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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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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8일 17시 47분 등록
스물 두번째 날

며칠 새 나무들은 패션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날씨와 햇빛에 민감한 패션리더들이 하나 둘 새 옷을 선보이더니 유행이 되기 시작한다. 이번 주가 지나면 나무들의 패션쇼장을 찾는 구경꾼들이 줄지어 입장권을 끊고 감탄의 탄성을 지를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으레 단풍 시작과 절경을 신문과 뉴스에서 톱기사로 다루며 사람들을 산으로 안내한다. 별 감흥이 없었던 내게 올 가을은 정말 특별한 상쾌함과 나무들과의 교감을 안겨주었다. 경숙언니가 혼자 걸어갔을 이 길을 오늘은 내가 혼자 걷는다. 읍내까지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이십리 길을 오늘 처음 혼자서 걸어 내려왔다. 동네 어르신들이 분주히 일손을 놀린다. ‘안녕하세요?’ 눈만 마주쳐도 절로 인사가 나왔다. 목사님 댁에 다니러 왔다는 얘길 몇 번이고 하면서 콩을 터는 아주머니와, 밭으로 낫을 들고 가시는 이장님댁 사모님과, 감을 따는 부자와 대화를 했다. 행복한 걷기였다. 구이장님댁 사모님은 콩이 풍년이라고, 감밭의 부자는 곶감 사러 오라고 은근히 서울 아낙네에게 속내를 드러내신다. 서울 사는 사람은 역시 돈으로 뭐든 사가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먹거리 하나부터 물까지 사먹어 온 나였으니 돈을 벌기 위해 지금껏 살아왔나 보다. 돈이 곧 먹거리요 잠자리였다. 돈으로 사랑도 살 수 있다며 많이나 벌어 놓으란 얘길 듣고 살았다. 돈은 곧 생명수요 포근한 안식처가 되는 듯 사람들은 내게 돈 많은 남자를 만나라 기원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여태껏 내 삶도 돈 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듯싶다. 돈에 대한 애착을 가질 만큼 절실해 본 적도,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어느새 서른도 중반이 넘어 이제서야 무일푼인 내 현실이 암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관장하시므로 주를 섬기면 뜻대로 행하신단다. 기독교인들은 참 좋겠다. 주님만 꼭 붙들면 밥도 나오고 잠잘 곳도 생긴다고 믿으며 한 평생 살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어딘가 말도 안 되는 구석이 있어 보여 그냥 내 식으로 살기로 한다. 눈에 보이는 사람도 못 믿을 판에 하늘나라 어느 구석에 계신지 모를 하나님을 믿기란 정말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 돈이야 없다가도 있는 것이고 돌고 도는 것인데, 있는 놈 등도 좀 치고, 없는 놈한테 좀 나눠주면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하루 밥 세끼 꼬박 챙겨 먹다가 살 뺀다 싶으면 저녁은 굶고, 잠은 옹기 종기 좁은 집에 등 붙이고 취해도 좋을 것 같다. 꿈이라고? 현실에서 행복할 수 있겠냐고? 그렇다. 꿈이면 어떠랴. 꿈꾸는 대로 살다 가는 게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건 이건데 꿈이니까 포기하고, 미뤄놓고…… 현실에 적응한다고 안달복달 살다 나이 먹고 병들어 처자식을 위해 날 희생했다 한들 어느 처자식이 감사해 절을 하겠는가? 밥과 여행 정도만 해결되는 인생이 그렇게 많은 돈을 요구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름대로 정도의 차이를 보이겠지만, 차이란 지극히 당연한 것일 것이다. 사람 생긴 게 어디 같을 수 있나, 생긴 대로 살아야지. 나뭇잎들은 제 할 일을 마치고 흙으로 돌아가면 체적을 한껏 줄인 앙상한 가지들만 한겨울 북풍설한을 견디며 따스한 봄을 기다릴 것이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내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바로 이게 나의 현실이다.

오늘이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D-day! 이 얘기를 끝으로 담배 얘기는 더 이상 출연금지다. 가슴도 뻐근하고, 기침도 잦으며, 꾀꼬리 같았던 목소리는 허스키하다. 대외적인 증상은 이 정도지만, 몸 안에서의 증상은 안 봐도 뻔할 뻔자다. 허파꽈리 사이사이엔 아스팔트가 깔렸을 테고, 심장은 끈적해진 피들로 기름탱크가 되었을 것이다. 혈관들은 군데군데 막힌 하수구가 되었을 테고, 온 몸에선 퀘퀘한 냄새가 진동을 할 것이다. 아~ 15년 동안 줄기차게 내 주머니를 차지했던 담배와 절연을 결심하다니 대견하다 치타. 마지막 한 대를 피워 물고 끝내자. 끝!

효진씨 부모님이 다녀가셨다. 모두 건강해 보이신다. 효진씨의 표정이 모처럼 어린아이가 된 것마냥 득이 양양하다. 난 속으로 아빠를 외쳤다. 하늘이건 땅이건 어디에 계시더라도 내 외침을 들으셨을 것 같다. 11년 전 한번만이라도 사랑한다 말할걸. 이렇게 통회하지는 않았을 텐데, 참 어리석었다. 그저 무자비한 군주쯤으로 간주하고 약한 백성인 우리 세 식구는 제 각기 반란만을 꿈꾸었었다. 힘든 싸움이라 생각했고, 적에게 얻어 맞지 않으려고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행복했던 순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따금씩 벌어지는 술 취한 폭군인 군주에게 속수무책이었던 기억이 더 또렷하다. 심리상담사와 정신과 의사들은 내 정신세계의 불안정성을 아버지에 대한 나쁜 기억으로 인한다고 여긴다. 적어도 프로이트와 칼 융의 결론에 의하면 그렇단다.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 최면술이라도 걸어 과거의 아버지를 되살리고 싶다. 지금의 나라면 아버지를 힘껏 안고 다독여 줄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얼마나 외로웠느냐고,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아빠만 생각하면 목이 메어오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노라고, ‘못 우는 병’도 아랑곳 없이 눈물이 솟구친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MBTI 검사를 분석해주신 유관웅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못 우는 병’도 아빠덕분이란다. 괴로운 기억의 나를 분리해 제 3자로 바라보게 되는 일종의 인격해리증상(?) 뭐 그런 기막힌 명칭을 쓰신다. 더 이상 슬프거나 괴로워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의 객관화 정도 되겠다. 하긴 동생과 나는 남들이 기막혀 하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공수부대 출신인 동생은 낙하산이 안 펴져 돌아가실 뻔 했다며 순간의 긴장을 정말 남 얘기 하듯이 한다. 나 또한 교통사고가 나서 머리카락 사이로 뜨거운 피 한 줄기가 흐르길래 영웅본색이라며 웃어버렸다. 얘기를 듣는 청중들은 의아해 마지않는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그럴 수 있냐고 반문한다. 글쎄, 동생은 처자식이 생겼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 당시 우리는 죽음도 두렵지 않았던 듯 하다. 세상에 대한 별 다른 애착도 관심도 없는 듯, 죽음의 문턱에서도 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았던 듯 하다. 눈 감으면 이 세상은 더 이상 내겐 없다. 눈을 떠 바라보기 전에는 나 자신의 존재도 희미하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내게는 하나님도 부처님도 남의 얘기 같다. 그저 자연의 순리대로 운명대로 살다 가는 것일 뿐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눈물이 나지 않았던 건데 남들과 다르다고 한다. 다른 건 잘못된 것이란 생각이 바뀌길 바란다. 부디 나를 위한답시고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 각자의 세상에서 살아가고, 그 세계가 한 데 어울렁 더울렁 섞이며 생을 마친 나뭇잎이 흙이 되듯 그렇게 흙으로 가고 싶다. 물론 누구나 가슴 한 가운데 각기 다른 사이즈의 구멍을 갖고 산다. 내 구멍은 덩치에 어울리게 조금 더 컸을 뿐이다. 그래서 밥풀로 창호지를 덕지덕지 바르며 조금씩 메워가고 있는 중이다. 2007-10-31 11:1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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