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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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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5일 12시 33분 등록
 

연구소에서 두 건의 공저에 참여하고 있다. 이름 하여 사자와 호랑이. 비유의 달인이신 선생님께서 붙인 별명 덕분에 친근하고 부르기 좋고 선명한 프로젝트이다. 선생님께서는 인생의 전반기를 ‘낙타의 시대’라 이름 지으셨다. 등짐을 가득 지고 끝없는 사막을 걸어야 하는 낙타처럼, 책임과 의무를 가득 진 시기이다. 대상이 무리를 지어 가듯, 이때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살 수 있으면 좋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조직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많은 직장인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는 1인기업을 꿈꾼다. 호랑이처럼 의연하게 자신의 이름 석 자 만으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세상에 알릴 것인가?  또한 호랑이라고 해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서적으로나 비즈니스 측면에서 삶을 나누는 동지가 필요하다. 어떻게 사자의 무리를 얻을 것인가? 이 두 개의 과제를 연구하고 싶은 사람은 모여라! 2009년 9월 2일의 일이었다.


공지를 보자마자 득달같이 두 개의 프로젝트에 모두 지원했다. 첫 책의 원고를 탈고하여 출판사에 넘긴 시점이었는데, 저술과 강의를 하면서 먹고 살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한 맞춤기회 같았다. 나는 공저 작업 자체에도 흥미가 있었다.  오래도록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내는 사이를 꿈꿔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하게도 사춘기 시절부터 정서적인 지지를 나누는 일에 비중을 두지 않았다.  흔히 ‘여자들은 화장실도 같이 간다’고 회자되는 식의 우정에 서툴렀다. 나이가 한참 들고 난 후에도, 아줌마들의 전매특허로 여겨지는 ‘수다’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아직도 시급하고 구체적인 용건 없이 만나거나 통화를 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오죽하면 스스로를 ‘관계치’라고 불렀으랴.


이런 내가 꿈꾸는 인간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지식을 공동생산하는 사이’에 대한 것이다. 만화 ‘신의 물방울’의 저자 아기 다다시가 한 사람이 아니라 남매의 필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신기하고 부러웠다. 저널리스트 출신 누나 기바야시 유코다와, 네 살 아래인 편집기자 출신 동생 기바야시 신. ‘신의 물방울’은 우리 나라에서 150만 부가 팔렸다.


작곡가 김희갑, 작사가 양인자 부부도 있다.  그들이 만든 노래는 주옥같은 가사와, 그 가사에 딱 어울리는 곡조로 해서 완벽한 시너지효과를 이루었다. ‘진정 난 몰랐네’, ‘킬리만자로의 표범’, ‘사랑의 미로’, ‘그 겨울의 찻집’과 ‘타타타’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 그들은 정말 많은 히트곡을 함께 만들었다. 아내가 가사를 써 놓으면 남편이 곡을 붙이는데 어쩌면 그 곡이 아내의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한 것이어서 번번이 놀랐다고 양인자 씨는 말한다.


남매라는 혈연, 부부라는 귀한 인연에 더하여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공유하고 의미 있는 창조물을 공동생산해낼 수 있는 관계는 최고의 소통을 맛본 사람들이 아닐까.  아무리 좋은 사이라도 계속 가꾸고 키우지 않으면 시들기 쉬운데, 가장 소중한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늘 새롭고 긴장된 가운데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일이 반드시 예술적인 창조물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GE의 잭 웰치는, 두 번째 부인인 제인에게 골프를 가르쳐 준 후 비로소 제인이 진정한 파트너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만한 소통이 가능한 부부에 대한 꿈은 일찌감치 접었지만, 공동의 관심사가 있고 서로의 성장을 자극하는 우정에 대한 꿈을 놓지는 않았었다. 그것이  ‘공저를 쓰는 사이’로 축약되는 셈이다.

그렇게 공저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우선 ‘사자’를 중심으로 말해 보자면 2009년 10월 31일 1박2일의 기획회의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한 달에 한번 씩 만났다. 제일 처음 사자의 무리 즉 ‘창조적 소수’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대강의 챕터를 잡았다.  초반에는 잠시 막막했다.  연구원 8명이 제각기 생각하고 온 그림이 달랐다. 기질과 경험의 차이도 커 보였다. 선생님께서 각자 바람직한 ‘사자’ 그룹을 사례연구하자는 말씀으로 돌파구를 열어 주셨다. 그리고는 진행에 속도가 붙었다. 인터뷰할 사례를 선정하고, 집중적으로 질의할 질문들을 다듬었다. 인터뷰한 내용을 발표하고, 이것들을 챕터별로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 의논했다.

그 모든 과정에 대한 연구원들의 참여는 대단했다. 한 번 모였다 하면 최소한 대여섯 시간을 토론한다. 소요시간이 길다 보니 늘 주말에 모였는데, 나는 백수였지만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황금 같은 주말을 할애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관두겠다거나 하며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거기에는 물론 선생님이라는 구심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모든 논의의 맥을 짚어주고 새로운 지향점과 연결함으로써 공저의 형상을 만들어 가셨다. 선생님 자신도 처음부터 확고한 구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토의를 거치면서, 섬광처럼 스쳐가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해가는 과정을 즐기시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연구원보다도 성실하셨으며, 논지를 정리하고 연결하는 안목은 갈수록 예리해졌다. 그동안 숱한 공저를 이런 강도로 지휘하셨을 생각을 하니,  연구원제도에서 가장 많이 성장하는 사람이 선생님 본인인 것은 당연하다. 그 한결같은 열정과 성실함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효율로 따지면 공저 작업의 생산성은 아주 낮다. 사자, 호랑이와 함께 구상한 ‘필살기’에 대한 책을 선생님 혼자 쓰셔서 3월 18일자로 나온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혼자 일하셨으면 훨씬 많은 아웃풋이 가능했을 시간을 연구원들과의 공저에 쓰신 것이다. 우리들 연구원들도 마찬가지다. 8명이 참여했으니 한 사람이 써야 할 원고는 A4 15장에 불과하다. 그것을 위해 10개월에 걸쳐 10번의 회의를 하다니,-마무리하자면 그 정도 걸릴 것 같다- 공저 작업의 핵심은 효율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지난 4월 30일에 2박3일로 저술여행을 다녀왔다. 서산군 운산면 백년고택의 풍광은 꿈같았다. 지금껏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많은 민들레를 보았다. 품격 있는 기와집의 대들보와 마루는 두툼하게 믿음직스러웠고, 방들은 아기자기하게 작았다. 남자연구원들이 서툰 솜씨로 불을 때주느라 애썼다. 근처에 사시는 한 연구원의 어머니께서 천연나물비빔밥과 쑥절편을 날라 오셨다.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멤버도 아닌데 어머니와 함께 열과 성의를 다 하는 그 연구원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구나 싶었다.  선생님께서는 여행 중에 해산물을 잘 사 주신다. 첫 번째 기획단계에 간 평창의 펜션에서는 주문진까지 가서 회를 떠 오셨고, 이번에는 서산 장에서 게를 5킬로그램이나 사 오셨다. 제 철을 맞은 게는 알이 꽉 차 있었고 속살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이렇게 풍광좋은 곳에서 맛있는 것 먹으며 오직 글만 쓰자고 하신다.

몇 가지 현안이 얽혀 있어 백 프로 몰입하지 못했다. 어떤 일상과 문제를 두고 갔든 다 잊어버리고, 별천지처럼 아름다운 풍광 속에 빠져들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관계에 소홀한 나의 고질병도 참 오래도 간다. 그래도 내가 많이 변한 것을 느낀다. 그동안 소홀했던 ‘수다’의 가치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머릿속에 어떤 고매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라도, 담소하는 자리에서는 재치가 생명이다. 살짝 억울한 태클이 들어오더라도 여유 있게 받아치는 사람이 승자다. 이제 겨우 재치 있는 대화, 왁자하게 웃고 떠드는 자리의 진가를 알 것 같다. 사람들은 웃음섞인 대화를 통해 생활의 독소를 뺀다.

꿈만 꾸던 ‘지식의 공동생산’에 대해서도 조금은 감을 잡았다. 스쳐지나가는 아이템을 붙잡는 능력, “00하고 놀 사람 여기 붙어라!” 소리쳤을 때 기꺼이 호응해줄 커뮤니티의 존재, 지루할 정도로 긴 과정에 지치지 않는 뚝심,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수용하고 해결하는 힘,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는 유희정신! 내가 이런 것들을 얼추 갖추었을 때 비로소 내가 꿈꾸는 관계도 성큼 다가오리라. 아니 그런 관계가 아득히 먼 것이 아니라, 지금 사자프로젝트를 하는 팀을 그런 존재로 만들 수도 있으리라. 중요한 것은 상대보다도 나의 마음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이 공저의 진정한 목표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만 비로소 사람이라는 인식, 함께 있음으로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있다는 느낌, 공헌력을 키우기 위해  나를 더욱 확장시키고 싶다는 각오를 하게 된 것이 말이다.

IP *.254.8.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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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5 23:30:41 *.109.34.83
<라라> 시리즈글 중독성있어요
한줄한줄 글속에 담긴 생각이 어쩜 이리 공감가는지....
좋은 인연...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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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0.05.06 07:48:11 *.254.8.243
제 글을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까운 곳에 계신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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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010.05.06 00:14:17 *.131.21.42

아 부럽네요
졸업사진 시인 편 그 사진 볼 때 처럼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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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10.05.06 07:49:39 *.254.8.243
막상 그 때는 걱정거리에 머리 싸매고 있느라
충분히 '그 자리에' 있지 못해 놓고, 이제 와서 그 진가를 음미하고 있답니다.
다시는 이런 못난 짓을 하지 말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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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엽
2010.05.06 07:51:42 *.216.38.10
사자, 호랑이 올해는 두 개 다 어흥! 하고 잡으시길, 화이팅합니다.

선생님 글을 일고 공저에 관한 부분을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저는 혼자 먼저 문제를 해결해 놓고 난 뒤에 기회가 오면 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그것이 왜일까, 생각했었는데..
말이 좋아 '개성'이지, 융화력이 남들보다 뒤떨어지지않나,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수다'의 가치, 그것이 100% 친화력과 융화력과 상통하는 것은 아닌듯 합니다.
수다를 떨고 싶은 사람만 하는 수다, 닫힌 마음 상태에서의 '뒷담화'같은 수다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폐쇄적일 수 있으니깐요.

선생님의 글이, 저에게 여러가지 화두를 던져주십니다. 밖의 날씨는 이렇게 화창한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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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10.05.06 20:36:38 *.254.8.243
재엽씨처럼 표현력 준비되었고, 콘텐츠 창고가 그들먹하면서
컨셉트 잡기에서 걸려 있는 사람은 워밍업삼아 공저 해 봐도 좋을 것 같은데?
앞으로 땡기는 주제 있으면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삼~~

그리고 누구? 재엽씨 융화력이 남들보다 떨어진다구? 
아이고 맙소사!  그럼 나는 땅굴 파고 들어가야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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