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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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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9일 18시 46분 등록

소녀가 할아버지에게 자신이 직접 쓴 소설의 초고를 건넵니다.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두려움이 일렁입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소녀는 기다릴 테니 지금 당장 읽고 평을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할아버지는 책상에 앉고, 소녀는 쪼그리고 앉아 무릎팍에 고개를 묻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고 할아버지가 떨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시즈크, 잘 읽었다. 아주 좋았단다."

"거짓말! 거짓말이죠! 사실을 말씀해주세요!
 
쓰고 싶은 것이 뒤죽박죽이에요. 후반은 엉망 진창이고! 저도 알고 있는걸요!"

"그래, 거칠고 솔직하고, 미완성이고마치 세에지의 바이올린 같았어.
 
그러나 네가 막 떼어내기 시작한 보석의 원석을 똑똑히 봤단다. 열심히 잘했다.
 
조급할 건 없어. 시간을 두고 열심히 연마하면 된다."

".. 쓰고 나서 깨달았어요. 쓰고 싶다는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a1.JPG

 

훌쩍이며 겨우 말을 잇던 소녀가 결국 목놓아 울음을 터뜨립니다. 영화 <귀를 기울이면>의 이 장면은 제 가슴 깊이 박혀 있습니다. 저는 그녀의 눈물을 이해하고 공감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언제나 그런 마음이었으니까요. 언젠가 구본형 선생님께 애원하듯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부님, 정말로 제게 재능이 있을까요? 그저 사부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고 말입니다. 그 때 선생님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아주 잘 할 사람이지."라고 짧게 대답하셨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분께 인정을 받았는데, 기쁘지 않았습니다. 사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저를 배려해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해 버릴 것을 왜 여쭈어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회사에 오신 한 강사 분의 강의를 보면서 어쩌면 강의는 외향적인 사람들의 몫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급작스런 상황에도 너무나 재치 있게 대처하는 강사의 모습이, 강사 소개를 하는 데에도 몇 번 리허설을 해야 하는 제 모습과 너무나 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길로 접어든 지 5, 여전히 이 길이 제 길이 맞는지 의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것은 어쩌면 갈 길을 찾지 못해 느끼는 불안함보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애당초 꿈을 찾지 않았다면, 꿈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고통이기에 더 아픕니다. 길을 찾으면 고민의 많은 부분이 해결되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두려움이라는 새롭고 잔인한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제 길이라 믿었던 곳에서 저만치 앞서 달려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될 때, 그 두려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나침반의 끝은 언제나 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늘 끝이 떨림이 멈출 때 그것은 이미 나침반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두려움은 어쩌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 저것 해 보다가 떨림이 오면 끝까지 가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아마도 여기서의 떨림은 내면의 무엇과 공명(共鳴)한다는 의미의 떨림이겠지요. 그러나 어쩌면 두려워서 떠는 것과 공명하여 떠는 것, 그 둘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려운 이유는 그 일을 아주 잘하고 싶은 욕망 때문일 테니까요.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는 까닭은 최선의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니까요.

 

두렵다는 이유로 제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멈춰야겠습니다. 삶이 있어 죽음이 존재하고 밤이 있어 별이 빛나듯, 길과 두려움 또한 하나의 묶음이니까요. 언젠가 가장 빛나는 보석을 만나게 되겠지만, 그 찬란한 보석에 비추어 초라한 현재를 탓하지도 않겠습니다. 조급해 하지 말고, 너무 멀리 보지도 말고, 지금 딛게 될 걸음, 지금 쉬게 될 호흡, 지금 하고 있는 일만을 생각하며 묵묵히 닦아 내야겠습니다. 어제보다 아주 조금 더 빛이 나는 것을 온전히 느끼고 그 작은 진보에 기뻐하며 말입니다.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하게 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 미하엘 엔데,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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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57.6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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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
2010.12.09 19:49:43 *.117.250.236
오늘 칼럼이 인상적입니다. 선생님.
이상하게 오늘따라 더 콕콕 제 마음을 쑤시는 것 같다가도
더 많이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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