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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31일 02시 43분 등록

예전 사장님은 여행업계 최초로 코스닥에 회사를 상장시켰다. 여행업은 손님이100만원짜리 여행을 간다고 하면 5만원 정도가 남는다. 여행업 태동기에는 이마저 어려워서, 100원이 원가라면 70원에 손님을 보냈다. 나머지 30원은 현지 가이드의 실력으로 메꾼다. 캄보디아 199천원, 푸켓 10만원 같은 상품을 싸다고 좋아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상품이 오죽하겠는가. 당연히 쇼핑몰에 수시로 데려간다. 마지막 공항가는 버스에서 물건 파는 모습은 처절할 정도다. 정 안되면, 대놓고 팁 달라고 울며 매달리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대기업이 여행업을 꺼려했던 것은 그다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런 구멍가게 사업을 코스닥에 상장 시켰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대단한 것이다. 그 사장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곤 했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레고블럭으로는 탱크도 조립하고, 헬기도 만들 수 있다. 블록이 많을수록,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더 다양한 결과물이 나온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꿈과 이상을 그리지만, 그 기반은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이상적인 캐릭터와 재미있는 스토리 이전에 그는 '제작비 절감'이라는 강점을 가졌다. 백남준도 그의 아내에 따르면, 죽을 때까지 돈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성숙한 사람들의 특징은, '균형'인데,  몽상가도 아니고, 구두쇠도 아니다. 중도를 유지한다. 그들은 깨어있다.

사장님이 말한 레고블럭이란, 모객규모다. 손님이 많으면,어떤 형태의 여행상품도 기획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 여러가지 할인상품도 기획할 수 있다. 모객이 많으면, 항공사나 현지 호텔에 인센티브를 요구할 수 있고, 손님은 더 싼 가격으로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수 있다. 여행상품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누구나 아프리카 오지탐험과 프랑스 치즈 여행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모객규모가 안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곳에 손님도 몰린다. 결과를 만들어낼 정도의 레고블럭을 형성하기가 어렵지,일단 레고블록이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탄력이 붙고, 재미있어진다.

'뭔가를 시작하면 그것을 좋아할 때까지 계속 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 일에서 전문가가 되기 전까지는 좋아할 수 없다. 일단 전문가가 되면 기다리는 것은 즐거움뿐이다.'_부유한 노예_로버트 라이시

피아노 연주에서도 음계 하나하나를 익히는 것은 지루하고 힘들다. 하나의 음을 체화(體化)하는 것이, 피아니스트에게는 하나의 레고블럭이 된다. 그 음계를 이어서 연주하면 그때는 몰입도 생기고, 재미있다. 이미 소유한 재료로 여러가지 조합을 시험해 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창조의 기쁨도 생긴다. 소스를 선택해서 이리저리 결과물을 만드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인터넷 시대에 소스는 지천에 널려있다. 책을 읽지 않고, 소유한것 만으로 아무 의미가 없듯이,  내가 씹고 다시 게어낸 것이 아니면 쓸 수가 없다. 이것이 ctrl + v(가져다 붙이기)의 환상이다. 공짜 소스는 공짜가 아니다. 그 소스를 쓸려면, 시간을 들여서 나답게 가공하는 노력이 또 필요하다.

전문가란, 레고블럭이 많은 사람이다. 무수하게 조합할 수 있는 소스를 많이 가지고 있다. 적어도 검색할 필요없는 자신만의 데이터 베이스를 가지고 있다.(검색해야 한다면, 그 소스는 자기 것이 아니다.) 음반 프로듀서에게는 무수한 음원이 있고, 디자이너에게는 이미지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왕성하게 창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소스를 많이 확보했다. 레고블럭이 많다. 이들은 작은 소스들을 자기 몸의 확장인냥, 쪼물닥거리며 만들고 해체하기를 거듭한다. 이 정도라면 일이 놀이다.

자본가는 돈이 없는 사람에 비해서, 다양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할수있다. 자본가에게는 돈이 그의 레고블럭이다. 여력이 있다면 장사할 수도 있고, 될성 싶은 곳에 투자할 수도 있다. 선택의 여지가 많다. 그 레고블럭을 하나씩 모으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가늠한다면, 남다른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노력해야 하는 지가 나온다.

글쟁이에게 레고블럭은 타인의 글이다. 즉, 독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타인의 글은 내 글을 위해서 읽는다. 적어도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렇다. 제대로 읽는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 필요한 것만 취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대충 읽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알아서 배워야 한다. 닥터 한니발의 뇌에는 집이 하나 들어앉아 있는데, 한니발은 그 집을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기억을 저장해 놓는다. 머리속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서랍이 있어서, 한의사처럼 텍스트를 이리저리 조합해 볼 수있다면 놀이를 위한 준비가 된 셈이다.

장사에 있어서 나의 레고블럭은 손님이다. 처음에는 손님에게 휘둘린다. 손님도 어설픈 모습을 간파하고, 나를 휘두른다. 하지만, 손님을 많이 겪으면 손님도 요리할 수있다. 기분 나쁘지 않게 제안할 수 있고, 부드럽고 매끄럽게 주문을 받을 수 있고, 영 아닌 손님에게는 큰 소리 칠 수 있는 배포도 생긴다. 또 하나의 레고블럭은 경영이다. 경영을 끊임없이 이어지는 지속성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 하나 분절된 모듈로 만든다. 결국 손님을 끌어와서 매출을 올리는 각각의 방법이 경영의 레고블럭이다.

레고블럭 2, 3개 가지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적어도 3, 4천개는 필요하다. 머리로 기획할 수 있지만, 각각의 소스는 몸으로 만든다. 젊은날은 평생 가지고 놀, 레고블럭을 만드는 시기다. 레고블럭을 가지고 노는 것은 재미있지만, 레고블럭 자체를 만드는 것은 고통이다. 이래서 젊어 고생은 사서 하라고 하나 보다.

당신의 레고블럭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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