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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1일 23시 52분 등록
눈사태를 만나서, 눈에 깔리면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혀밖에 없다고 한다. 혀를 움직여서 눈을 녹이고, 녹인 눈만큼 공간을 확보하고 살 수 있다. 종횡무진하는 세상을 보면, 눈사태를 만나서 깔린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정신이 없고, 방향성도 없으며,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가 없다. 글쓰기는 눈사태를 당한 사람의 혀다. 끄적거리는 만큼만 살 수 있다. 

작가와 문장가는 틀리다. 둘 다 글을 쓰는 사람인데, 무엇이 틀린가?라고 물을 수 있다. 작가는 팩트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문장가는 물론 작가이지만, 팩트 보다는 문장 자체에 공을 들인다.  이를테면, 소설가 김훈의 경우는 주격조사, '이'와 '가'를 놓고 줄담배를 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일본의 '마루야마 겐지'는 하나의 문장을 가지고, 온갖 수사여구를 동원해 장식을 하는 실험을 해보기도 한다. '일식'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일본의 히라노 게이치로는 20대 초반에 아쿠타카와상을 받았다. 그가 상을 받은 이유는 문장 하나 하나를 일본의 15세기 풍으로 바꾸는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보통 근성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나는 이런 일에 관심이 없다. 골방에서 문장을 가지고 쪼물락 거리는 일은 나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글을 쓰는 이유는 기록하고, 각성하기 위함이다. 기록하면 남는다. 기록을 가지고, 이리저리 만져서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 전자책 시장이 많이 들썩거리는 데, 일본의 무라카미 류라는 소설가는 이미 전자책 출판사를 차렸다. 종이책의 인세는 10퍼센트이지만, 전자책은 50%에 육박한다. 그림책 작가 중에는 스스로 출판사를 차려서, 홍보와 유통 모두 총괄하는 작가도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한국의 출판시장은 디자인, 인쇄, 홍보, 유통이 비교적 분업화가 잘 되어있다. 매력적인 콘텐츠가 있다면 그것을 시장에 내다파는 것은 비교적 쉽다. 순간 순간 기록을 했느냐의 차이인데, 기록을 해서 남기면 파생할 수 있는 상품도 많아진다. 

매킨토시가 나오면서, 개인출판의 혁명이 왔다. 누구나 그럴듯한 문서 작업을 할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태블릿 피씨로 한번더 출판업계에 혁명이 왔다. 책을 출판하는 일이 점점 쉬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두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매력적인 콘텐츠가 있느냐의 여부다. 누구나 듣고 싶어하는 경험이 당신에게 있는가? 두번째는 그 경험을 콘텐츠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이다. 콘텐츠의 기본은 글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은 매일 하면 쉽지만, 안하던 사람이 할려고 하면 엄두도 못내는 일이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풍부한 경험과 글쓰기 능력이다. 이 둘중에 더 중요한 것을 고르라하면, 당연 풍부한 경험이다. 글쓰기는 문장가가 아닌 이상, 잘 쓰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적다. 

누군가 일기를 매일 10년 쓰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글을 쓰면 각성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과거의 일을 글로 지면화하면, 전후 맥락에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깨들음의 순간이 온다.'나란 사람이 이렇구나,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구나. 앞으로 이렇게 행동할 가능성이 크겠구나.' 글을 쓰는 이유가, 책을 출판하고 유명해지고, 자기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글을 쓰지 않게된다.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비지니스 모델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시대는 책 한권 썼다고 유명해지지 않는다. 대놓고 영업하는 책이 아니더라도, 책쓰기로 전문성과 브랜드성을 획득하기에는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많다.

글쓰기는 생리현상이다. 글을 쓰고싶은 사람이 글을 안쓰면, 일상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생각이 꼬이고, 무기력에 빠진다. 글쓰는 시간을 돈으로 치환하면 복잡해진다.나는 몇년간 장사하면서, 글을 써왔다. 출판을 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깨닫는다. 나는 나와 맞지도 않는 장사를 하면서, 글쓰기로 스스로를 설득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결국 그 자체가 보상이었다. 책은 기회가 있으면 하면 된다. 하지만,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내게 공부가 되고, 살아갈 의미를 글쓰기로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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