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

나의

일상에서

  • 한정화
  • 조회 수 3076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0년 4월 15일 12시 34분 등록
 

# 1. 꿈꾸는 그


그가 자신의 미래 모습이 담겼다고 보내온 글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 향년 43세, 그는 감전사고로 죽었다.


그는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노래 공연을 하다가 전압기 고장으로 

보이는 누전사고로 인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갑작스럽게 즉사했다.

(중략)

○○○대학 부속병원의 ○○팀장으로 근무했던 최○○씨는 의료경영에 대한 책을 저술하던 중이었으며, 직장동료들은 그의 죽음에 대해  ‘환우들을 위한 봉사를 하다가 죽음을 당하는 일이 생겼다’고 안타까워 했으며, 가족들은 어이없는 죽음에 황당해 하고 있다. 그가 남긴 발자취에 대해 그의 친구들은 ‘그의 노래’만을 얘기했다.

 


신문기사이다. 이 기사를 읽고 지우들이 그의 장례식에 속속들이 모여든다. 글 속에는 그가 살고자 하는 인생이 담겨있다. 


# 2. 그림과 함께하는 글

난 싫어요.

난 당신이 .... 싫어요.

난 당신이 죽는 게 싫어요.

난 당신이 그렇게 죽는 걸 꿈꾸는 게 싫어요.

난 싫어요.




당신의 꿈을 그리지 않고 오랫동안 미루어 두었습니다. 난 당신을 잘 몰라요. 당신이 꿈그림 그려달라며 보내준 글, 잘 생각이 안나요. 콘서트를 했던 것 같은 데 잘 생각이 안나요.

방금 당신의 글을 다시 읽었어요. 당신의 글대로 당신을 웃으면서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그런데 나는 그것도 싫어요. 난 그냥 당신이 곁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은 작년 봄에 내게 미래 모습을 그린 종이를 내밀었죠. 꿈그림을 그려달라며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어요. 아직 사람 잘 못그린다며 빙빙도는 나는 미안했어요. 느낌이 올 때 그려달라고 종이까지 내미는데 이렇게 열성적인 사람 꿈 터치 잘 못 할까봐 미안했죠. 그리곤 잊고 있었어요. 난 당신을 기억하지 못했죠. 그냥 부드럽게 웃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기타치는 사람으로 기억했어요.


당신이 내게 메일로 보내준 글에는 당신의 미래 모습이 들어 있어요. 지극히 객관적인, 건조한 것이었죠. 그건 신문기사였으니 당연했어요.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죽음이었어요. 당신의 아름다운 노래를, 당신의 인생을, 당신의 꿈을 기억하기 이전에 난 당신의 죽음이 나를 먼저 덮쳐왔어요.


엊그제 당신의 장례식 연설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것을 먼저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의 꿈이 들어와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와버렸는지도 모르죠. 공연 중에 감전사. 노래와 봉사가 있는 삶.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맞는 죽음?


당신은 죽으면서도 폼은 엄청 잡아요.

젠장. 당신은 죽음을 몰라요. 아니면 너무나 많은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거나. 그렇게 죽기를 바란다구요? 젠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게 뭔지 당신은 모르는 거야. 당신 아내의 눈물을 볼 수 있어요? 당신 아이들의 눈물을 볼 수 있어요? 난 그렇게는 못해요.


당신은 당신이 죽는 게 뭔지 몰라요. 당신은 꿈꾸는 사람이 죽는 게 뭔지 몰라요.


나는 당신이 죽는 게 싫어요.

나는 당신이 다음 꿈을 꾸지 않고 죽는 게 싫어요.


이미 당신은 노래와 살고 환우들과 같이 하잖아요. 이제는 그 다음 꿈을 꾸어요.



장례식이 있기 전에 산책에서 만난 당신은 여전히 웃고 있었죠. 여전히 부드럽고. 그동안에 글과 몇 번의 눈인사로 아는 채 하지 않았다면, 얼굴을 잊은 채로 계속 있었다면 나는 당신을 어느 클럽의 섹소폰 연주자로 착각했을 거예요. 당신의 적갈색 점퍼, 당신의 조용조용한 손놀림, 당신의 부드러운 목소리, 당신의 곧게 선 모습까지, 내가 본  당신은 뮤지션이예요. 나는 당신이 기타를 치며 만들어내는 시간, 당신이 작곡한 노래를 같이 부르며 어울리는 그 모습들이 좋아요. 당신이 노래로 마음을 전하듯이,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같이 살 궁리를 하고 같이 꿈을 꾸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에 내게 쥐어준 그림, 공연하는 모습 그린 거 다시 찾아볼께요. 여지껏 그림 그리지 않아서 미안해요. 그리고 꿈보다 죽음을 먼저 떠올려 미안해요.


당신의 행복한 콘서트를 떠올릴테니 당신은 생생하게 살아 있으라구요. 노래 속에 살아있듯이 현재에서 살아 있고, 콘서트를 몇 회고 마음껏 계속하고 그리고 그 다음을 꿈꿔요.

 

IP *.72.153.59

프로필 이미지
우성
2010.04.15 13:04:46 *.30.254.28
난 목소리에 민감해요.
6기중에는, 선형이의 목소리, 4기 서지희 샘의 목소리가 좋은데,
정화선배의 목소리도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종결형 어미가 말려올라가는 느낌(?)이랄까?
사부님이 연구원 중에서 가장 오래, 멀리 갈 사람이라고 했지요? ^*^

님은 꿈꾸는 듯한 몽상가 같아요....
Dream Panter 에게 꿈그림 그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작년, 글터에서 작성했었던 글을 보냈었던 겁니다.
죽음을 꿈꾸는 사람처럼 보였겠구나,,생각들지만, 그렇지 않아요.
잘 살고 싶어요..다만 늘 죽음을 기억하는 삶을 살고 싶은 거지요..

나 너무 폼 잡지요?
어케 알았을까? ㅎㅎㅎㅎ

연구원이 된 것이 참 자랑스럽고 신나요.
인생의 선택 중 내가 잘 한 것이 몇 개 없는데,
그 중에서 제일 좋은 선택으로 남을 거라 확신해요.

인생의 단 한분, 사부님을 모시고
좋은 사람들과 마음껏 만나서 공부하며 놀고, 배우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림은 지금 말고, 천천히 그려주면 더 좋겠어요.
지금보다 더 나아진 내 모습을 그려줘요.

내년 수료식 때, 선물로 받고 싶어요..
고마워요...^*^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10.04.15 20:16:15 *.72.153.59
아니 그려지지도 않은 거 갖고, 아직 받지도 안해놓고 고맙다고 하면 어쩌잔거예요? 부담백배^^*
헤헤헤.

우성님의 목소리는 부드러워서.. 음 부드럽다는 기억 말고는 ... 음. 기억이 안나네. 헤헤헤.
전 카랑카랑한 음색을 좋아합니다. 미성이라고 하는 소리에 '숑'갑니다. 타악기는 둥글둥글한 소리가 좋고, 심장과 몸 전체로 느끼는 소리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기타의 맑은 소리, 가야금의 줄 튕기는 소리. 이런 소리들은 좋아합니다. 깨어있게 하니까요.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10.04.16 00:23:33 *.219.168.66
저 둘은 웃기다.
나는 글을 읽으며 가슴이 조이고 에리는 느낌을 받았는데 정작 천연덕스럽게 히히덕 거리네. 별꼴이다. 허참...

정화는 죽음에 민감하다. 그녀는 죽음과 함께한다. 두려워하고 가깝게 묘사하고 싶어한다. 어쩌면 연애하는 것보다 더 쉽게 잘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 싫어서 되네여야만 하는 열망은 무엇으로 표현 되어야 할까?

우성은 정화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변신할 것이다. 그의 의지가 그렇고 그를 에워싼 열기가 그러하다. 찰칵 찰칵 스넵사진들을 모아 두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정화는 연구원생활을 하는 동안 완전히 얼굴이 바뀌었다. 일시적일까 의심도 가져보았는데 아니다. 그녀가 쉬지 않고 그리는 그림만큼이나 지속성을 띤다. 그녀는 죽음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살아난 것이다. ^-^*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10.04.16 19:08:18 *.72.153.59
맞아요. 언니 난 죽음 무서워요. 
그걸 Mestory 한 주제로 담을려고 여러차례 되뇌이고 있어요.
가까운 사람들이 하도 많이 죽어서 이제는 안죽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 

헤헤헤.
나보다 먼저 죽는 사람은 가만 안둘껴여~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16 100일 창작 - 자료 수집 file 한정화 2010.04.10 8608
315 약점 시간 [2] 숲속나무 2010.04.12 2402
314 작가는 불구자다. 일본이 콘텐츠 왕국이 된 이유. [9] 맑은 김인건 2010.04.12 2897
313 <라라34 > 글쓰기선생이 되고 보니 [6] 한명석 2010.04.12 2363
312 <라라35> 성장소설에는 성장이 있다 [5] 한명석 2010.04.13 2177
311 재미있는 전략이야기 30-전략의 핵심요소 形 2 [5] crepio 2010.04.13 2435
310 <라라36> 첫 책을 쓰고 확실하게 배운 것 [9] 한명석 2010.04.14 2632
309 100일 창작 - 까만 토끼를 위하여 file [5] [1] 한정화 2010.04.15 4402
» [꿈과 그림1] 음악으로 함께사는 삶 [4] 한정화 2010.04.15 3076
307 딸아이에게 배우는 글쓰기 필살기 [2] 김나경 2010.04.16 2672
306 다시 프롤로그 [6] 맑은 김인건 2010.04.19 2433
305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방법.. [4] 나무 2010.04.20 4682
304 <라라37> 컨셉잡기 [6] 한명석 2010.04.20 2653
303 [먼별2] - 필살기수련1 <단군 프로젝트> [11] 수희향 2010.04.21 2268
302 재미있는 전략이야기 31-전략의 핵심요소 時1 [1] crepio 2010.04.22 2468
301 <라라38>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8] 한명석 2010.04.22 2599
300 [꿈과그림2] 결핍과 욕망 한정화 2010.04.22 2476
299 <라라39>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은 가능한가? [21] 한명석 2010.04.22 2519
298 성공은 재능 그 이상의 능력을 요구한다 날개달기 2010.04.24 2277
297 성공원동력, 인내 [1] 날개달기 2010.04.24 2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