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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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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8일 18시 04분 등록
서른 다섯번째 날

아침: 콩죽, 현미밥, 열무김치, 알로에2조각, 단호박죽순볶음, 상추, 방울토마토3알, 가지버섯볶음, 은행
점심: 미역국, 고구마, 찰떡, 찰옥수수, 메밀묵무침, 순무3조각, 단호박죽순볶음, 열무김치, 호두
저녁: 와플3조각, 통밀비슷킷3중1조각만, 홍시, 캐쉬넛

하루 종일 감하고의 사투를 벌이는 듯하다. 요즘은 일기쓰기가 녹록치 않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온 식구들 설거지를 한다. 젖은 손을 훔치며 나오면 감까기가 기다린다. 마당에 쪼그려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해 가며 깎다 보면 허리며 다리며 안 쑤시는 곳이 없다. 그러나 누구 하나 꾀를 부리지 못한다. 한 선수만 사라져도 금방 허전한 자리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도록 몇 상자의 감을 까고 실을 매어 널 수 있게 만들어 놓는다. 운반은 구루마와 목사님이 필요하다. 내가 어찌 해볼 요량으로 힘을 쓰다가 역시 덩치만 컸지 힘은 역시 남자가 쓰는 일이갑다란 결론에 달한다. 남자만큼 힘도 안 나오는 이 놈의 몸땡이는 왜 이렇게 커다랗게 낳아 놓으셨는지 모르겠다. 높은 찬장에 그릇 꺼내기와 형광등 교체를 위한 용도 정도로는 너무 효율이 낮은 감이 있다.

오후엔 김목사님, 원목사님과 감따기에 투입 되었다. 서선생님께서 다리를 다치신 후로 일손이 모자라다. 양 목사님이 감나무에서 감을 투척하시면 냉큼 주워 전정가위로 꼭지를 알맞게 잘라 ‘김동춘’ 이라는 세 글자와 전화번호가 선명하게 찍힌 상자에 담는다. 그러다가 원목사님이 더 높이 올라가 긴 장대 가위로 자른 감을 손으로 받는다. 왕년 핸드볼 콜키퍼의 실력을 발휘하는 순간이 왔다. 한 손, 양손 가릴 것 업이 정신 없이 받아내다가 홍시폭탄을 두 손에 받기도 한다. 김목사님의 ‘김자매’ 외침에 또 달려가 감 바구니 도르레를 받는다. 오랜만에 땀이 난다. 추울거라며 주신 사모님의 시골아낙잠바패션에 영락없는 시골아낙이 된 나는 그렇게 감 밭을 누볐다. 다행히 손이 빠르다는 칭찬을 들으며 ‘김동춘상자’7개를 감으로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의 해는 다섯시만 넘으면 순식간에 인사도 없이 사라진다. 노을도 없이 가득 몰려오는 어둠을 뒤로 하고 집안에서의 감까기 2차전을 시작하다. 저녁은 간단하다. 아까 오후에 홍시 한 개를 해치운 터라 배도 안 고프다. 다만 허리와 무릎이 하루의 노동을 말해주는 듯 하다.

이 곳에서의 식사는 대개 일정한 형태를 띤다. 아침은 현미밥을 기본으로 국이나 죽이 함께 나오고, 반찬은 열무김치 한 종지와 볶음 두 종류다. 버섯은 기본으로 거의 모든 국과 볶음에 들어가고, 볶음의 기본은 호박이나 토란, 가지 등에 양파, 당근, 버섯이 들깨가루와 올리브유에 뒤섞여 나온다. 간은 죽염으로 하시는데 ‘나 소금 맞아요~’ 정도로만 치신다. 상추와 쑥갓, 방울토마토, 순무 등이 채소로 나오는데, 마치 고기를 싸 먹듯 반찬을 이 채소들에 싸서 먹거나 곁들여 먹는다. 점심의 기본은 현미밥 대신 고구마나 옥수수, 떡 등으로 대체된다. 저녁은 죽이나, 와플, 식빵이 나오는데, 몽땅 현미나 통밀로 만든 것 들이다. 대부분 저녁은 매우 간소해 잠자리에 들 즈음엔 소화가 다 된 상태다. 매 식사 때 마다 빠지지 않는 후식은 견과류와 현미강냉이 또는 옥수수강냉이다. 견과류에는 한 번에 한 종류가 나오는데, 아몬드, 호두, 캐쉬넛(인도땅콩), 잣, 은행 등이다. 견과류와 곁들여 화분이라는 걸 주시는데 꿀벌들이 모아 나른 꽃가루덩어리란다. 맛이 달작지근 하면서도 역한데 젊은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내게는 안 주신다. 비싸다며 아끼시길래 달란 얘기도 안 한다. 사실 현미밥이나, 콩죽, 들깨가루에 버무려진 볶음들은 모두가 처음 먹는 낯선 음식들이다. 포도밥에 이어 적응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견과류도 술안주로나 가끔 먹지 매 끼니마다 먹기도 별로고, 특히 김치라고는 열무김치 한 종지 밖에 없다. 어제부터 묵은지에 꽁치통조림을 쏟아 넣고 달달 볶아, 흰 쌀밥 한 술에 죽죽 찢어 얹어 먹고 싶어 연신 그 얘기를 해 댔다. 볶은 김치라도 위안이 될 것 같아 사모님께 볶은 김치는 안 드시냐 했더니 가끔 드신단다. 아직 내게는 안 된다신다. 아~ 갈 길이 멀다. 내일은 송별 특식으로 스파게티를 해 주신단다. 월계수잎이 없긴 하지만 그냥이라도 해 주신다 한다. 스파게티보다 김치만두가 더 먹고 싶은데, 집에 도착하는 대로 해 먹어야겠다.

내일 오후 엄마가 오시고, 감까기 한 판 하시면 모레 통영으로 갈 것이다. 그 동안 감까기와 성경과의 맛있는 수다로 일기쓰기가 게을러 졌지만, 아직 ‘지리산에서의 한 달’이 한 달이 넘도록 하산을 못 한 관계로 주~욱 되고 있다. 시원섭섭한 ‘지리산에서의 한 달’을 마치면 혼자서라도 자축파티를 벌여야겠다. 그간의 댓글들을 안주 삼아 소주라도 한 잔 하고 싶어진다. 아~ 그 날이 오겠지.
20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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