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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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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2일 17시 28분 등록


"찰싹!"
"흐읍.... 열 두울."
"찰싹!"
"흡. 으허헝 혀엉."

요 근래 읽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나를 중독으로 몰아갔던 아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아픔. 며칠을 아이의 울음과 그리고 그 해소 속에서 살았다. 그후 열흘 정도를 같은 이야기, 같은 상황을 질질 흘리듯이 반복해서 썼다. 20여장이 달린 얇고 작은 노트 하나를 같은 이야기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쓰고 나서 노트의 마지막 장에 다다를 무렵 쓴 글을 읽기 시작했다. 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듯이 썼기에 지저분한 글이었다. 별로 읽고 싶지 않았는데 그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져서 앞에서 부터 읽었다.

처음에는 내가 읽었던 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는 그것들을 쓴 인터넷 작가들의 심리가 어땠을까를, 그리고는 그 상황과 내 감정들을 탐색한 글들이 있었다. 그리고는 이야기가 몇페이지씩 이어졌다.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하루에도 같은 내용이 여러 번 쓰여졌고, 다음날에 등장인물이 조금 달라졌을 뿐 여전히 같은 내용이었고, 그리고 다시 다음날에 3인칭시점으로 씌여있었다. 그리고는 같은 내용이 1인칭 시점으로 또 씌여있었다. 그리고 다시 3인칭시점으로 씌여있었다.

이야기 속에는 할아버지, 형, 꼬맹이가 주요 인물이다. 내게 있지도 않은, 며칠동안 읽었던 글 속에는 한번도 나오지도 않는, 내가 태어날 때 쯤에 돌아가신 내 기억속에는 없는  할아버지가 나오고, 말 한마디로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던 태진형이 있고, 내 분신과 같은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꼬맹이 제이가 있다.

얼마전 '전 오늘 열여섯이 되었습니다, 신부님'이란 프랭키의 고백에 울었던 꼬맹이가 내가 쓴 이야기 속에 있다. 나는 울타리와 따뜻한 손을 간절히 원했다. 아니 지금도 원한다. 그것은 잠잠한 것이었다. 인터넷소설이란 불씨 하나로 불 붙여지기 전에는 나를 태울만한 것은 아니었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토해내고서야 알았다. 내게 어른이 어떤 존재인가를.

성당에서 울고 있는 프랭키에게 '아가'라고 불러주는 신부님이 내게는 필요했던가 보다. 그건 그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결핍이었다.

“고해성사를 하고 싶니?”

“못 하겠어요, 신부님. 저는 끔찍한 짓을 했습니다.”

“주님은 회개하는 자는 누구나 용서해 주신단다.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 위를 위해 죽게 하신 분 아니니.”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신부님.”

“하지만 성 프란체스코에게는 말씀드릴 수 있겠지?”

“그 분은 이제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세요.”

“하지만 그 분을 사랑하지?”

“예, 제 이름이 프란시스입니다.”

“그렇다면 성 프란체스코에게 말씀드리거라. 나와 함께 앉아서 너를 괴롭게 하는 것들을 모두 말씀드리거라. 여기 앉아서 내가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다만 성 프란체스코와 주님의 귀 역할만 하는 것이란다. 그러면 그분께서 굽어보시지 않겠니?”

나는 성 프란체스코에게 얘기한다.

(『프랭키』 하권 251-253쪽)


프랭키가 신부님을 만나고 신부님에게인지 성 프란체스코에게 인지 모를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나는 제이가 되어서 할아버지를 만났고 태진형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랭키가 성당을 나왔을 때 전날과는 다른 열여섯 살이 되었듯이, 나는 제이가 되어 울고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는 나로 돌아왔다. 할아버지와 태진형과 그리고 제이는 내가 필요로 하는 어떤 대상의 대체물이었고 중계자였다. 그들은 내 욕망의 세계의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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