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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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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2일 19시 04분 등록

회사 나오고 5년이 지났다. 회사를 나온 계기는 나를 찾기 위해서였고, 나를 찾고자 했고, 나를 찾았다. 나를 찾았다고 해서, 변한 것은 없다. 가야할 길은 내가 누군지 안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회사를 나온 것이 회사를 나오지 않은 것에 비해 얻은 것이 더 많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아직 대답은 할 수 없지만, 회사를 나오자마자 좌절의 연속이었다. 작은 여행사에 들어갔다가 3개월만에 쫓겨났고, 백수생활과 잦은 이직으로 가슴은 멍이 들었다.

그럴때마다 새롭게 분발하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더 파고들어갔다. 도서관이나, 커피숍에서 모닝페이퍼를 하염없이 적고, 적성검사와 비싼 상담도 받았다. 마치 일이 잘 안풀리는 것이, 나와 맞지 않는 곳에 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나를 열심히 찾아서, 최적의 곳에 나를 안치시킨다면 잘 풀릴 것이다라고 믿었다. 직접적으로 나를 찾고자 해서 얻은 소득은, 이런식으로 나를 찾는다는 것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뿐이다.

[자신에 대한 관심은 어떤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기껏해야 일기 쓰기에 매달린다거나, 정신분석을 받으러 정신과에 다닌다거나, 승려가 되거나 할 뿐이다. 하지만 승려가 된 사람도 규칙적인 수도 생활에 쫓겨 자신의 영혼을 잊을 수 있어야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승려가 종교에 귀의한 덕분에 누리고 있다고 믿는 행복은, 그가 어쩔 수 없어서 도로 청소원이 되었더라도 누릴 수 있었던 행복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바람에 불행해진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적인 훈련뿐이다. 18_행복의 정복_버트런트 러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면을 파고들어갈수록, 나를 더 잘 알기 보다는 나의 자아가 비대하게 기름진다. 몸에 체지방이 많으면 삶이 부대끼고, 온전하게 살기 어렵듯이, 자아가 비대하면 사는게 못마땅하고, 핑계와 이유가 많아진다. 물론, 지나고 보면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다. 어떤 여자 연예인은 명절날 시댁식구와 함께 차례나 제사 준비하는 것이 싫어서 이혼했다고 한다. 몇십년이 지난후, 그녀도 인정하듯이 그건 이혼할 이유가 못된다.

자아가 비대해지면, 개인의 기호가 마치 운명인냥 착각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내 스타일이 아니거나, 업무 처리 방식이나 회사 시스템이 맘에 안들어서 그만둔다면 본인은 그것이 (본인을 위해서 )최선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3자가 보기에는 한심한 처사다. 미디어의 영향도 크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개인의 자아를 건드리고 부풀린다. 소비자가 좋고, 싫고를 따지게 만드는 것은 기업에게 있어서 죽고, 살고의 문제다. 우리는 이미 기업의 마켓팅으로 의사결정 프로그램이 바뀌어버렸다. '맘에 안들고, 들고'로 인생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찾기 보다, 드러나기다. 처음 시작할 때, 나는(자아) 작은 씨앗에 불과하다. 그 씨앗을 이리저리 헤쳐서 성분을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시간낭비다. 씨앗을 땅에 심어서 싹이 트고, 모진 바람과 태풍을 견디고 맺은 열매가 그 씨앗의 아이덴티티다. 열매(결과물)로 그 나무를 안다. 모진 바람과 태풍은 역경이다. 씨앗은 본질적으로 어떻게든 싹을 터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경우, 상황에 있건 자기 답게 성장해야 한다. 성장이 자기를 아는 길이다.

혁신은 결과물을 만들고자 애쓰는 것이다. 결과물은 처음과 끝이 있으며, 독립적이고 평가 받을 수 있는 개체다. 그 결과물은 온전히 나의 포트폴리오가 되고, 그것이 나다.  사업가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가수는 열심히 곡 만들고, 글쟁이는 글써서 책을 내놓는다. 음식장사는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서 열심히 홍보한다. 남들도 결과물을 보고, 내가 무엇하는 사람인지 알고, 나도 내가 한 일을 보고 내가 무엇인지 안다. 결과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덴티티는 분명해진다. 분명함은 강함이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근육에 상처를 주고, 그 틈 사이로 영양소가 들어가야 한다. 근육에 상처를 주기 위해서는 근육을 쥐어짜야 한다. 젖먹던 힘까지 써야하고, 당연히 고통스럽다. 이 고통이 성장의 방법이다. 오랫동안 운동을 해도 몸이 불어나지 않는 경우는 자기 편한대로 운동을 했거나, 고통스러운 길을 교묘히 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하면 효과가 크다.

결과물을 만드는 것보다는, 나를 직접 파고 들어가는 것이 편하다. 여하튼 편한 길중에 도움이 되는 길은 하나도 없다. 지금 편하다면, 그 길이야말로 내 길이 아니다.

나를 찾고자 한다면, 스스로를 땀으로 증명하라.

IP *.129.20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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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2 23:00:59 *.132.9.250
감사합니다. 글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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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구름
2009.10.14 08:08:45 *.104.75.90

 늘 소중한 글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고통이 성장의 방법이긴 하나 늘 고통없이 성장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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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2009.10.15 01:34:13 *.38.153.141
아! 그렇군요. 나를 찾으려면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였네요. 저도 '자아'를 찾아 오랜 세월을 방황하다 얼마전에 드디어 나 자신의 "본 모습" 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모든 욕심을 다 버리고, 한 가지만을 찾아서 가야 한다는 것인데 아직도 그 첫 걸음을 떼기가 두려워서 생각만 하는 중이었어요. 근데 맑은 님이 땅 속으로 들어가라 하시네요. 사실 그 곳은 깜깜하고  축축하고 무서운 곳 같아서 들어가기 싫었어요. 그리고 남들에게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로 보일 수도 있는 곳이니까,  근데 저도 이제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사실은 이제 알아요. 도망가봐야 여전히 그 자리라는 것도 잘 알기에...그래요 맑은 님께 떠밀려서 40몇 년만에 처음으로 땅 속으로 들어 갑니다. 이 다음은 나도 몰라요. 땅을 뚫고 새싹이 되어 나올지 아니면 또 몇 십년을 땅 속에 갇혀 있을 수도 있지요. 그동안 나 자신을 살피는데 맑은 님의 글을 많이 참고 했어요. 님의 글을 읽다 보면 제가 마주치기 꺼려했던 제 자신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더라구요. 고마워요. 이제 들어갈께요....... 땅 속에 들어와보니 생각보다 괜찮네요. 약간 답답한 것 빼구요...근데 좋은 것 한 가지는 절대 편법으로 이 땅 속을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거네요. 물고기처럼 물에서 휙 솟구쳐 나올 수도 없고,  싹을 튀우기 전까진 절대 빠져 나오지 못하는 곳...ㅎㅎ..부디 다음에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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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10.15 14:00:51 *.190.122.223
늘 건강하시죠..

그 치열함을 언제나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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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연
2009.10.20 12:06:57 *.142.217.231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말씀들이 많이 있네요..
글이 정말 좋습니다.

제가 고민하는 것을 먼저 경험하신
선배님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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