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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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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6일 13시 1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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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산책을 나가면 배우는 것이 참 많다. 매일 보던 익숙한 풍경이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은 경이롭다. 앙증맞은 잎눈이 달려있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는 보석목걸이다. 작은 것, 가느다란 것, 보잘것없는 것이 틔운 싹은 더 감격스럽다. 아! 너도 살아 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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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바위틈에서 일제히 올라오는 비비추는 군무다, 합창단이다. 도르르 말린 이파리가 육감적이다. 저것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쑥쑥 자라나 시커먼 잎사귀를 너울대며, 보랏빛 꽃대를 밀어 올릴 것이다. 꽃들은 놀랍다. 제가 어떤 모습으로 피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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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에 축축 늘어진 가지마다 잎이 돋아 화려한 발처럼 펼쳐졌다. 저 화사한 발이 드리운 저 편에, 미모와 지략을 갖춘 여자가 앉아 멍청한 남자들을 눈빛만으로 쥐락펴락할 것 같다. 자연이 건네주는 이야기는 어떤 것도 감미롭지만, 요즘 야산의 주인은 단연 진달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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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색습자지가 겹겹이 뭉쳐 꽃봉오리가 되었다. 덤불처럼 가녀린 가지마다 어김없이 꽃봉오리가 달려 있다. 햇볕을 향한 저 뜨거운 갈구! 누가 저 간절함을 외면할 수 있을까. 진달래는 백척간두 가지 끝에서 간절함으로 피어난다. 그럼으로써 처절한 환희요, 범접하지 못할 신비를 획득한다.



봄에 취해 산길을 헤매다가, 나무가 자연의 아티스트라는 생각을 했다. 죽은 듯 꼼짝 않고 있던 자연을 도화지삼아,  공간을 쓱쓱 분할하고 색을 칠한다. 움찔움찔, 차르르, 쌕쌕, 쑥쑥... 갖은 소리와 모양으로 하모니를 들려주고, 끊임없이 운동하고 움직이고 변화한다. 성장하고 꽃피운다. ‘너도 나처럼 해 봐’ 꼬드긴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의 정의는 표현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기비난도 거리낌도 없는 순수한 ‘창조’이다.


어느 나무가 ‘내가 싹틔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까? ‘나는 이것 밖에 못해’ 하고 자책할까? ‘나는 저 나무 보다 못 났어’ 비교할까?  ‘내가 꽃을 피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만 무성할까?  그저 할 뿐이다. ‘나’로서 태어났으니 ‘나’로서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나답게 존재하고자 발버둥치는 것이 세상을 아름답게 색칠하고 완성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라.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나의 이야기면 충분하다. 설령 본인에게는 미비한 듯 여겨지더라도 진실하다면, 사람들을 감동시킬 것이다.


게다가 어떤 역경도 표현을 통해 가벼워진다. 20여 년간 카피라이터로 일한 뉴요커가 있었다. 그는 자기 업계 최고로 성공했지만 서서히 지쳐 갔다. 무언가 자기 것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튀어나오곤 했다. 자기 안의 예술가는 ‘숨겨진 동성애 기질처럼’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런데도 계속 예술 언저리에서 얼쩡대며 잘 팔리는 상품만을 만들어내던 그의 발 앞에 예술을 쑥 밀어다 놓은 것은 청천벽력 같은 사고였다. 아내가 지하철에 치여 하반신 마비가 된 것이다. 왜 자기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을 일삼던 그는, 사고가 일어난 지 2년 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를 그리면서 말할 수 없이 충만한 감정을 맛본 것이다.


그, 대니 그레고리가 택한 것은 ‘그림일기’이다. 그는 그림일기 속에 자신의 일상을 풀어놓기 시작했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맞이했다. 그림일기를 그린 지 한 달 만에 출간제의를 받은 이후 줄줄이 책을 출간했대서가 아니라,  그림을 통해 세상을 미세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표현을 하면 우리는 평범한 날 속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뽑아내 삶에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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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산책길에 찍은 사진 한 장에서 맛본 환희가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그림이든 글쓰기든 무엇을 창조한다는 것은 세상을 캐리커처처럼 간략화해서 보는 게 아니라, 나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풍성히 누리는 것이다. 창조하는 사람은 순간의 의미를 무한대로 증폭시킴으로써 영원히 산다.


그는 ‘그림일기’라는 경로를 통해 우리를 예술의 세계로 초대한다. 누구나 창조할 수 있다. 창조적이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동기는 우리 모두에게 깃들어 있기에 나쁜 드로잉이란 없다. 드로잉은 경험이다. 더 많이 그릴수록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정확히 계획하고 예상대로 된 경험보다 예측할 수 없는 나쁜 경험에서 더 많이 배운다. 그러니 계속 그리자. 완벽에 대한 집착을 떨쳐라. 위험을 감수하자. 힘껏 기지개를 펴라. 성장하라. 할 수 있을 때마다 할 수 있을 만큼 그리자. 그가 말하는 ‘드로잉’ 자리에 ‘글쓰기’를 넣어도 꼭 맞춤하다. 나는 그의 책처럼 선동적이고 쉽고 실용적인 책을 쓰고 싶어 안달난다.


예술은 즐겁다고!

아주 약간의 시간과 에너지만 쏟으면 삶이 훨씬 거리낄 게 없어지고 행복해 질 텐데 평가는 제쳐 두고 그냥 꾸준히 하는 거야.


빨간 글씨 인용: 대니 그레고리, 창작면허프로젝트, 세미콜론, 2009

IP *.254.7.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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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4.08 01:26:32 *.166.98.75
한선생님- 
글을 읽는데, 갑자기 왜 <프란다스의 개>의 주제가.. 파트라슈~ 가 불렀던 노래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라라라라라`~"가 생각이 나죠?

"예술은 즐겁다고!!" 에 완전히 확- 필 받네요..
(전에 쓴 '오스카 와일드' 라면 완전 공감하는 말이겠어요. 지금 쓰는 '보들레르'라면 완전 안티 허겁 할 말 이지만요 ^^)

저라면.. 예술은 즐겁다고!!!에 한표 던집니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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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4.09 00:31:20 *.108.49.36
글보다도 그림이 더 나의 분신같다는 것을 일깨워준 책이었어
할 수만 있다면 글 옆에 낙서그림이라도 넣어서
내 자취와 시간과 시절이 녹아든 책을 갖고 싶다는 열망 하나 심어주네
근데 파트라슈~가 개 이름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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