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나의

일상에서

  • 한명석
  • 조회 수 2632
  • 댓글 수 9
  • 추천 수 0
2010년 4월 14일 16시 07분 등록
 벌써 4월도 중순이다. 지난 12월에 첫 책이 나온 후 한 일이라곤 글쓰기강좌를 두 번 하고 ‘라라’ 라는 이름으로 연재하고 있는 글 35편을 쓴 것이 전부이다. 글쓰기강좌는 아주 좋다.  막연한 지식을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형태로 다듬을 수 있어서 좋다. 강좌를 하면서 누구보다 많이 배우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좀 더 설득력 있는 예화를 찾아 공부를 더 하게 된다. 그런데 조각글 35편은 조금 약하다. 1년에 한 권씩 책을 펴내기 위해서는 늦어도 두세 달 안에 원고를 완성하고 출판사를 확정해야 한다.  이런! 글쓰기에 박차를 가해야 하겠는 걸.

첫 책을 펴내고 책의 주제인 ‘2막’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우연히 글쓰기강좌를 하게 되었다. 막상 해 보니 ‘2막’을 주도하기 위한 도구로 글쓰기를 전문화해도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분야에 대한 책 한 권은 가져야 하리라. 마음속에서 우러났다기 보다 순전히 상황에 의해 잡은 주제였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 재미가 없었다. 읽고 쓰다 보면 가닥이 잡히겠지 묵묵히 쓰기로 했다. 정말 그랬다.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이미 누군가 써 놓은 것을 보고 기운이 빠지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번득이는 것에 영감을 받으며 조금씩 뼈대가 갖춰지는 것을 느낀다. 35편을 쓴 지금은 ‘글쓰기’라는 주제가 재미있다. 고수도 많고 좋은 책도 많은 이 분야에 내 책을 디밀 수 있을지 흥미진진하다. 지금 이 과정도 잘 기록해 두리라.  35편이 50편이 되고, 70편이 되면서 맞이하는 변화를 잘 들여다봐야지.

이만한 시야는 졸저나마 한 권을 쓰고 나서 열린 것이다. 요즘 나는 ‘글쓰기’라는 주제에서 벗어난 글은 쓰고 싶지 않다. 어떤 상념, 어떤 독서도 주제와 연결해서 정리하고 있다. ‘주제를 갖고 써라’ 첫 책을 쓰고 나서 배운 금과옥조의 1조인 셈이다. 어느 정도의 표현력을 갖추었으면 그 다음에는 주제를 가져라. 주제 없이 산발적으로 쓰는 글, 특히 감상에 치우친 글은 아무리 써야 소용없다. 하나의 주제로 집약된 글이 모여 책이 된다. 책쓰기를 염두에 두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상을 기록하거나 스스로 위로하기 위한 글쓰기도 좋다. 그러나 글쓰기에 매료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쓰기에 욕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듯이, 글쓰기를 가장 사랑하고 완성하는 방법은 책쓰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으로 쓸 만한 절실한 주제’를 잡기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사람들은 혹시 책이 될 만한 주제가 거창하고 대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모든 책이 대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한 권의 책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다지 커다란 것이 아니다.  우리도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역작을 읽으려면 심호흡을 하고 덤벼야 하지 않는가. 그저 ‘조금’ 참신하거나 ‘조금’ 재미있거나,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그것을 통해 마음이 따스해져서 ‘역시 인생을 살 만 한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네’하고 잠시 낯선 기분을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 책을 쓰기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저마다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것에서 하나의 주제를 잡고, 하나의 컨셉으로 좁히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읽은 책 중에 제일 단순한 책은 ‘포스트잇 라이프’라는 조그만 책이다. 이 책은 ‘Life on the refrigerator door’라는 원제에 걸맞게, 바쁜 엄마와 딸이 냉장고 위에 붙여놓은 포스트잇을 통해 소통하는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오로지 포스트잇만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딸에게 토끼를 돌볼 것을 부탁하는 등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평이하고도 잔잔한 일상이 짧은 메모 속에 펼쳐진다.  천연덕스럽게 사소한 일상을 다루던 쪽지에 엄마의 유방암 발병이 알려지고, 엄마가 읽을 수 없는 마지막 메모로 이야기는 끝난다. 어찌 보면 아주 흔하고 단순한 스토리인데, 울컥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가족’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그 책이 당연히 실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소설이란다. 우리는 주로 논픽션을 겨냥하지만, 지극히 일반적인 경험도 들려주는 방식 - 컨셉에 따라 설득력있는 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예로 삼아 보았다.

그대가 갖고 있는 경험과 관심을 누군가에게 해 주고 싶은 단 한 문장으로 축약해 보라. 책 한 권에 한 가지 생각이면 족하다.  컨셉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이것이 책을 쓰고 난 뒤 얻게 된 두 번 째 교훈이다.  책에 대한 인식이 ‘대단한 성과물’에서 ‘좁혀진 경험’으로 달라진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면 책쓰는 속도가 달라질 것 같다. ‘퇴근 후 3시간’의 저자 니시무라 아키라가 책을 쓰고 싶어 뜸들이는 데 10년이 걸렸고, 첫 책을 낸 다음 해에는 3권을 쓰고, 그 다음 해에는 7권, 또 그 다음 해에는 10권을 썼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그 정도는 아니라도 나도 조금은 빨라지려나.^^





글쓰기강좌를 하고 있습니다.
5월 강좌 안내
http://cafe.naver.com/writingsutra

IP *.108.50.73

프로필 이미지
향인
2010.04.14 20:01:23 *.253.6.153
와 좋아요~~~
글쓴이의 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 드네요. 니시무라 아키라를 보고 위로받고 있삼.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10.04.14 23:38:35 *.108.50.126
은남씨가 살살 모습을 보여서 참 좋네요.^^
 '책쓰기'라는 재미없는 일에 -세상의 잣대로 말하자면-
목매고 있는 이 커뮤니티도 새삼 소중하구요.
프로필 이미지
재엽
2010.04.15 17:00:14 *.216.38.10
컨셉은 명확하고 단순할수록 좋지만.... 왜 제 머리에선 복잡한 컨셉만 왔다갔다하는지...  제가 쓰고 있는 책은 복잡비스무리우장창창창이라구요... 에고 몰겠습니다. 그냥 쓸래요 휴...
글쓰기 칼럼, 저 완전히 팬이에요!! ^^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10.04.16 01:40:22 *.108.50.73
ㅎㅎ '그냥 쓰는' 게 정답 맞아요.
나도 '그냥 쓰고 있을 뿐'이니까.^^
일단 원고에 마침표를 찍어 보면 새로운 기회 혹은 고지가 열릴 거예요.
프로필 이미지
뎀뵤
2010.04.16 23:11:47 *.51.86.214
저도 첫책쓰는데 4년이 걸렸고,
올해 두번째 책을 쓴다면 2년이 걸리는거니까.
그나마 단축되는 것으로 그것도 2배 속도로 빨라지는 거네요. ㅎㅎㅎ
뭐. 속도가 답은 아니지만. ^^;
오늘 알았는데 명쌤은 이번달에
베껴 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내 책 쓰는 글쓰기
두권이나 한꺼번에 출간 했더라고요. 흠. ㅎㅎㅎ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10.04.17 10:02:29 *.108.49.52
그대의 봄은 어떤 색깔인지?
역시 일본작가 중에 한 5백 권 쓴 저자도 있지요.
물론 속도가 답은 아니지만
책 한 권에 한 가지 생각을 담으면  충분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듯.
프로필 이미지
재엽
2010.04.18 16:05:02 *.166.98.75
뎀뵤! 올만이야- 다음책 기대할께. 혼자놀기2?
프로필 이미지
박상현
2010.04.20 11:10:01 *.236.3.241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연구원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여유가 좀 없네요 ^^

연재하고 계신 <라라 시리즈>가 글쓰기에 실질적인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앞선 경험들을 통해 이렇게 주옥같은 대안을 제시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 같은 경우 '소통'이란 키워드로 컬럼을 전개해 나가려는데 쉽지 않네요. ㅎㅎㅎ
말씀하신 내용을 곱씹으며 심기일전하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한명석
2010.04.20 19:44:46 *.108.49.2
막상 알고 나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강을 건너봐야만 아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딱 한 발 앞선 선배로서 열심히 정리하고 있기는 한데
-- ㅎㅎ 우선 나를 위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공사 다망한 가운데 행하는 연구원이니, 더욱 커다란 의미로 자리잡길 바래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16 100일 창작 - 자료 수집 file 한정화 2010.04.10 8608
315 약점 시간 [2] 숲속나무 2010.04.12 2402
314 작가는 불구자다. 일본이 콘텐츠 왕국이 된 이유. [9] 맑은 김인건 2010.04.12 2897
313 <라라34 > 글쓰기선생이 되고 보니 [6] 한명석 2010.04.12 2363
312 <라라35> 성장소설에는 성장이 있다 [5] 한명석 2010.04.13 2178
311 재미있는 전략이야기 30-전략의 핵심요소 形 2 [5] crepio 2010.04.13 2435
» <라라36> 첫 책을 쓰고 확실하게 배운 것 [9] 한명석 2010.04.14 2632
309 100일 창작 - 까만 토끼를 위하여 file [5] [1] 한정화 2010.04.15 4402
308 [꿈과 그림1] 음악으로 함께사는 삶 [4] 한정화 2010.04.15 3077
307 딸아이에게 배우는 글쓰기 필살기 [2] 김나경 2010.04.16 2672
306 다시 프롤로그 [6] 맑은 김인건 2010.04.19 2434
305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방법.. [4] 나무 2010.04.20 4682
304 <라라37> 컨셉잡기 [6] 한명석 2010.04.20 2653
303 [먼별2] - 필살기수련1 <단군 프로젝트> [11] 수희향 2010.04.21 2268
302 재미있는 전략이야기 31-전략의 핵심요소 時1 [1] crepio 2010.04.22 2468
301 <라라38>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8] 한명석 2010.04.22 2599
300 [꿈과그림2] 결핍과 욕망 한정화 2010.04.22 2477
299 <라라39>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은 가능한가? [21] 한명석 2010.04.22 2520
298 성공은 재능 그 이상의 능력을 요구한다 날개달기 2010.04.24 2277
297 성공원동력, 인내 [1] 날개달기 2010.04.24 2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