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나의

일상에서

  • 한명석
  • 조회 수 2691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0년 3월 29일 22시 22분 등록
 

신문기사에는 ‘3:3:30’의 원칙이 있다고 한다. 3초 안에 기사를 일별하여 흥미가 생기면 3분간 훑어보고,  본격적인 관심이 생기면 30분간 기사를 읽어본다는 것. 3초 안에 독자의 눈길을 잡아라. 그래서 신문기자들은 기사의 첫 문장인 lead에 목숨을 건다.


신문기사가 아니더라도 첫 문장이 전체 글을 인도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첫 문장 혹은 첫 단락은 열차를 끌고 가는 기관차와 같다. 서두가 힘이 없는데 후속문장이 잘 나갈 수 있을까. 흡입력 있는 서두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단락들이 모여 좋은 글을 이룬다.  읽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서두에서 땡겨주지 못하면 독자의 시선은 옮겨 간다. 3초 안에 채널이 돌아가는 것은 TV만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글의 처음을 어떻게 써야할까. 곧바로 주제로 들어가라, 이것이 정답이다. 주제에 대한 설명이나, 글 쓴 사람의 상황 설명 같은 것을 중언부언, 지지부진 늘어놓지 말고, 처음부터 본론으로 들어가라. ‘지금부터 000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는 중계방송을 하지 마라.


“그는 항상 덥다, 나는 항상 춥다.”


내가 좋아하는 오프닝이다. 기질적으로 아주 다르면서도 한데 묶여 있는 남녀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고 마무리될지 서둘러 다음 문장이 읽고 싶어진다.


“나는 날마다 쇼핑을 한다. 남들은 대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슈퍼마켓의 직원이 나에 대해 걱정하는 이유는 그녀가 고개를 들 때마다 내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신이 일할 만한 자리를 하나 마련해야겠네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만큼 오래, 자주 여기 들르잖아요.”


이건 어떤가? 어릴 때 냉동식품만 먹으며 자란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글 역시 한 남자가 매일 슈퍼마켓에서 하는 행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처럼 좋은 서두는 쓰는 사람에게 단숨에 글을 써내려가게 하는 원동력이며, 읽는 사람을 글 속으로 빨려들어 오게 하는 관문이다.  글의 오프닝을 통해 비로소 나와 독자, 나와 세상과의 관계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첫문장은 신의 선물’이라는 말도 과장만은 아니리라. 쓰고자 하는 글의 내용을 곱씹어  인상적인 서두를 생각해 내라. 혀끝에 쫙 달라붙는 '내 말'이면서, 읽는 사람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서두가 떠오를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이동할 때나 단순노동 하는 시간을 활용하면 좋다.  박진감있는 오프닝을 하나 더 소개한다.


“들어봐라, 여지껏 내가 세상에 태어나-옷 입은 상태에서-경험한 가장 멋진 느낌은 세인트루이스의 미주리에서 디즈와 버드가 왔을 때 그들의 연주를 들은 것이다. --디즈와 버드가 B밴드에서 연주를 하는데, “어랍쇼? 이게 뭐지?” 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터져 나왔다. 나 원, 그 연주들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무서울 지경이었다.”-마일스 데이비스, ‘마일스’


-- 인용한 서두 세 개 중 앞의 두 개는 바바라 애버크롬비, ‘글 잘 쓰는 기술’에서 인용, 뒤의 것은 이남희, ‘자서전 쓰기 특강’에서 재인용 --

IP *.251.137.115

프로필 이미지
동건친구
2010.03.30 12:38:05 *.120.80.243
오늘 글은 정말 삽시간에 후루룩 읽혔습니다. 한 입에 후루룩 딸려 입으로 쏙 들어간 국숫발처럼!!!!  '인용구'도 정말 맛깔스럽구 말이죠. 문득, 소설을 쓰시면 "정말 맛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는 '맛있겠다'는 표현을 참 좋아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자주 그러죠. 아, 요런 맛있게 생긴 놈! ^^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말이죠. )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10.03.30 17:19:06 *.251.137.115
한 입에 후루룩 딸려 입으로 쏙 들어간 국숫발!
동건친구님의 비유도 아주 맛깔스러운데요!
살얼음이 슬러시처럼 엉긴 김칫국에 국수 말아 먹고 싶네요!^^
프로필 이미지
재엽
2010.03.30 13:37:24 *.216.38.10
음.. 첫문장! 
맞습니다.
글쓰는데 독자를 염두해두고 쓰지 않고 나 좋자고 쓸때가 대부분인것 같아요..
음.. 맞습니다.
중언부언했던 제 자신을 반성!!  글 잘읽었습니당~^^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10.03.30 17:23:43 *.251.137.115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일 수도 있는 것처럼,
나에게 지독하게 충실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보탬이 될 수도 있겠지요.
문제는 그런 글쓰기가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는 거지요.
아마 '첫 책'이 누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까 싶어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6 <라라28> 어느 도예시간의 비밀 [3] 한명석 2010.03.22 2420
335 곰과 호랑이의 사람되기 [2] 숲속나무 2010.03.22 3096
334 100일 창작 - 두려움 file [2] 한정화 2010.03.23 2618
333 100일 창작 - 옷 변천사 file [4] 한정화 2010.03.23 3873
332 재미있는 전략이야기 27- 전략의 핵심요소, 地 [4] crepio 2010.03.23 2372
331 사랑이 능력. [20] 맑은 김인건 2010.03.23 2752
330 출..정(제1 풍광의 실현) [8] 장재용 2010.03.24 2448
329 1 : 1 강좌를 등록하다. [6] 맑은 2010.03.26 2892
328 오늘부터 수업시작. [1] 맑은 김인건 2010.03.29 2605
327 <라라29> 클로징멘트의 조건 [5] 한명석 2010.03.29 2596
» <라라30> 첫문장은 신의 선물이다 [4] 한명석 2010.03.29 2691
325 재미있는 전략이야기28-전략의 핵심요소 地 2 [4] crepio 2010.03.30 2302
324 <라라31> '서사'와 '묘사'라는 두 마리 토끼잡기 [6] 한명석 2010.03.31 2759
323 재미있는 전략이야기29-전략의 핵심요소 形 1 [2] crepio 2010.04.06 2260
322 <라라32> 예술은 즐겁다고! file [2] 한명석 2010.04.06 2611
321 100일 창작 - 문의 저편에 가고 싶다 file [2] 한정화 2010.04.07 3562
320 어떻게 하면, 초고를 빨리 쓸 수 있을까? [3] 맑은 2010.04.07 2906
319 100일 창작 - 나만의 선 찾기 file [2] 한정화 2010.04.08 8459
318 1 : 1 회화 [3] 맑은 2010.04.08 2404
317 <라라33> 결핍의 힘 [4] 한명석 2010.04.09 2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