나 교양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료조사는 나중에 하면된다. 시간을 들여서, 염念을 집중하면 결정체가 생기고, 그것을 다시 몽글몽글 매만지면 콘텐츠가 된다. 잘 팔리고 안팔리고는 별개지만, 한 점占에 시간을 집중하면 상품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알랭 드 보통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아주 작은 캔번스에 몇시간이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 이야기가 나온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기본은, 하나의 점에 시간을 집중해서 상품으로 만들기다.
 
피터드러커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시간을 통합하라고 이야기한다. 내 경험상, 시간에도 복리효과가 있는 듯하다. 같은 2시간이라고 해도, 40분씩 3번 쪼개서 2시간과 논스톱 2시간은 틀리다. 그림 그릴때는 3시간 30분씩 수업이었다. 3시간 30분은 매우 긴 시간이다. 직장인이라면, 좀처럼 만져보지 못하는 시간이다. 형태를 잡고, 상승무드를 타면 어느새 주변학생들이 갈 준비한다. 작품의 결과도 좋다. 몰입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일에서나 가능하다.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직장생활이 따분하다면, 우선 구체적인 과업이 없기 때문이고, 과업이 있어도 자신의 개성이 묻어날만큼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다. 하나의 점을 극까지 치밀어 들어갈 시간이 부족하다. 왜냐면 세상은 나를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빼빼로 뿌러뜨려 먹듯이, 현대의 시간은 자잘하게 분절되고 있는 중이다. 탁구에서 공 주고 받듯이, 반사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시간관리는 복합적인 문제다. 비단 물리적인 시간의 양만이 문제가 아니다. 체력도 있어야 하고, 부탁에 거절할 수 있는 영적인 힘도 필요하다.

사람은 하나에 집중할 때, 성장한다. 악은 통합된 시간을 방해한다. 악은 인간내면에도 있고, 외부에도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속성이 집중 보다는, 분산할려는 성향이 강하고, 기업은 그 속성을 이용한다.
 
어느 여행사 카피처럼, 사정이 어떻든간에, 적어도 '1년에 한번은 나가주어야' 한다. 지불을 더 편리하고, 간편하게 하는 방법은 발전하는 반면, 현재 내 잔고와 능력을 알려주는 정보는 없다. 신용카드 사용자 대부분이 자신이 얼마나 긁었는지 알지 못한다. 한달에 얼마를 긁었는지 문자로 알려주는 것은 단순하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기술이다. 소비를 부추기는 과정에서 개인의 에고는 기형적으로 커진다. 소위 헛바람이 분다. 연예인과 상품을 연계하는 것은, 광고쟁이들이 흔히 쓰는 설득의 법칙이다. 상품을 구입만하면, 장동건도 되고 꿀벅지도 된다. 소비와 함께 상품에 묻어있던 이미지를 나에게 투사한다. 아이폰을 사서, 스티븐잡스가 되고, 소주를 마시며 효리를 그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사에 쉽게 삐진다. 에너지는 없고, 열량만 있기에 뚝심이 없다. 나는 이런 곳에서 일하거나, 이런 대접 받을 사람이 아닌 것이다. 삐지고 화나서, 직장 그만두는 것은 일도 아니다.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할머니, 어머니, 동생 5명 제삿날이 같은 기구한 우리집'
 
6.25때  지주地主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인민군에게 죽임을 당한다. 김차순 할머니는 60년 만에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인민군이 죽창을 건네주며, 네 어미를 죽여라'고 했다.  못하겠다고 하자, '네 사촌오빠를 죽여라'라고 협박한다. 사이코패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실제로 60년전에 있었다. 안보불감증에 걸린 요즘, 그녀는 아직도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아직도 뒤를 쫓아오는 것 같다고 말한다. 죽음의 공포가 불행마저도 압도한다. 가슴 아퍼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그녀는 아직도 두려워한다.  

부모가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죽창으로 찌르고 구덩이에 던진다. 이런 일이 내가 사는 세상에 있었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내가 상처라고 생각하는 상처는 과연 상처일까?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자꾸 켕기게 만드는 악의 수작이다. 이런 관념이 새어들어올 때를 관찰해보면, 틀림없이 피곤하거나 배고프거나 외롭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이다. 상태가 안좋을 때가, 약할 때이며 악이 스며들어오는 시간이다.
 
직장생활에서도 이런 일은 빈번히 일어난다. 상대의 말투와 눈빛에 아니꼬워하며, 자신을 방어하고, 교묘하게 다시 상처준다. 상처를 곱씹으면 씹을수록 병든다. 장사는 말할 것도 없다. 손님들이 끊임없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낸다. 악의 지상목표는, 만화에서나 현세에서나 같다. 인간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상처에 골몰해서, 가던 길을 멈춘다면, 악의 승리다. 일상에서 받는 상처는 그 상처에 집중하지 않는 이상, 오히려 이롭다. 쉼없이 커지는 에고ego를 푹푹 구멍내서, 바람을 빼준다. 상처준 사람을 원망하지만 않는다면, 제 분수를 아는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3.
악에 눈을 뜬 것은, 스카펙의 '거짓의 사람들'을 읽고서다.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못하고, 악을 구분하는 눈이 없다면, 악에 휘둘린다.
 
경영 전략가들은, 목표를 정밀하게 설정해서 전력투구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곧잘한다. 혹은, 일단 뛰면서 목표를 정하라는 말도한다. 현대의 목표는 가변적이고, 빠르게 이동한다. 쫓아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클릭 한번으로 대서양을 건너는 자본을 따라 잡을 수있을까?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은 이제 어불성설이다. 그렇다고 비전없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비전은 현장에 있다. 현장에 천착하면, 정원에 꽃이 자라듯 비전이 보인다. 현장에 기반하지 않은 계획은 시간낭비며, 직무유기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살 부딪혀가며 일하는 것보다, 책상에서 미래를 공상하는 것이 더 편하다. 명목도 좋다. '비전을 세우고, 미래를 계획하기.'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처럼, 요즘 60대는 혈기왕성하다. 체력도 있고, 지혜와 경험을 두루두루 겸비했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다. 60세가 되기전에 정년을 맞는다. 백종원 대표는 '새마을 식당' '해물떡찜' 의 브랜드를 런칭해서 성공했다. 그도 말하듯이, 음식장사는 돈받고 음식 내주는 일이 아니다. 자존심을 파는 일이다. 자식뻘 보다 훨씬 어린 사람의 부림을 받을 수 있는가? 술주정을 받아줄 수 있는가? 큰 조직을 나와서, 개인이 되면 할 수있는 일이 많지 않다. 자영업자의 일이란, 그리 전문적이지도 않고 대접 받지도 못한다. 과거에 미련이 많다면, 장사를 해서는 안된다. 또 결심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장사를 해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헛바람을 빼나가야 한다. 물론 즐겁지 않다. 
 
인생의 패배자가 유별난가? 악에 빠져서 정체되거나 퇴보하는 경험이 축적된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 오늘 내 컨디션은 어떤가? 나를 둘러싼 상황은 어떤가? 그에 상관없이 오늘 나는 성장해야 한다. 상처와 분노, 불합리에 매달릴 시간이 없다.  

IP *.129.20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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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2010.03.18 11:21:33 *.5.248.180
맑은 김인건님....항상 글을 잘읽고 있습니다....

여기 홈페이지에 와서 처음에 하는일은 맑은님  글이  올라 왔나 살피고...먼저 읽는 것입니다...

글을 읽다 보면..맑은님의..내공을 느낄수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회사를 퇴사 하였습니다....시간은 많은데..무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남자 나이 35살.....사람이 생각한데로 된다고...퇴사를 생각하고 회사를 다니다 보니..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무작정....

맑은님께 인생 상담을 받고 싶습니다...식당에 찾아가도 될까요?

lee602_2@naver.com 메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맑은님 열혈 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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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
2010.03.18 11:32:11 *.142.217.231
공감100배!
"상처준 사람을 원망하지만 않는다면, 제 분수를 아는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할려면 우선적으로 내 성질부터 죽여야 하는것일까?
흠...그러면 나 자신도 잃어버릴것 같은데...^^

맑은님 말대로 다른 것 생각없이
우선 성장에만 집중해야겠습니다. ^^
행동하면서 생각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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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본질
2010.03.25 21:11:25 *.94.164.218
글 잘 읽었습니다.
"상처에 골몰해서, 가던 길을 멈춘다면, 악의 승리다. 일상에서 받는 상처는 그 상처에 집중하지 않는 이상, 오히려 이롭다.  "  이 문구는 얼마전 제가 겪었던 일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듯 합니다.

새벽까지 일하고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정확하게 주차를 하였습니다.
관리실에서 제 차 때문에 이사 사다리차가 접근 못한다는 방송을 잠결에 듣고 나갔습니다.
이때까지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차를 빼주려고 하니 새로 이웃이 될 사람이 저에게 왜 차에 전화번호를
적어두지 않았느냐며 화를 냅니다. 저는 전화번호 적은 메모지를 차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근데 자세히 보니
메모지가 뒤집어져 있었습니다.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 보고 매너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한동안 그 장면이 떠올라 마음이 평정심을 잃을 때가 있었고  그 순간에는  제가 하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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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3.26 02:47:16 *.129.207.200
상대가 화낼만한 일인데, 매너 없다는 말은 좀 심하네요.

마음 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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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drebeats
2011.05.24 16:21:25 *.58.154.164
The dre dre Headphones is the mid-range entry "extra bass" headphones which are designed to kick out serious low-end response while still providing excellent performance throughout the rest of the frequency range. They style is hip-hop and aimed at younger consumers. They are "extremely comfortable Monster Headph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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