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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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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2일 11시 16분 등록
 

지난 연말에 출간된 나의 첫 책은 많이 팔리는 편이 아니다. 초판 2천권까지는 기세 좋게 팔리더니, 2쇄 초입에서 녹슨 기차처럼 막혀 서 있다. 출간을 오래 기다리느라고 섣부른 기대가 다 사라졌는데도, 많이 낙담했다. 언감생심 대박이야 바라지도 않았지만, 꾸준하고 완만하게 4,5쇄까지는 갈 줄 알았다. 첫 책이 늦어지는 것보다 첫 책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좌절이 더 컸다. 책을 준비할 때는 한 가지 염원으로 밀고 올 수 있었는데, 책이 외면 받았다는 좌절감은 두 다리를 휘청거리게 했다. IT나 독서론, 요식업 같은 주제로 책을 낸 연구원들은 모두 해당 분야에서 강의요청을 받았다는데 내게는 강의 요청도 전무했다. 모 인터넷서점의 내 책에 달린 독자평은 달랑 4개, 그것도 모두 안면 있는 사람들이 올린 것이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내 책의 독자층인 중년층이 활성화 되지 않은 탓인 것 같다.


한동안 헛헛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책을 읽기도 싫고 글쓰기에도 탄력이 붙지 않았다. 팔다리는 축축 처지고 머릿속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산책 중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쉰이 넘어서 글쓰기를 시작해서 3년 만에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것으로 계속 책을 펴낼 수 있는 기본 요건을 마련한 것 아닌가? 글을 쓰고 싶다는 나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이다. 책이 많이 팔리고 안 팔리고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첫 책을 펴낸 후 괄목할 만한 변화는 없지만, 내 강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출간과 동시에 프로그램을 구상하여 단골 사이트에 올렸다. 내가 지명도가 없고 참가자들의 문턱을 낮춰주느라 한 달간 4회의 단기강좌로 시작했다. 내 블로그를 합해서 세 곳의 사이트에 홍보했을 뿐인데 첫 강좌에 11명이나 와 주었다. 성공리에 첫 강좌를 마치고 나니, 강좌를 또 언제 해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결단력을 발휘했다. 무조건 홀수 달에는 강좌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 아무도 안 오기 밖에 더 하랴는 뱃심이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강좌인 3월에는 6명이 참여하여 지금 진행 중이다.  조촐한 숫자이지만 나쁘지 않다. 불과 한 달 만에 내가 나아진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소수의 장점을 살려 발표기회를 늘린다든지, 강의라기보다 워크샵처럼 이끌어본다든지 실험해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저술과 강의를 근간으로 하는 1인기업가가 되고 싶다. 적어도 1년에 한 권 책을 펴내고, 내 강좌를 주로 하며 관련기관에 출강도 한다. 정기적인 출근을 싫어하는데다가 글을 통해 사람을 느끼는 것을 즐기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비율이 7대3 정도 되는 형태를 꿈꾼다. 그렇다면 내 꿈에 거의 다가 온 것이 아닌가?  의기소침하여 축 늘어진 몸과 마음을 뚫고 그런 생각이 섬광처럼  번득였다. 나는 책을 썼고 계속 쓸 수 있으며, 수강생들의 과제물을 온라인으로 챙겨 보고 있었다. 첫 강좌를 마친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심화 과정을 의뢰해 왔으며, 다음 학기에라도 어느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맡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내 강좌를 선택해 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의지는 나를 계속 공부하게 만들었으며, 이론과 실천을 통해 나는 전문가로 성장할 것이었다. 거의 다 왔다! 내가 바라는 것에 근접해 있는 줄도 모르고 첫 책의 판매부진이라는 작은 걸림돌에 좌초해 있었던 것이 놀라웠다.


‘임계질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임계질량은 원래 원자물리학에서 나온 용어라고 한다. 수소폭탄이 핵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모두 일곱 개의 원소봉이 필요한데, 여섯 개의 원소봉을 집어넣을 때까지는 원자로 안에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곱 번째 원소봉이 들어가면 비로소 원자로 안에서 핵반응이 일어나면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분출되어 나오는데, 이 때 핵반응을 일으키는 수소봉의 일정한 양을 가리켜 임계질량이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물질의 변화에는 임계점이 존재한다. 얼음이 물로 변하는 시점은 섭씨 0℃이고, 물은 섭씨 100℃에서 끓기 시작하여 수증기로 변한다. 그런데 물을 얼릴 때나 끓일 때는 온도계가 있어 현재 온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는 지금 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알 수 있는 계측기가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물이 끓기 바로 직전인 90℃에서 포기하는 수도 많지 않을지? 

성과가 아니라 본질을 보아야 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자 했지, 책이 많이 팔리기를 원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늦게 시작했어도 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계속 걸어갈 일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닌 내면의 척도로 계측기를 삼아야 한다. 얼마나 많이 팔렸는가가 아닌, 나 스스로 진실했는가, 최선을 다했는가, 그 작업에서 배운 것이 있는가, 다음 작업에서는 얼마나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 그것이 문제이다. 임계점을 지나 핵폭발이 일어나는 순간을 상상하며 꾸준히 걸어갈 일이다. 성공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이라고 하지 않는가.

IP *.108.8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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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건친구
2010.03.22 19:44:46 *.180.96.4
그래요. 맞아요. 벌써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꿈을 이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저같은 사람에게는 얼마나 부럽고 부러운 일인지요.!!
요즘도 쓰고 있는 제 변화일기에는 제가 우리집 방 하나에 제 서재를 만들어두고, 아침에 눈을 떠서 잠이 들 때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는 삶에 대한 갈망이 절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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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3.23 09:02:30 *.251.224.138
ㅎㅎ 안그래도 직장인을 생각하면 널널한 제 상황이 늘 켕깁니다.
한 달만 아무 것도 안 하고 자기 안에 침잠하는 것이 꿈이라는 직장인을 많이 접하거든요.
동건친구님의 관점으로  오늘을 곧추세워 볼까요?

님의 오늘도 갈망을 이루기 위한 한 걸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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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0.03.26 10:15:59 *.109.178.9
한명석 선생님!
선생님의 책을 읽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은 독자입니다.
어려운 시절, 선생님의 글을 통해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의 큰 방향성을 얻었으며, 어려움을 통과의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자는 태도 역시 갖추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았을 수 있으나, 저 처럼 큰 위로를 받고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제 길을 걷게 된 사람도 있다라는 사실 꼭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음 책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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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0.03.27 22:26:31 *.108.49.23
한 풀 꺾인 초보저자의 기를 살려주는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제 책이 도움이 되셨다니, 저와 기질이 비슷하신가봐요.
제 글쓰기 카페에 놀러 오십시오.
http://cafe.naver.com/writingsutra

언어가 비슷한 사람들이
일회적인 위안이 아니라 상시연결을 통해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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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3.30 13:43:03 *.216.38.10
한쌤!
글쓰기 카페 이름 "롸이팅수트라"... 정말 짱! 입니다.
너무 쎅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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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3.30 19:02:01 *.216.38.10
대봑 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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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3.30 17:39:12 *.251.137.115
 하하 이런 걸 고를 때도 너무 씩씩한 걸 고르는 나!^^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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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ymall
2011.05.24 16:21:37 *.58.154.164
Its peculiarity is quite strong taste able to satisfy the most confirmed smoker. In no vain it was advertised by handsome and life beaten cowboy who knows the rice of life. Cheap Newports Cigarettes, Red Marlboro Special Blends, Cheap Newport 100s, there are so many options for us smokers to choose from their outstanding b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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